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튼 Oct 06. 2018

스물셋 그 이후

스물아홉의 나는 더 이상 확신하지 않는다


살다보면 가끔씩 근거없는 확신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19.9살, 수능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나는 그 때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고 자신했다. 당연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를 확신할 때 삶은 보기 좋게 내 기대를 배반하곤 했다. 첫 중간고사를 보기도 전에 아빠는 덜컥 대학병원 심장병동에 입원했고, 나만 똑똑한 줄 알았는데 대학에 오니 나보다 잘난 사람이 백배는 많았다.


게다가 다들 어쩜 그리 잘 꾸미고, 공부도 잘 하고, 어떻게 그렇게 잘 어울려 다니는지 의문의 연속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이 뭔지 전혀 몰랐고, 암기말고 이해한다는 것이 어색해서 쿨한 척 수업을 포기했으며, 심지어는 친구하고 싶은 옆자리 동기에게 말 거는 것조차 너무 어려웠다. 그토록 원하던 대학생활이었지만, 말을 하는 순간 여기서 나만 겉돌고 있다는 걸 들킬까봐 자꾸 쪼그라들었다.

나는 꾸준히 옷을 못 입었고, 첫 학기부터 C+를 세 개나 받았다. 100여명이 넘는 같은 과엔 절친한 친구 K 단 한명. 세상 제일 가는 찌질이가 된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을 단 하나도 바꾸지 못한 채 마침내 나는 대학 졸업반인 스물셋이 되었다. 그러나 졸업반이라는 타이틀은 곧 나를 자만에 빠뜨렸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불과 삼 년 전의 나를 가소롭게 여기며 스물셋이야말로 진정 세상을 잘 아는 나이라고 속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스물셋에 첫 연애를 시작했다. 오래도록 갈망하던 연애를 시작한 나는 마침내 스물셋이 모든 것을 다 아는 나이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행복을 너무 자랑하고 싶어 블로그를 시작했고 아이디 끝에는 23이라는 숫자를 붙였다. 매력적인 숫자 23. 이제는 사랑도 알고, 대학도 알고, 취업도 단칼에 해버릴 마법의 나이 23. 2012년의 난 내가 스물셋이라는 점에 푹 빠져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자신있게 아이디에 넣을 수 있는 나이로는 23이 마지노선이 아닐까 싶다. 24는 어딘가 성숙해보이고 25는 너무 중앙값이잖아!)

그래서인지 나의 스물셋은 순조로웠다. 봄에는 휴학을 하고 토익학원에서 조교로 일하며 무료로 영어를 배웠다. 공부도 하고 학원비도 굳고 그야말로 일타쌍피아닌가. 무전여행은 안 다녀봤지만 무전학습도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다. 사랑이 어떤 건지는 잘 몰랐지만 늘 즐거웠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학교 운동장에 앉아 서로의 마음을 누빌 수 있다는 게 기뻤고, 샘 많고 감정기복이 심한 나에 비해 무던한 그는 의지할 구석이 되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지 궁금해서 아침이 기다려졌다.

하지만 여느 연애가 그렇듯 그는 점점 처음같지 않았고 블로그에 대한 관심도 시들시들해졌다. 사랑을 찬미하는 들뜬 노래보단 외로움과 이별의 노래를 주로 들었다. 자주 밤잠을 포기하고 싸우기도 여러 번. 그는 이제 축구나 게임같은 것이 여자친구인 나보다 더 중요해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몇 주 동안 감기로 고생하며 열이 내리지 않아 병원에 가보니 종양이 의심된다 하여 응급 수술을 받고 몸의 일부를 떼 내었다. 봄 학기 휴학을 한 번 더 해야 했다.

수술 이후 첫 외출은 그와 나의 첫 기념일이었는데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껏 기분을 내고 집에 와서 돌연 카톡으로 이별 통보를 받았다. 이젠 아침이 오는 게 제일 무서웠다. 도저히 스물셋에 만든 블로그는 접속할 수 없었다. 23이라는 숫자를 지우고 새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썼다. 매일 우울과 불행과 내 마음을 기록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하고, 어떤 지점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지 기록했다. 꾸준히 발버둥친 결과 스물다섯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스물아홉이다.

스물아홉의 나는 더 이상 확신하지 않는다. 세상을 잘 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살다보니 다신 없을 것 같던 스물셋의 찬란함이 슬며시 나타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스물넷의 고비가 닥치기도 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생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

세상에는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서사가

너무나 많다는 것.

그러니 그냥 현재를 즐길 것.

작가의 이전글 끝까지 알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