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좋아하는 것들

21 MAY 2025

by 게으른 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한다. 전기장판을 낮은 온도로 틀어놓아 따뜻한 침대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요즘 문득, 나 자신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도 뚜렷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오늘은 영어 수업에서 게리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해서 다 잘 먹어!라고 대답했지만 꼼꼼한 게리는 그중에서 한 가지만 골라보라고 했다. 이렇게 쉬운 질문에 나는 대답을 못했다. 아마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에 대한 질문들 중 가장 접근하기 쉬운 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니 그것을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 중에서도 발랄한 음악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조용한 음악도 듣는다. 인생이 담긴 가사가 있는 노래를 좋아하고 록 음악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그룹 밴드 활동을 잠깐 했었다. 그댄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음악가가 됐어도 행복했을 것 같다. 그대부터 나는 기타를 배우고 싶은데 아직도 기타를 배우지 못했다. 아마 이건 내 다음 목표가 될 것 같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무언가를 욕심 없이 계속하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다. 이상하게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렵다. 기타도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워지겠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많은 곡들을 훌륭히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글도 그렇게 되는 걸까? 글도 기타도 아직 경지까지 가지 못했지만, 왠지 기타는 정상에 섰을 때가 예상되지만 글은 예상이 안된다. 글쓰기에도 경지가 있을까? 그 꼭대기에 닿으면 글 쓰는 게 쉬워지는 걸까? 언젠가는 글 쓰는 걸 쉽게 즐길 수 있게 될까? 왠지 안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아직은 오리무중인걸 보면, 나는 지금 글쓰기 왕초보 구역에 서 있는 것 같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한다. 커피와 와인, 맥주를 좋아하고 삼겹살, 순대, 짬뽕 같은 한식을 좋아한다. 혼자 먹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게 좋다.


나는 달리기가 좋다. 평생 운동을 즐기지 않았는데 한때 필라테스를 열심히 했고 지금은 달리기를 한다. 사실 지금 달리기를 한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드문 드문 달리고 있지만, 나는 달리는 기분이 좋다. 너무 힘들지만 어떤 운동을 했을 때보다 만족감이 크다. 무릎이 아파서 달리기를 잠깐 쉬었는데, 그 뒤로 잘 안 달리게 된다. 게을러진 걸까. 아니면 이제 달리기가 안 좋아진 걸까. 아니면 무릎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일까. 아마 다 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좋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다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래서 내가 우울한가 보다. 뉴질랜드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다. 친구를 만들어야겠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는 자연이 좋다. 한국에선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을 쉽게 접하지 못했다. 서울에도 공원이나 한강이 있지만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서울에서 평소 내가 보는 자연은 가로수가 전부다. 우리 동네는 벚꽃 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다. 그래서 봄에 제일 아름답다. 지금은 그 벚꽃을 3년째 못 보고 있는데, 무척 그립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시골에 가서 살까 생각 중인데, 남편은 도시를 좋아해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빈둥거리는 걸 좋아한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은 천국이다. 해야 할 일도 없고 아이들도 없고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날씨 좋은 날은 내 행복이 최고로 올라간다. 노트북 하나면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끼니를 신경 쓸 일도 없고 부지런해야 할 의무도 없다. 가끔 나는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지런할 때가 있다. 사실은 그런 순간이 꽤 많다. 부모가 되면 할 수 없이 철이 든다. 역시 부모 되는 게 누워서 떡먹기가 아니었다. 회사 다닐 때 하던 인터넷 창 순식간에 바꾸기 기술을 지금도 가끔 사용한다. 아이들이 내 뒤를 지나갈 때 나는 빛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아직 녹슬지 않았다.


나는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 이것도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라 그런지 나는 운전이 좋다. 뉴질랜드 와서 운전이 더 좋아졌다. 서울처럼 꽉 막히는 도로도 별로 없고 어딜 가나 아름다운 풍경이라 그렇다. 비가 와도 예쁘고 해가 뜨면 더 예쁘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살아서 좋겠다. 애들이 어렸을 때 남편과 싸우고 집을 나와 의정부까지 운전을 한 적이 있다. 그때가 새벽시간이었는데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다. 아직 장롱면허를 뗀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운전하면서 화가 많이 누그러졌던 것 같다. 아마 운전 때문이 아니고 무서워서 화난 기억이 모두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멍 때리는 것도 좋아한다. 앞에 적은 빈둥거림과 멍 때리는 건 엄연히 다른 취미다. 주로 빈둥거릴 땐 영상을 보거나 잠을 자거나 글을 읽는다. 책이면 더 좋겠지만 주로 커뮤니티 글을 읽는다. 뇌가 도파민에 중독된 것 같다. 멍 때리는 건 요즘 주로 바다 앞에서 한다. 커피 한잔 사들고 바다 앞에 가 벤치에 앉아 한 시간씩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도 보지만 내가 주로 눈길을 주는 건 개들이다. 뉴질랜드 개는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생명체일 것이다. 개도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다르다. 내가 만약 다음에 개로 태어난다면, 뉴질랜드 바다 앞에 집을 가지고 있는 주인을 가진 개로 태어나고 싶다. 지금은 수영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개가 된다면 기꺼이 매일 수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멍 때리는 시간이 지나면 머리가 맑아진다. 개운하다. 앉은자리에 내 잡념들을 내려놓고 온다. 그래서 벤치 주변엔 늘 뭔가가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나 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글쓰기가 이렇게나 놀라운 일이다. 좋아하는 일들을 적으며 점점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글을 시작할 땐 마음에 파도가 높게 일렁거렸는데 지금은 잔잔한 바다가 됐다. 이제 수영하러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고요하다. 다음엔 내가 싫어하는 것들도 적어봐야겠다. 그날도 과연 파도가 잔잔하게 가라앉을지, 아니면 더 일렁거릴지, 확인해 봐야지.


나는 글을 끝맺을 때가 좋다. 뭔가 잔뜩 써놓으면 한 가지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번엔 단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