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MAY2025
아침 7시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이제 막 수평선을 간신히 올라온 해가 내뿜는 한 두 줄기 빛이 창문 블라인드를 뚫고 방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집 앞 도로에 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일요일 아침부터 어딜 그리 바쁘게 가는지 해뜨기 전인데도 참 부지런하다. 하긴 뉴질랜드는 하루의 시작이 빠른 편이니 이미 일어난 지 두어 시간 지나 모닝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바쁜 그들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어제 마신 화이트 와인 2잔 때문에 몸이 무거운 오늘 아침은 아무 할 일 없는 사실이 감사하다. 이불을 턱밑까지 잡아당겼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일찍 마감하는 뉴질랜드에 산지 3년째가 되니 나도 잠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어쩌면 나이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원인을 찾지 않는다. 모든 일을 대충 어물쩍 넘어가는 것도 나이 때문일 것이다. 요즘 나이 탓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신체적인 변화가 많아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늙어감'을 느끼고 있다. 밤 10시만 되면 정신없이 졸음이 쏟아지고 새벽 5시가 넘어가면 눈이 떠진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는 게 신기했는데, 내가 이제 그런 나이가 됐다. 어젯밤, 와인 2잔을 마셨다고 다음날 몸이 무거운 것도 그렇다. 30대까지만 해도 맥주를 좋아했다. 가끔 와인을 마시기도 했지만 맥주가 좋았다. IPA를 제일 좋아하는데, 씁쓸함과 과일향이 어우러지는 맛이 좋았다. 40대가 되면서부터 와인을 즐겨 마시게 됐다. 마침 뉴질랜드에 오기도 했고 나에게 더 맞는 술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 맥주를 마시면 다음날 몸이 쑤신다. 젊음과 함께 맥주를 분해할 수 있는 능력도 사라졌다. 그래서 나이가 드는 게 아쉬운가 보다. 좋아했던 것들과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꽤 오랫동안 침대에서 나가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아직 많이 춥진 않지만 겨울이 오고 있다. 며칠 전 아침 기온이 9도로 내려간 날, 갑자기 서늘해진 공기에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점점 일어나기 힘든 날이 많아지질 것이다. 작년 겨울을 생각했다. 정말 너무 추웠는데,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닌걸 보니 겨울은 시작도 안 했다. 가을이다. 한여름이 7,8월이듯 한겨울도 그쯤 되겠지. 이제 한 달 정도 남은 늦가을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어느새 햇빛은 블라인드 틈새를 더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방이 환해졌다. 블라인드 틈으로 보이는 나뭇잎은 흔들흔들 아침 바람에 몸을 털어내고 있다. 맑은 날이다. 아, 그래서 다들 일찍 어디론가 떠나는 중인가 보다. 다음 주 아이들이 시험을 줄줄이 앞두고 있는 우리 집은 조용히 집에서 보낼 예정이다. 혼자 산책이라도 하고 올까 잠깐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귀찮음이 따라왔다.
아이들은 아직도 한밤중이다. 어쩜 저리 잘 자는지, 신기하다. 나도 저 나이였을 땐 잠이 많았었나. 잠을 많이 자면 허리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10시간이고 11시간이고 자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큰애는 나를 닮았고, 작은애는 안 깨우면 오후가 될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차에 타면 상황이 반대가 된다는 것이다. 큰애는 차가 움직이자마자 잠에 들고 작은애는 아무리 오래 차를 타도 눈이 말똥말똥하다. 내가 그렇다. 정말 피곤하지 않은 이상 잠을 자지 않는다. 남편은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타면 금세 잠에 빠진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데 잠을 잔 게 미안한지, 자다가 혼자 화들짝 놀래 안 잔척하며 나에게 말을 건다.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버리고 만다. 모른 척해주고 싶은데 남편의 연기가 너무 어설프다. 차멀미처럼 차만 타면 잠을 자는 두 명은, 이건 멀미라 본인 의지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소연 같은 변명을 한다. 나는 괜찮은데 남편은 미안한가 보다. 타우포에서 오클랜드까지 혼자 5시간 정도를 운전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옆에서 자는 남편을 몇 번 깨웠다. 시간이 갈수록 피곤이 쌓이면서 찾아드는 졸음을 혼자 쫓아내긴 역부족이었다. 오클랜드 거의 다 와서 고속도로가 밀리는데 잠은 쏟아지고 어떻게 해도 잠이 깨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과 반대 방향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남편대신 내가 혼자 운전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초반 시골길에서 남편에게 운전을 조금 맡겼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내가 맡아 처리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이것도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일까? 불안형 완벽주이자. 아마 맞는 것 같다. 음, 그리고 남편의 불안한 좌측 운전 실력도 한몫 더했을 것이다.
남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뉴질랜드에서 운전 때문에 싸운 일, 둘이 갔던 커피숍, 쇼핑몰, 같이 맥주 한 잔 한 일들을 생각했다. 한 달 뒤 남편이 뉴질랜드에 온다. 2주 동안 우리는 다시 온전한 가족이 된다. 어쩌다 보니 이상한 가족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후회와 슬픔의 구간을 지나 이젠 받아들임의 구간에 들어섰다. 여전히 헤어질 때 펑펑 울고, 다음날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웃으며 영상 통화를 한다. 그러면서 살고 있다. 일 년의 딱 중간이 될 때에 우리는 한번 만나고 연말 연초 2달 동안 같이 산다. 참 이상한 가족이다. 한 번도 이런 가족의 모습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인생은 참 제멋대로다. 애들 유학을 갑자기 결정했을 때, 나는 1년 정도만 이곳에서 지낼 계획이었다. 아이들이 적응하면 한국으로 돌아와 남편과 둘이 살 예정이었다. 그렇게 1년을 사는 동안 홈스테이 가정의 여러 문제들을 듣고 접하며 한번 무너졌고, 아이들의 생활 습관 등을 고려해 내가 아이들과 함께 머무르는 것으로 결정했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나의 한국행을 말렸다. 그러면서 남편도 힘들고 나도 힘든 날들이 시작됐다. 우리는 외로움과 싸우며 살았다. 부부이면서 친구인 우리는 서로의 빈자리를 각자 다른 모습으로 크게 느꼈다.
3년째에 들어선 올해, 여전히 아직 삐걱삐걱 거리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다. 나는 영어 수업에 가며 사람을 만나고 있고 남편은 운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 남편의 근육 강의, 식단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고 있다.
해외에 살면서 느낀 점 한 가지는 내가 한국에서 살기를 그 어느 때보다 바란다는 점이다. 그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아니라면, 그 나라 말을 잘하든 못하든, 그 사회에 깊이 속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있다. 물론 고작 2년밖에 살아보지 않았고 영어도 잘 못하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 더 클 수 있겠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인의 정서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수십 년을 이곳에서 지낸 어떤 분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뉴질랜드에서 30년을 살았지만, 본인의 노후를 어디에서 보낼지 여전히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분의 자녀들은 뉴질랜드에서 가정도 이루며 살고 있는데, 그럼에도 고민이 되는 것이다. 자녀 곁에 사시는 게 좋지 않겠냐는 내 말에 그분은 한국으로 가고 싶은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해할 말이다. 환상을 품은 나라도 살면 현실이 된다. 좋은 점만 있는 것도,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닌 그냥 현실이다. 뉴질랜드는 밖에서 보기에 여유 있고 아름다운 나라다. 그럼에도 뉴질랜드 청년들이 해외로 이탈하는 비율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이유도 있는 것이다.
내 입장은, 어차피 다시 돌아갈 여정인데 즐겨야 하는 게 당연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아름다운 이곳을 충분히 즐기고 만끽하며 지내려고 한다. 걸어서 5분 바다 앞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이곳이 나중에 반드시 그리울 것이다. 매일 마당에 찾아오는 새들도 그리울 거고 하버브리지도 그리울 것 같다. 이름 모를 다양한 나무와 식물도 그립겠지. 지긋지긋한 심심함도 그리울지도 모른다. 우울할 틈이 어디 있어.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이곳에서 해야 할 리스트부터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