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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Jan 01. 2019

스무살의 풍경

2018년의 마지막 밤은 술집에서


어제는 동네친구와 술을 마셨다. 소맥보다 글쓰기가 좋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제는 술이 땡겼다. 아아 회사에서 더럽혀진 귀를 씻어낼 수 있는 것은 알코올 하나뿐. 아무래도 인간은 가끔 모순적이어야 적당히 인간미가 넘치는 법. 1차는 양꼬치, 2차는 이자카야, 3차는 동네술집. 술값이 폭발하지만 오늘만큼은 참는다. 왜냐, 2018년의 마지막날이니까!


제야의 종소리를 집에서 듣고싶다는 친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해서 술을 들이켰다. 소맥과 소주와 맥주의 대향연. 3000원이길래 시켜본 반합라면 국물이 내 마음을 흔들던 차에,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가 심상치않다. 자기들이 00년생이라고 하는 것 같다. 00년생...? 가만 있어보자. 내가 이제 서른이고 90년생이니까 00년생이면..?


여기까지 되짚어보다 친구와 눈이 마주친다. 서로 알 수 없는 웃음이 터진다. 스무살...? 아 저는 90년생이에요~ 하고 나를 소개할 때 늘 듣던 ‘90년에도 사람이 태어나나요?’ 하는 구태의연한 그 멘트를 쓰고 싶어진다. 아니 00년생이 스무살이라니! 00년에도 사람이 태어나나요?! 주제넘지만 스무살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옆테이블의 그들은 술 한 병 시키지 못한 채 내내 기다리고 있다. 2019년의 첫 순간을 술집에서. 음주의 자유가 있는 스무살이 되기를 말이다. 조금 지나자 현명하게도 안주를 먼저 시킨다. 스무살이 되면 제일 먼저 먹고 싶은 술은 뭘까. 소주일까 맥주일까! 꼰대처럼 왠지 모를 흐뭇함에 미소짓다가 그 이후론 술만 마시면 나오는 BEST 소재-부모님, 사랑, 일-등등을 논하느라고 체크하지 못했다.


그들을 보니 나의 스무살 시절이 떠오른다. 음주의 자유를 얻은 기념으로 민증을 고이 챙겨 고등학교 친구들과 호기롭게 소주방에 갔다. 퀘스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의문이 절로 나는 술집이었다. 술을 먹으면서 노래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설렘과 동시에 우린 너무 어설퍼서 안주도 술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슬프게도 그 이후로 다시는 소주방에 간 적이 없다.


3차에서 단 만 원의 지출로 맥주 500 두 잔과 반합라면 한 그릇을 깔끔히 비운 우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나선다. 나만의 음주법칙 1번은 술을 마실 때 돈을 아끼지 말 것. 2번은 숙취해소를 위해 음주 후엔 꼭 네스퀵을 사먹을 것! 어제도 우리는 술값으로 둘이서 12만원을 썼고,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2+1에 네스퀵을 구매할 수 있는 GS25에 갔다.


그런데 어제 밤 그 곳은 이상하게 붐볐다. 거의 인산인해 수준. 새벽 1시가 가까워 오는 이 시간에 편의점이 이렇게 붐빈 적이 없는데! 도대체 뭐지..? 다시 생각해보니 어제는 2019년의 첫 날이었다. 아..! 00년생이 편의점 4캔 만 원 맥주를 살 수 있는 첫 날. 수많은 맥주인파 속에 겨우겨우 네스퀵을 골라 계산을 한다. 편의점 밖에서도 검은색 패딩을 입은 00년생들의 대화가 한창이다.


“노래방에 맥주 가져가도 되나? 어쩌지?”


이 시간에 노래방이라니! 속으로 생각하다가 친구와 또 눈이 마주친다. 큰 소리로 거리가 떠나가라 한바탕 웃는다. 노래방에서 맥주를 판매하는 게 대부분이니 부디 숨겨서 들어가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연히 참았다. 아아 나 이제 꼰대가 되어버린걸까. 여하튼,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한 스무살의 첫 자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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