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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곰 Jun 10. 2024

7. Jun. 흐림.

오늘은 흐리다. 당연한 얘기다. 겨울이 왔다. 겨울엔 해님이 얼굴을 보이는 일이 드믈다. 그 대신 커다란 구름 장막이 하늘을 뒤덮는다. 대부분의 겨울 동안 하늘은 파란색이 아닌 잿빛이다. 올해가 뉴질랜드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인데 작년보다 덜 추운듯한 느낌인 건, 마루 바닥이었던 집에서 이사를 해서인지, 올해 겨울 기온이 평년보다 높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인 것 같지만)

계절성 정서 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겨울이 힘들다. 계절성 정서 장애는 검색을 통해 스스로 내린 진단이다. 한국에서도 추위에 약했던 나는 슬프게도 뉴질랜드라고 딱히 달라진 건 없다.


사계절이 따뜻한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평생 이런 생각 안 하고 잘 살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다가 '언젠가 일 년 내내 여름인 나라로 가서 살 테다!' 결심했던 나는 열이 많은 남편을 만나고 그 꿈이 흔들리고 있다. 일 년 내내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살아갈 그를 생각하니, 내가 한 계절만 견디며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니 요즘 내가 쓰는 글이나 그림, 말은 모두 '춥다, 춥다, 춥다.'다. 10월까지 쭉 이런 날씨에 기온일 텐데, 오늘도 해를 가린 구름을 째려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나는 용기를 내어 크로키를 하러 간다. 손가락은 이미 차가워져 뻣뻣해졌다. 주섬 주섬 연필 하나를 가방에 챙긴다.


Auckland Art Gallery에서 금요일마다 자유 크로키가 진행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의자와 종이, 연필까지 제공한다.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으로 그릴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뉴질랜드에서 만나 인연을 쌓은 작가님 덕에 알게 된 정보다. 나는 뉴질랜드에 살면서 뉴질랜드에서 일어나는 일을 참 모른다 생각했다.


그렇게 몇 번 크로키에 참석했다. 모델은 공개된 장소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라 그런지 항상 남자다. 크로키를 할 때마다 사람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매번 감탄을 한다. 평소엔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을 매주 발견한다. 모델마다 품고 있는 매력이 다른데, 오늘은 무척 섬세하고 세련된 분이었다. 그의 발끝, 손끝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금세 지나가 버렸다.


나는 느리게 세상을 꼼꼼히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1분 크로키는 나에게 아직 빠르게 느껴지지만, 가장 긴 15분 크로키를 하기 전 손 풀기에 적당한 활동이다. 

분명히 즐거운 시간이 될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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