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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Dec 25. 2018

동네친구란 무엇인가

약속의 공수표에도 상처받지 않을 것


동네친구.


네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동네친구라고 생각한다. 일단 교회친구나 회사친구와 동네친구는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뭐가 다르냐하면 약속의 탄력성이 다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약속은 무조건 지켜져야하며, 시간도 엄수해야 한다. 늦을 것 같으면 미리 말해주는 게 예의고, 당일날 아프다고 취소하면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의 생채기는 남는다.


하지만 나와 동네친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매일같이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그래놓고 약속은 매일 잡는다. 그리고 우리의 약속은 장바구니에 담아둔 화려한 롱치마처럼 슬그머니 사라지고 만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만나기를 결심하고 실제로는 잠에 든다. 그렇게 친구와 나는 대부분의 휴일을 잠으로 보낸다. 서로를 보고싶어하는 마음은 잊지 않은 채.


우리가 자주 쓰는 세 글자. 만나실?


한 마디로 동네친구는 약속의 탄력성이 매우 높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약속에 우리는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만나고는 싶은데 졸리고, 자고는 싶은데 만나고 싶은 그런 친구. 대부분 내가 졸리면 내 친구도 졸리고, 내 마음은 네 마음이고, 그래서인지 약속은 자주 생겨났다 사라진다. 약속이 깨지면 우정은 돈독해지는 기적의 미라클.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동네친구다.


동네친구와의 약속은 깨기 쉬운만큼 번개도 쉽다. 걸어서 십분거리에 사는 우리는 퇴근하는 길에 돌연 고기를 먹기로 한 적이 많다. 고기 한 점에 상사의 뾰족한 말 한마디를 흘려보내고, 출근할 걸 생각해서 술 대신 머금은 사이다 한 모금에 내 맘같지 않은 후배를 다시 품는다. 소개팅에서 도자기 얘기만 듣다보면 맥주 한 잔이 간절해 밤 11시에 불러내기도 한다. 인생이 풀리지 않을 때. 당장 즉각적인 인간의 케어서비스가 필요할 때. 바로 그 순간에 불러내도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바로 동네친구다.


오늘은 세계인의 명절 크리스마스고 나는 오늘도 그녀를 만나기로 해놓고 실패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약속시간은 16시 또는 21시. 너무 어중간해서 낮잠자다 깨기 딱 좋은 시간이랄까? 여튼 오늘 우리는 낮잠을 네시간 잤고, 자고 일어나니 저녁 일곱시. 그 사이에 우리 둘은 모두 밖에 나갈 생각이 1도 없어졌다. 약속의 공수표를 남발해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 동네친구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니 맘=내 맘. 두번째로 자주 하는 말은 넌 나야..?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그녀를 만나고 싶은 마음만은 여전하다. 6일 남은 올해 안에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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