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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Dec 29. 2018

마법의 주문, 대상포진

2017년 연말 아찔했던 추억


이상하게 안 써지는 글이 있다. 분명히 글로 쓰면 재밌을거라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마무리를 하기도 더 쓰기도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는 글들이 꽤 있다. 왜 글이 안 써질까? 반대로 글이 잘 써질 때는 출근길에 글을 대충 완성한 적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소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보통 글쓰기가 주저되는 소재일 때 글이 지지부진해진다. 완성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회사 욕을 하고싶긴 한데 너무 내밀한 속사정이라 후폭풍이 걱정될 때, 기분이 꿀꿀한데 왜 그런지도 너무 잘 알겠는데 그걸 글로 쓰자니 그런 내 자신이 너무 못나보일 때, 아픈 기억을 꺼내보이기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할 때.



작년 연말엔 아빠가 대상포진에 걸려 식구들 모두 고생을 했다. 문득 떠올려보니 벌써 일 년이나 지났길래 기쁜 마음에 글을 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 때 당시에는 응급실을 들락거릴만큼 심각한 일이었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치료하는 데에 몇 달 정도 걸렸던 일이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또, 엄마와 나는 아빠를 간호하면서 자책에 빠지기도 했었다. 대상포진의 취약계층은 면역력이 약한 자. 아빠같은 신장이식환자는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하는데 우리는 그 면역억제제에 대해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면역억제제를 먹는 환자들에게는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면역력 저하라는 부작용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아빠가 쇼파를 옮기다 허리를 삐끗해서 한의원에 갔던 게 화근이었고, 그 중에서도 뜸치료가 제일 치명적이었다. 다리는 상처로 가득했고 아빠 말로는 공기가 스치기만 해도 아프고 따갑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대상포진이었다. (쉽게 썼지만 당시에는 그걸 알기위해 통증의학과, 신경외과, 피부과를 전전했다.) 보통의 대상포진은 수포가 있는데, 아빠의 대상포진은 수포가 전혀 없어서 많이 헤맸다. 그나마도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의 모 레지던트 선생님이 성심성의껏 봐주신 결과로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꾸만 쥐가 난다는 거였다. 스치기만 해도 아픈 대상포진이 다리에 수십개. 그 다리에 쥐가 나자 세상에서 제일 점잖고 말없는 아빠가 비명과 동시에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어쩔 땐 울기까지 했다. 아픈 사람은 본인이 제일 힘들겠지만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무너진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정도다. 쥐가 나는 것을 멈춰줄 수도 없고, 다리가 불타는 것 같다니까 조금도 만질 수 없다. 결국 엄마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빠가 비명을 지를 때 마다 안방으로 뛰어가 괜찮아? 어떡해 라고 말하는 것 하나밖엔 없었다. 울고 싶어도 울 여유조차 없는 나날이었다.


신장이식환자는 어디를 가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기에 2차병원에선 치료를 꺼려한다. 결국 나는 급하게 연차를 내고 아빠를 데리고 응급실에 갔고, 리리카라는 알약과 바르는 연고를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와 병원에 갈 때는 환자가 아빠더라도 항상 아빠 차를 타고 갔는데 이번에는 아빠가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 택시 기사님께 아파트 안쪽으로 꼭 들어와달라고 부탁해야했다. 병원에 도착하면 잽싸게 내려 휠체어에 바로 앉혀야 했으며, 이동하는 시간 동안 쥐가 나진 않을까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


안그래도 아픈 다리에 계속 쥐가 나는 이유를 찾은 건 결국 아빠였다. 정답은 물이었다. 알고보니 탈수 증상 중에 근육경련(쥐)가 있다고 한다. 엄마와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사이, 아빠는 자주 끼니를 걸렀고허리를 삐끗한 뒤로는 물마저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면역력은 점점 저하되고, 다리의 상처도 악화된 것이었다. 자연스레 엄마와 나의 생각은 ‘내가 좀 더 챙겼으면’에 머물게 됐고,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아빠가 대상포진을 물리친 후에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우리를 괴롭혔다.


뭐랄까, 이전까지는 어떤 질병이나 고통 앞에서도 의연했던 아빠의 모습과는 달리 전적으로 나에게 의지했던 모습은 처음이어서일까. 아빠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생생히 직면해서였던 것 같다.




글이라는 건 참 묘하다. 사실은 잘 써지는 글과 잘 써지지 않는 글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안 써지던 글이 스르르 써졌다. 아무래도 어제 쓴 글과는 달리 솔직하게 털어놓아서인 것 같다. 아빠의 대상포진 이야기를 하면, 나와 엄마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기에 망설여졌다. 매번 회사를 핑계로 밥 한 끼 챙겨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맘에 걸렸기 때문이다. 결국 어제 글이 안 써진 것은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지 못해서였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엄마와 나의 입버릇은 역시 기승전-대상포진이다. 아빠가 밥을 먹고도 치킨을 넘볼 때, 내가 사둔 과자가 밤늦게 살해되어 다음날 아침 빈 봉지로 발견되었을 때, 하늘보리를 무지막지하게 마셔댈 때 우리는 조금 짜증나지만 마법의 주문을 외워본다.


“냅두자. 저러다 또 대상포진 걸리면 큰일난다.”


그렇다. 대상포진은 확실히 우리를 이해심 많은 가족으로 만들어준다. 언제까지 갈 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아빠가 못마땅할 때는 마음 속으로 대상포진을 생각해야겠다. 그래서인지 올해 연말은 작년보다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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