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MAY2025
어젯밤 11시 30분.
둘째가 기침을 한다. 지금 우리 가족은 모두 감기에 걸렸다. 다행히 많이 앓지 않고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둘째는 따뜻한 차를 마시라는 내 권유에 물을 끓이기 위해 수도를 틀었다. 그리고 사건이 또, 시작됐다.
‘엄마 물이 안 나와.’
가슴이 쿵 떨어졌다.
대체 왜? 잘 나오던 물이 한밤중에 갑자기 안 나오는 경우는 또 뭐지. 얼른 싱크대로 달려갔다. 수도를 틀었는데 정말 물이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로 가봤다. 화장실도 물이 안 나온다. 샤워기도, 세탁실도 모두 물이 말랐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뉴질랜드 수도 공사를 검색했다. 오클랜드 서쪽이 지금 수도 공급 중단 상태인 걸로 표시된다. 그 외의 지역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수도 공사가 예정되어 있을 경우 당연히 미리 공지를 한다. 구글에 단수에 관련된 질문을 찾았다. 대게는 무서운 말들이 쓰여있었다. 집 파이프가 땅속에서 새고 있거나, 다른 어떤 문제로 인해 공급이 자동으로 차단될 수도 있다고 했다. 작은 한숨이 나왔다.
3주 전쯤, 새벽에 세탁기로 연결된 호스가 터져서 세탁실이 물바다가 됐었다. 그 난리가 난 지 겨우 몇 주가 지났는데 이번엔 물이 고갈됐다. 원인도 모른다. 늦은 밤이라 누구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원래 11시가 되기 전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하는데, 이 날따라 늦게 시작한 업무가 밀려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난 아직 양치도, 세수도 못한 상태였다. 정수기에 남아있는 물을 한 컵 따라 양치를 했다. 세수할 양은 안되어 물티슈로 얼굴을 대충 닦았다. 발도 닦았다. 그러다 실실 웃음이 나왔다.
‘대체 왜 이런 일들이 자꾸 생기는 거냐. 아, 뉴질랜드’
얼른 누웠다. 자야 한다. 그래야 아침이 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걱정이 생기면 해결할 때까지 생각을 길게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를 안 만들기 위해 애쓰고, 그럼에도 문제가 생겼을 경우 빠른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항상 작고 큰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더 걱정하고 더 불안한 이유는 영어다. 영어가 늘 걸림돌이다. 한 나라에서 살면서 그 나라 말을 못 하는 건 마음 편히 하루를 살 지 못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내일 나는 또 물 문제와 영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실 물 문제는 내가 해결할 일이 아니다. 나는 영어 문제만 맡으면 된다. 일단 자자. 영어는 도무지 하루 사이에 달라질 수 없으니 컨디션이라도 좋게 만드는 게 내 임무다.
아침 6시, 눈이 떠졌다. 어제 늦게 잠든 이유 때문인지 몸이 무거웠다. 30분을 더 침대에서 꼼지락댔다. 아침에도 물은 안 나왔다. 남편은 어제 전화로 어디선가 공사 때문에 물을 잠궜을 가능성이 많으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아침이면 물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아직 공사가 안 끝났나? 앞집 이웃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른 시간이라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물이 나오는지 물었다. 그리고 답장이 왔는데, 앞집은 물이 잘 나온다고 했다.
근심이 깊어졌다. 만약 어디선가 공사를 한다면 분명히 앞집도 물이 안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왜 우리 집만 물이 안 나오는 거지? 수도 계량기를 찾았다. 아마 도로 앞에 있는 무거운 철판으로 눌려있는 게 우리 집 계량기일 것이다. 아직 해뜨기 전이라 어둠이 사라지지 않은 밖은 계량기가 움직이는 게 잘 보이지 않았다. 수도관리 홈페이지에서 만약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계량기가 움직이는지를 먼저 확인하라고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큰애를 깨웠다. 애들은 잘도 잔다. 모든 걱정은 내 몫이다. 잠이 부족한 큰애는 약간의 짜증을 섞으며 몸을 일으켰다. 한마디 핀잔이 나오려는 것을 다시 집어넣으며 도로로 나갔다. 오늘 일출이 참 예쁘다고 말을 건넸지만 큰애는 해가 뜨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큰애가 불을 비추고 내가 사진을 찍었다.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떠오르는 해는, 정말 아름다웠다. 근래에 본 일출 중에도 손꼽을 정도였다. 그런 날이었다. 아름답고 화나는 날.
집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바뀐 게 없다. 나는 볼 줄도 모르는 수도 계량기 사진을 찍었는데 계량기 숫자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큰애와 차를 타고 근처 마트로 갔다. 공용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보고 간단히 물 세수를 했다. 마트에 들어가려는데 오픈이 8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마트는 차로 1분 거리에 있다. 그 마트 앞에 공용 화장실도 있다는 사실이, 단수된 오늘 나에겐 참 다행이었다. 마치 그 마트와 화장실이 나를 위해 거기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 처음으로 그 화장실을 이용했다. 단수가 아니었다면 아마 한 번도 이용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집이 코앞인데 굳이 밖에서 볼일 볼 이유는 없다. 그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 생겼다.
1시간 후 마트가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물이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니 생수를 사다 놔야 할 것 같았다. 뉴질랜드에서 나는 이상하게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됐다. 예전에도 이렇게 준비를 잘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이건 불안에서 시작된 행동이다. 낯선 환경에서 나는 참 열심히 애쓰며 살고 있었다.
마트 오픈을 기다리는 그 사이,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부동산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다. 일요일에 연락해 미안하지만 물이 안 나온다고 하니 배관 전문가를 보내겠다고 했다. 다행이다. 전문가가 오면 문제가 발견될 것이고 언제 내가 다시 물을 사용할 수 있을지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땅속 파이프가 새는 큰 문제라면 일주일 정도, 아니 더 오랫동안 물을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8시가 지나고 9시가 됐다. 전화가 울린다. 배관공이다. 10시쯤 우리 집에 도착할 거라고 한다. 애들을 깨웠다. 일단 둘째를 데리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보고, 마트에서 생수병 24개를 샀다. 간단한 아침을 위해 근처 빵집에 들러 커피와 빵과 샌드위치도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방금 전 도착한 배관전문가가 우리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제 곧 내 걱정은 끝이 난다. 물을 당분간 사용할 수 없게 될지는 모르지만 문제를 파악했으니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 원인을 모르는 불투명함이 불안한 거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작은 기쁨에 취해있을 그때,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와 거실 벽을 공유하며 살고 있는 옆집 제이콥이 창문을 열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Are you the plumber? Can you repark your car over here please?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왜 내가 부른 배관공의 차를 자신의 집 앞에 다시 주차하라는지 이해가 안 됐다. 나는 그에게 내가 이분을 불렀고, 우리 집 물이 안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질문했다
‘너희 집은 물 나오니?’
그의 답변에 나는 안심했다. 그의 집도 물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아, 역시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었어. 배관공을 부른 건 정말 잘한 일이야!
내가 안도의 기쁨을 느낀 건 단 2초였다. 그 뒤로 따라온 제이콥의 말은 내가 상상도 못 할만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