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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Oct 26. 2018

개화파 인스타그래머

인스타그램 쇄국정책을 무너뜨린 건 결국 관심이었다.

나는 꽤나 까탈스런 관종이다. 유리멘탈 개복치지만 관심받는 건 뭐든지 하고 싶고, 또 그것때문에 욕 먹는 것은 싫다. 그래서 늘 싸이월드 일촌공개, 페이스북 친구공개 같은 기능을 애용해왔다. 블로그를 할 땐 맛있는 척 하지만 맛없는 맛집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가게 주인한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거나 욕먹는 게 무서워서 무조건 검색 비허용 설정을 했다.


인스타그램도 처음 시작할 땐 헤비 업로더가 될 거라곤 생각 못했다. 그냥 사진 필터가 이쁘다길래 시작했는데 어느덧 1일 1그램을 넘어 2그램 3그램을 시전하는 내 모습을 보면 가끔 한심하기도 하다. 이것도 처음엔 비공개 계정으로 꼭꼭 숨겨놓고 시작했다. 초기에는 아는 사람이더라도 많이 친하지 않으면 팔로우 요청도 받지 않았는데 그러고보니 팔로워가 무척 빈약해졌다. 그랬더니 그건 또 너무 외로워서 친구를 엄청 맺었다.


관종력과 소심함의 불꽃튀는 줄다리기. 결국 둘 중 이긴 것은 관종력이었다. 그리고 몇 푼 안되는 지갑사정도 한 몫했다. 일단은 다양한 이벤트에 응모해서 당첨되려면 공개계정이어야 하고, 해시태그도 어마어마하게 달아야 한다. 해시태그를 주렁주렁 달아서 거기 관심 좀 없어여? 하는 류의 게시물을 보면 어휴 관종들 ㅉㅉ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해놓고 이제는 내가 한 술 더 뜨고 있다. 하루는 해시태그를 너무 많이 써서 게시물이 내용도 없이 홀연히 올라가기도 했다.


해시태그가 50개인가 넘으면 글 내용이 다 지워진다는 것은 그 날 알았다. 인스타계의 흥선대원군으로서 검증된 사용자들만 친구로 받았던 지난 날, 나는 몹시 좋아요 갯수에 목말랐었다. 우연히 이벤트 응모를 위해 공개 계정으로 바꿨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동료들과 회식을 가졌던 연어가게 사장님이 좋아요를 눌러준 것이다. 아니 이런 뜻깊은 좋아요가 다 있나. 아니 근데 사장님이 좋아요를 눌러줘서가 아니라 그 연어집은 정말 최고였다. 인스타에 올린다고도 안 했는데 진짜 서비스도 장난없었다. 그런 칭찬은 가게 주인이 알아야 마땅하지 암.


공개계정으로 전환하고 받은 좋아요와 댓글은 즉각적인 관심의 표현이기에 관종인 나에겐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요새는 퍼스널컬러를 진단받고 이벤트 응모를 위해 공식계정과 친구를 맺었는데 그 분이 내가 올리는 게시물마다 좋아요를 눌러줘서 좋다. 그리고 가끔은 댓글도 달아주신다. 정말이지 영업 잘 하시는 분. 영업은 저렇게 친근하게 해야한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선 인스타 공개에 대해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나는 관종이기에 당분간 공개 계정을 유지할 것 같다.


며칠 전엔 웬 파란 눈의 코쟁이가 영어 한 점 없는 내 계정을 팔로우했다. 다이렉트 메세지함을 열어보니 나보고 고져스 스마일이란다. 너무 웃겨서 정체를 알아내러 들어갔는데 그는 무려 비공개 계정이었다. 쯔쯔. 아직도 공개계정의 참맛을 모르다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혹시 모르지 않나! 그에게도 “선홍빛 잇몸미소가 멋지네요” 하는 타국어로 된 DM이 오게 될 지.


그 DM정도면 하루 웃음거리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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