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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Oct 25. 2018

서당개 삼년이면 업무를 바꾼다

소심한 인간이 직장에서 살아가는 법




나는 4인 이상의 모임은 경계하는 편이다. 제일 큰 이유는 일단 말이 느리다. 저기!라고 물꼬를 트려는 순간 말빠른 자에게 발언권을 뺏긴다. 내가 마음껏말할 수 없다면 나가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두 번째는 내가 몹시 소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소외되는 건 또 싫어한다. 그래서 어떤 모임의 첫 날은 무조건 가야한다. 나만 쏙 빼고 형성된 친분의 불균형을 견뎌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무대공포증 투병 20년, 거절 당하는 게 싫어 제안조차 고민하는 극소심 트리플 A형인 나도 어느덧 직장인이 되었다. 회사에서 처음 맡은 건 마케팅 업무였다. 명색은 마케팅이라 하나 상품판매 및 영업, 그에 따른 실적관리, 회사 홍보, 캠페인 등의 잡다한 일을 맡게 되었다. 전임자가 남긴 것은 엑셀 시트 한 장뿐. 험난한 마케팅 사막에서 주어진 첫 과제는 다름아닌 찌라시 돌리기였다.




나의 첫 상사이자 퇴직을 1년 남겨둔 P부장에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그는 매일 매일 동네사람들에게 우리 회사를 알리고 싶어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귓속말이 합법이라면 길가던 사람이라도 붙잡고 우리 상품을 이용해달라고 속삭일 기세였다. 그러나 P부장 마음 속 홍보는 딱 한가지.


그것은 다름아닌 찌라시였다.


P부장은 브로슈어, 리플렛, 팜플렛, 전단지, 홍보물같은 좋은 말을 놔두고 꼭 찌라시라고만 말했다. 아니 요즘같은 디지털 시대에 찌라시라니? 그 옛날 옛적 1900년대 구한말의 고종 임금도 커피를 즐겨 마셨다던데.

정말 이건 아닌 것 같아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요새 뜨는 온라인 홍보 플랫폼의 약진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P부장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홍보 플랫폼은 조선일보에서 멈춰버린 듯 했다. 애석하게도 그는 페이스북의 F도 모르는 진정 옛날 사람이었다.

찌라시를 돌리면 모두가 우리를 알아줄거라는 P부장의 믿음이 너무나도 확고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찌라시를 만들기로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종이로 본격적인 홍보를 하려는 자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예산 담당부서에서도 곤란해했다. 누가 봐도 불보듯 뻔한 실패가 예상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매우 험난했다.




하지만 P부장의 열정은 이제 시작이었다.


“찌라시 그거 다 만들면 우리 저그 시장 한 번 가야~ 으자에 앉아만 있으믄 누가 우릴 알아주겄냐!”

P부장은 회사 근처 시장에서 함께 찌라시를 돌리자고 했다. 아아 그는 진정 즐기면서 일하는 부장.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하는 부장. 그러나 나는 마지못해 일하는 직원. 으자에 앉아만 있는 직원. 찌라시를 돌리다 멸시받을 것이 두려워 일을 야금야금 미룬지 두어달, P부장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안양의 어느 전통시장 앞에 서있었다.


지병은 무대공포증. 거절은 언제까지나 거절만 하고픈 나였지만 이래뵈도 첫 업무였다. 그래. 토익 900점. 토스 7급. 4년제 대졸자로서 무언가 보여줘야해. 용기내서 수줍게 떡볶이 아주머니께 찌라시를 내밀었지만 차갑게 거절당했다. 바로 옆 호떡집은 장사가 너무 잘돼서 말도 걸 수 없는 수준이었다. 차라리 이 전단지를 호떡 집게로라도 써줬으면 했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회사 사정상 종이 두께에 쓸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그와중에 출장보고를 올려야한다고 사진까지 남겨야했다. 안양의 어느 구이김가게에서 찍힌 그 사진은 회사 단톡방에 자주 오르내렸다. 성가셔하는 아주머니와 제발 받아주길 바라는 나의 간절한 눈빛은 동료들을 웃기기엔 아주 적합한 사진이었다. 모든 일과를 마치자 퇴근 생각이 간절했지만 P부장은 팥죽을 먹자고 했다. 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옛날 사람. 급변하는 이 시대에 보기드문 인간 소나무. 나는 뜨거운 팥죽을 새알과 함께 급히 먹다 체해 3일을 앓았다.



다음 출장은 광명 어드메의 시장이었다. 팥죽을 두번 다시 먹고 싶지 않아 야심차게 사전답사를 나갔다. 주변의 맛집과 동선, 사진찍기 좋은 장소를 미리 물색하려는 의도였지만 시장이 너무 복잡해서 길을 외우기는 커녕 계속 헤맸다. 처음 들어온 곳으로 한 번도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북적이는 시장의 활기에 감탄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랬으니 실제 출장에서도 P부장을 졸졸 따라 다녔다. 팥죽은 아니었으나 다시 한 번 체했다. 역시 사회에서 남의 돈을 뺏기는 쉽지 않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4년 후, 나는 그 업무를 관뒀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나도 즐겁게 전혀 다른 업무를 배우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업무 메일을 쓸 때 백팔번뇌를 한다. 설명충처럼 쓸까, 싸이코패스처럼 쓸까, 죄송하단 말을 두 번 할까 한 번 할까, 아예 하지말까 마지막에 추운 날씨 인사말을 넣을까 말까 등등. 결국 소심한 건 극복하지 못했다. 그치만 소심해도 지금 당장 행복하다면?

소심해도, 영업을 못해도, 고작 팥죽을 먹고 체해도 절대 기죽지 말자. 서당개 3년이면 업무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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