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싫어하는 것들

by 게으른 곰

목요일 아침 8시 30분. 아이들이 등교해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매일 찾아오는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한다. 차가 달리는 소리와 새소리가 섞여 들린다. 잔잔한 소음이 내가 세상 속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커피를 내렸다. 2년 전, 뉴질랜드 오자마자 에스프레소 머신을 중고로 구입했다. 천천히 구입해도 괜찮은 물건이 있는가 하면, 커피 머신 같이 당장 필요한 물건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여기저기에 중독인 것 같다. 나는 지금 커피와 와인, 유튜브, 넷플릭스 중독자다. 음, 유튜브, 넷플릭스는 중독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독의 경계를 또 생각한다. 기분이 내려앉는 날은 머리를 비우기 위해 영화를 자주 본다. 뉴질랜드에 와서 새로 생긴 습관이다. 한국에서는 유튜브 볼 시간이 없었다. 늘 바빴다. 갑자기 늘어난, 혼자인 시간이 낯설어 잘 사용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보려고 한다. 아직도 잘 안되지만 꾸준함의 힘을 알고 있으니, 묵묵히 반복하면 되는 일이다.


오늘은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 도시락을 만드는 내내 생각했는데 의외로 싫어하는 게 잘 떠오르지 않는다.


먼저, 나는 추위를 싫어한다.

그동안 수없이 말했었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을 생각하자마자 떠올랐다. 나는 한의학 적으로 소음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 한의원에서 내 체질에 대해 들었던 적이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화 기관이 약하고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아마 소음인이다. 5월 22일 목요일 오늘 오클랜드 최저 기온은 9도였다. 지금은 10도가 됐다. 집 창문엔 습기가 뿌옇게 내려앉았다. 춥지만 온 집안 창문을 열었다. 겨울마다 하는 일이다. 책상 밑에 작은 전기난로를 켜놨더니 발이 따뜻하다. 나는 온기가 참 좋다. 싫어하는 글을 쓰는데 자꾸 좋은 게 생각난다. 타자를 치는 손가락 움직임이 뻣뻣하다. 손이 차다. 책상 위에도 난로가 하나 필요하다. 작년 겨울, 손이 너무 시려 작은 난로를 책상 위에 올렸었는데, 얼굴이 너무 뜨겁고 숨쉬기가 힘들어 포기했다. 손 시림은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모르겠다. 문득 물주머니가 생각났다. 글을 쓰는데 자꾸 이런저런 생각들이 튀어나온다. 물을 올렸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내 인생 중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시간이다. 겨울에 즐겼던 썰매 타고, 산에 오르고, 얼음 스케이트는 기본, 눈싸움, 눈사람 만들기, 고드름 따먹기, 미꾸라지 잡기 등 여러 가지 추억이 기억난다. 이상하게 추웠던 기억은 없고 즐거운 기억만 남아있다. 나는 언제부터 추위를 타기 시작했을까. 고등학교 때 나는 겨울에도 교복 치마에 스타킹을 신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당연한 얘기다. 지금은 나도 이해가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의심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커피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체질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커피와 술을 끊으면 다시 몸이 따뜻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 다시 고이 접어 묻었다. 외로운 타국 생활에서 커피와 와인을 빼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다. 물주머니를 더 바짝 끌어안는다. 커피를 홀짝 한 모금 마셨다. 집에서 내린 에스프레소지만 매우 훌륭하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에스프레소 머신을 살 거다. 캡슐 머피, 드립 커피, 프렌치 프레스, 모카 포트 등 다양한 커피를 시도했었는데 지금이 가장 좋다. 뉴질랜드에 와서 롱블랙을 즐겨 마셔 그런가 싶다. 예전엔 커피 필터에 곱게 간 원두를 넣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다시 세척하는 과정이 귀찮다고 느껴졌는데, 지금은 편안해진건 나이가 들어서인지, 시간이 많아서인지 모르겠다.


놀랍게도 두 번째 싫어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몇 분의 시간을 보냈다. 겨우 생각해 낸 건, 복잡한 마트 주차장이다. 주차 공간은 부족하고 주차할 차들은 많을 때, 거기에 행인까지 섞인 그 상황이 싫다. 아마 정돈되지 않은 복잡함을 싫어하는 것 같다. 주차 자리를 찾아 헤매고, 길을 건너는 행인을 피하고, 우회전 직진 좌회전을 하려는 차들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장보기도 전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이 날이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 두 번째 목록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또 다른 싫은 점이 생각났다. 뉴질랜드에서 운전하는 건 매우 즐거운데, 딱 하나 정말 싫은 게 있다. 회전 교차로(Roundabout)다.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내가 한국에서 운전하면서 회전 교차로를 겪은 건 한두 번뿐이었던 것 같다. 뉴질랜드는 어딜 가나 회전 교차로가 있다. 아마 교통량이 많지 않아 그런 것 같은데 처음엔 이게 너무 낯설었다. 주거지역에 있는 작은 회전 교차로는 괜찮다. 우측에서 차량이 진입하고 있지 않으면 내가 가면 된다. 우측 차량 우선 진입이 원칙이기 때문에 우측만 보고 있으면 된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운전 방향이 반대다.) 교통량이 많지 않은 뉴질랜드에 회전 교차로가 많은 건 당연하다. 교통 흐름이 끊이지 않고 신호등이 필요 없으니 전기도 절약되고 차량이 완전히 멈추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 문제는 고속도로 진입진출로에 있는 무려 4차선 회전 로터리다. 일단 멘붕이 온다. 오른쪽만 보고 진입하면 되는데 4차선이라 그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다. 진입 차선을 잘못 선택하면 반대 방향 고속도로로 빠지게 된다. 아니면 옆 마을로 간다. 한 번은 차가 많이 밀리는 시간대에 4차선 회전 로터리에서 차례를 기다린 적이 있다. 이미 10분 이상을 줄을 서서 진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드디어 내 앞차가 진입을 했고 나는 얼떨결에 그 차를 따라붙었다. 그리고 나는 회전 교차로 한가운데 멈춰버렸다. 차가 밀리고 있었고 나는 앞차를 따라 나오면 안 됐었다. 오른쪽에서 빙빙 돌며 오던 차는 내가 길을 막고 있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뉴질랜드 운전자들은 매너 있고 친절하다. 비보호 우회전을 하기 위해 서있으면 반드시 양보해 주는 차가 있다. 차가 밀리는 출퇴근 시간에도 기꺼이 먼저 낄 수 있도록 양보해 준다. 이건 지금은 내게 익숙해졌지만 처음 왔을 땐 무척 신선했다. 쓰다 보니 길어져 나중에 운전에 대한 글을 따로 써봐야겠다.


나는 곧 부처가 되려나 보다. 도무지 싫은 게 생각이 안 난다. 반성한다. 나 자신에 대해 이렇게 아는 게 없다. 메모를 해봐야겠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적어도 10개는 찾아서 다시 한번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 글쓰기가 참 좋다. 마음이 편안하다. 왠지 인생은 뒤로 갈수록 경계가 희미해진다.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서로 섞이며 색이 바래진다. 내 인생은 아크릴화에서 수채화로 변하는 중이다. 예전엔 수채화가 싫었다. 선명하고 경계가 확실한 반짝이는 아크릴화를 좋아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수채화도 좋다. 파랑과 노랑이 절묘하게 만나 만든 초록의 공간이 좋다. 희미하지만 푸근하다. 이렇게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자주 갖다 보면, 다채로운 그림으로 마무리되겠지. 언제 붓을 내려놓을지는 오직 그리는 자만 알 수 있다. 어두운 부분도 더 들춰보고 밝은 부분도 살펴보면서 솔직한 그림으로 완성하고 싶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벽에 걸어놓고 감상할 수 있는 따뜻한 그림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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