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MAY2025
시간이 많이 생겼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남편이 있었다면 많은 것들을 함께 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혼자다. 뉴질랜드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가까운 친구는 한 명도 없고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딱히 없다. 1년 차엔 혼자인 게 좋아서 혼자인 시간을 마음껏 누렸고 2년 차엔 사람을 만나볼까 하는 생각만 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올해, 3년 차에 들어선 나는 혼자가 싫어졌다.
나는 평생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친구와 자취를 했고 결혼을 했다. 혼자 1박 이상 여행을 가본 적도 없다. 나는 내가 당찬 성격이라고 늘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혼자 잘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골치 아픈 문제는 항상 남편이 해결해 줬고 고민은 친구들이 들어줬다. 나는 내 일을 열심히 했고 열정도 많았다. 아이들은 큰 문제없이 잘 자라주고 있었다.
그 모든 걸 다, 내가 한 줄 알았다.
진짜 혼자가 되고 나니 나는 딱히 잘하는 게 없었다. 영어를 잘했다면 아마 더 일찍 사회와 연결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성격상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외국에서 그 나라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건, 내가 다가갈 수 있는 세상이 그만큼 좁아진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슬슬 외로움이 스며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도 하루는 길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나는 겨우 최소한의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 사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나와한 작은 약속이 가까스로 나를 붙들고 있다.
나는 밝고 명랑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반면에 외로움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내 곁엔 늘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외롭다는 감정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대비를 안 했다. 점점 기분이 가라앉았고 그 기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으니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요즘, 그렇게 지내고 있다.
금요일인 오늘은 애들이 스포츠 클럽 2개를 하고 저녁 9시나 돼야 집에 돌아온다. 나는 오늘 11시간 동안 혼자다. 아이들이 어릴 때 육아가 너무 힘들어 아이들이 얼른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종종 있다. 드디어 그때가 왔는데 생각만큼 좋지가 않다. 인생을 호기롭게 장담하면 안 된다. 이 방대한 시간을 나는 무엇을 하면서 보내야 할까. 아침을 간단히 먹고 영화를 봤다. 영화를 원래 좋아하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면 시간이 잘 간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이상하다. 나는 자꾸 예전의 나를 잊는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시간이겠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내가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어디선가 잠자고 있던 옛날의 내가 불쑥 나타났다. 나는 스레드를 열어 글을 올렸다.
‘뉴질랜드에서 다들 뭐 해? 운동이나 취미 모임 있으면 추천해 줘! 아니면 나랑 커피 마실 사람? 너무 심심하다!’
글을 올리고 40분 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처음 본 분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곧 다가올 뉴질랜드의 겨울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는 얘기를 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대화를 했다. 그냥 사는 이야기.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나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저 나답게 살았으면 되는 건데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 용기라고 할 것도 없는, 작은 행동이 세상을 뒤집었다. 그걸 깨닫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지금도 그 스레드 글엔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다. 뉴질랜드에 나처럼 심심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나만 혼자인 줄 알았다. 나만 심심한 줄 알았다. 별생각 없이 올린 글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릴 줄이야,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아마 겨울이 오고 있는 중이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 됐든, 덕분에 한동안은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