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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Nov 13. 2018

브런치 작가된 지 2분만에 좌절하다

한 달 동안 작가명을 바꿀 수 없다고요?


고요하게 정돈된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플랫폼을 찾고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는 일단 너무 광고가 많다. 말은 이렇게 해도 치킨 신메뉴가 나올 때마다 손가락이 닳도록 검색해보곤 하지만, 포스팅 말미에 어느 회사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는 말이 쓰여있다면 너무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 아니 치킨은 내 돈으로 사 먹어도 맛있는데 남이 사주는 치킨은 당연히 다 맛있는 거 아닌가? 틴트 신상도 마찬가지다. 출시도 전에 전색상 발색을 하는 자들은 대개 뷰티 블로거들이고, 그마저도 그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받았다는 점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인스타그램은 일상을 공유하기엔 좋지만, 긴 글을 올리면 장문충 취급을 받고, 아이 사진을 잔뜩 올린 채로 다단계를 하는 자들이 포진되어 뜬금없이 팔로우 요청을 해오기에 부담스럽다. 그런 이유로 브런치 어플을 깔았다. 처음 들어와서 보니 글을 쓰는 자들을 작가라고 불러주는 게 꽤나 있어 보여서 구미가 당겼다. 그래. 역시 작가라면 필명이지. 작가명을 만들지 않고는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아서 삼일 밤낮을 고민해 필명을 결정했다. 간과한 점이 있다면 그 시간이 새벽 1시 반이었다는 것. 다음날 다시 보니 너무 후져서 브런치를 탈퇴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서야 브런치는 작가 신청을 해서 승인받은 사람들만 글을 쓰고 공유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작가의 서랍에 담긴 글 0개. 브런치팀에서 승인받은 적 전혀 없음. 그런 주제에 삼일 밤낮을 새워 작가명을 만들 생각부터 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일단 되고 생각해도 늦지 않은데.. 그러면서도 아직 쓴 건 없지만 내가 쓸 말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써도 보여줄 수가 없다는 게 갑자기 너무 화가 났다. 아무리 써도 발행할 수 없는 브런치의 마법.. 브런치 니가 뭔데! 내 글쓰기를 막아!




화가 나서 홧김에 도전했다. 며칠 동안 새벽까지 공들여 글을 쓰고, 자려고 누워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된 듯 무한 퇴고를 반복하여 결국 신청서를 냈다. 아니 회사 자소서도 이렇게 열심히 쓰진 않았는데??? 너무 잘되고 싶은 마음에 인생의 암흑기에 만든 비밀 블로그 주소와 대학시절 딱 하나 써본 칼럼 url까지 알차게 첨부했다. 브런치팀에서 바로 고맙다고 넙죽 연락이 오길 기다렸는데 오질 않았다. 성격이 급한 나머지 하루하루 불안감에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결과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브런치 작가 등단의 기쁨도 잠시. 작가된 지 2분만에 작가도 아닌 주제에 성급하게 도메인부터 파버린 게 생각나 좌절감에 속이 쓰렸다. 이세상 모든 파워블로거가 나 대신 늘 공짜로 치킨을 먹고 틴트를 발라도 이보다 좌절스럽진 않을거다. 부끄러워서 입에 담고 싶지도 않지만 당시 내가 만든 필명은 “새삼”이었다.... 새삼스럽게, 새삼스러운,  등등 우리가 새삼스레 생각하게 되는 사소한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고나 할까. 흠. 여기까진 나름 변명의 여지가 있다.


문제는 도메인이었다. 그 때의 나는 잠깐 아재에 빙의했었는지 작가될 생각에 돌아버렸는지 새삼이라는 글자 그대로, 도메인을 birdthree라고 지었다. 그 날 밤 나는 나 자신을 무척 유쾌하고 센스있는 작가라고 착각한 것 같다. brunch.co.kr/@birdthree라니. 다 된 브런치에 벌드쓰리 뿌리기. 10새도 아니고 새쓰리가 웬 말인가. 더 절망스러운 것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작가명을 못 바꾼다는 거였다.


한 달이면 한참 작가 뽕에 취해 자리잡기 딱 좋은 기간인데. 구몬수학도 장원한자도 첫 일주일에는 미친 학구열이 뿜어져 나올 때가 아닌가. 그 황금기에 새쓰리란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니 공들여 쓴 작가의 서랍 속 글들에게 미안해졌다. 아닌 것 같아도 내 글 나름 감성적인데. 작가명이 다 망치네. 그리고 또 화가 났다. 브런치 니가 뭔데! 작가명을 못 바꾸게 해! 화난 마음을 뒤로하고 브런치팀 고객센터를 찾아나섰다. (내가 바보인 건지 숨겨논 건지 찾는데 엄청 오래 걸렸다)



새쓰리가 탄생한 건 9월 18일, 브런치 작가가 된 건 10월 4일이었는데, 당시 나는 10월 18일까지 필명을 바꿀 수 없는 형벌을 받았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시지프스처럼 아무리 멋진 글을 써도 산꼭대기에서 birdthree라는 필명이 굴러 떨어져 내 소중한 브런치를 박살 낼 것만 같았다. 시지프스가 아니라 새지프스인가. 아아. 도저히 이대로는 안돼. 서랍 속 글에 빙의하여 제발 작가명 좀 바꾸게 해 주면 안 되냐고 애원하듯 읍소의 글을 30줄 가량 써서 질척이며 문의글을 올렸다.


(중략)

그리고 놀랍게도 바로 다음 날 브런치팀에서 답변이 왔다. 하하.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처음부터 이름만 잘 지었어도 이런 성공따위 필요없었을텐데.



너무 간결해서 약간 상처 받긴 했지만 정말 고마웠다. 내가 쓴 문장은 30줄. 브런치팀은 단 2줄. 괜찮다. 다 괜찮다. 초기화해줬으니. 가끔씩 ‘안되는 게 어딨어!’라는 억지에도 희망을 걸 때가 있는데 이번엔 아주 의미있는 억지를 부리지 않았나 싶다. 그 결과, 난 지금까지 글을 12편이나 올리며 다작하고 있다. 몇 번은 다음 메인(속 수많은 글들 중 한 편으로)에 소개되기도 했다. 안 바꿨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아무리 글이 괜찮아도 birdthree 작가로 다음 메인에 뜨는 것은 정말 안 될 일.


결론 : 브런치 작가명을 성급히 정했다 해도 한 달 이 지나기 전에 바꿀 수 있다. 10개의 손가락, 그리고 브런치팀의 마음을 흔들 약간의 진심만 있다면!







+덧.

카카오 계정을 연동한 후 브런치 작가가 되면 카톡 친구들이 자동으로 알게 되는 지도 문의했었다.

결론 : 다행히도 카톡 친구들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을 문의하기 위해 페이스북과 연동된 인스타 비밀계정의 흥망성쇠를 설명해야만 했다...



브런치가 참 좋은데 브런치 자체에 대한 궁금점은 어쩐지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질 않아서 공유해본다. 아무래도 직장상사와는 대개 카톡 친구이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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