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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Oct 25. 2020

용서하지 않는 법

나를 사랑하는 법


Q는 어릴 때 가끔 초코우유를 사주던 친구였다. 집에서 학원까지 가는 길은 곡선이 하나도 없어서 재미가 없었다. 졸면서도 걸을 수 있는, 직진밖에 할 수 없는 길의 지루함을 빨대 꽂은 초코우유로 달랬다. 우유갑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면 학원 앞이었다. Q는 가끔 학원 매점에서 초코우유를 사 왔다. 학원에 오면서 먹은 초코우유가 뱃속에서 찰랑대고 있었지만, 그건 Q의 초코우유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꿀꺽대며 우유를 마셨다. 루트를 배우던 날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교재 귀퉁이에 사실 Q를 좋아한다고 썼다. Q와 친하게 지내면 친구의 마음을 모른척 하는 게 될까봐 그날부터 Q를 모르는 척했다.  


Q를 다시 만난 건 루트를 언제 배웠는지 기억도 안 날 때였다. 생활기록부에 있는 장래희망 같은 건 뒤로 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Q는 우연히 날 봤다며 밥을 먹자고 했다. 이번에 Q는 젤리를 사 왔다. Q에게는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Q는 로션을 향수로 쓸 요량인지 로션을 심하게 많이 발랐다.  나를 만날 때 로션을 많이 바르는 Q가 좋았다. Q에게선 항상 달콤한 로션 냄새가 났다. 후불식 교통카드가 보편화된 시대에 Q는 여전히 선불식 교통카드를 썼다. 어릴 때처럼 티머니 카드를 충전하는 Q는 좀 웃겼다. 게다가 한 번에 5천 원 이상은 하지 않았다. 지폐를 넣는 진지한 Q의 눈빛과 앙다문 입매를 보고 싶어서 얼른 잔액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Q를 알면 알수록 Q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흔한 음식 취향에 호들갑을 떨게 되었다. 우리는 뷔페에서도 어묵 꼬치만 집어 먹는 게 똑같았다. 운명 같은 건 믿지 말자고 다짐해놓고도 어묵같은 걸로 운명을 운운하는 바보같은 순간들이 좋았다. 날씨를 핑계로 장갑을 빌려주고 돌려받을 날만 기다리는 날이 생겼다. 날씨가 추운 게 부쩍 마음에 들었다. 계속 추운 날만 있었으면 했다. Q의 낮고 굵은 목소리를 좋아했다. 친구들은 잘 부르지 않는 내 이름을 불러주는 Q가 좋았다. 보고 싶다고 하면 새벽 두 시에도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Q가 좋았다. 그때 Q를 좋아하지 않는 방법은 없었다.           




Q가 유학을 가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헤어졌다. 몸이 멀어져서인지, 시차가 문제였는지, 마음이라는 건 원래 제멋대로인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예전의 Q와 지금의 Q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Q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제 헤어져야만 한다는 것만 알았다. 마음이란 건 원래 그렇게 잘 변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헤어지자고 말하는 순간에도 Q를 좋아했기 때문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전의 이별들을 생각했다. 헤어지고 나면 지난 일들이 도매금으로 쓰레기가 돼서 추억을 억지로 폐기처분하는 일들이 싫었다. Q와 지낸 시간을 잃거나 잊고 싶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Q를 좋아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 것은 Q였다. Q는 헤어진 연인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자주 연락을 해왔다. 문제는 나는 Q를 친구로 생각할 수 없다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Q는 자기가 얼마냐 힘든지 아냐며 나를 괴롭혔다. 기껏 잊을만하면 연락해서 무책임한 말을 하는 게 싫었지만, 연락을 받아주는 나는 더 싫었다. Q를 다시 알면 알수록 나를 미워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Q는 한국에 돌아와서 또 밥을 먹자고 했다. 약속 당일, Q는 연락도 없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멍하니 카페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이런 말을 들어줄 친구도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Q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Q보다 Q를 믿은 나를 더 미워하게 됐다.      


Q는 자기가 원할 때 사과를 했다. 전화를 안 받으면 연달아서 수십 통을 전화하고, 차단하면 친구 핸드폰을 빌려 모르는 번호로 전화했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으면 취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사과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취해서만 할 수 있는 사과는 사과가 아닌 것도 알았다. 내가 아는, Q를 좋아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Q를 미워하는 것이었다. Q가 너무 미워서 Q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 날은 Q가 사과 좀 받아달라고, 대답 좀 해달라고 나를 괴롭히는 날이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Q말고도 또 있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회사에 빨랫거리를 가져와서 건네주는 상사나, 아침 7시부터 목공을 한답시고 시끄럽게 전기톱 소리를 내는 아빠가 싫었다. 자신의 편의나 취미가 상대방의 마음보다 앞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결국 자기밖에 모르는구나. 그런 생각만 들었다. 방은 쓰레기장이 됐고 친한 친구와도 절교했다. 매일 로션을 바르는 게 버거워서 얼굴이 텄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신과에 갔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알아차리게 해준, 그래서 결국 병원 문턱까지 오게 만든 Q가 싫었고 이 지경까지 온 내가 한심했다. 1년 정도 병원을 다니고 약을 끊었다. 약을 먹는 동안 마음은 나아졌는데 살이 쪘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Q를 미워한 것조차 Q를 좋아해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Q가 밉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Q에게 사과받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묻지 못하고 참았던 일도 다 따지고 싶어졌다. 적어도 네가 나한테 그랬으면 안 되는 거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싶었다.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했다. 미안하다고 말해달라고 했다. Q는 늘 그랬던 것처럼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Q를 믿지 못해서 그런 일들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에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용서하는 일은 복잡한 일이었다. Q를 용서하면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Q를 용서했다는 것만으로 나는 나를 더 미워하게 될 테니까. 어쩌면 나는 Q보다 나를 미워하는 일에 더 앞장섰던 사람이니까. 이제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폐기처분할 마음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 사람은 나 말고는 없었다.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Q를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는 일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용서하지 않는 법은 나를 사랑하는 법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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