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JUN 2025
6시 알람에 눈을 떴다. 그리고 천둥이 치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번개가 어두운 방안을 밝히고 몇 초 뒤에 큰 천둥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큰 소리였는지, 그 소리에 깬 둘째가 방으로 들어와 내 옆에서 다시 잠을 청했다. 아이들이 등교한 뒤에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 비를 맞는다면 틀림없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을 것이다. 부디 전화로 아이들의 하소연 섞인 목소리를 듣지 않기를 바랐다. 비는 한참 동안 퍼붓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뉴질랜드 기상 예보는 어쩜 이리 잘 맞는지, 감탄이 나온다. 해가 쨍하게 떠있다가 오후 1시에 비 예보가 있으면 정확하게 그때, 비가 온다. 정말 신기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상청 체육대회날 비가 온다는 우스개 소리를 듣고 한참을 웃었던 일이 생각난다. 섬나라라 기상 예보에 진심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바다 근처에 있는 우리 집에서 긴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날은 안개가 자욱하게 껴 앞이 보이지 않는 날이다. 항구로 진입하는 배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뱃고동을 주기적으로 울린다. 어느 날은 비가 오고 개는 일이 10번도 더 반복되는 날도 있다. 날씨가 참 변덕스럽다.
종일 해가 떠있는 기상 예보를 보고 빨래를 널었다가 잠깐 쏟아지는 비 때문에 빨래를 걷었다 다시 널었다 했던 경험이 몇 번 있는 걸 보면 변덕스러운 날씨를 완벽하게 예상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제 한솥 끓여놓은 토마토 수프는 벌써 동이 났다. 바닥에 깔린 토마토 수프를 모아 한 그릇을 만들어 아침으로 먹으며 새벽에 읽은 어떤 작가님의 글을 생각했다. 애매모호한 태도에 대한 글이었는데, 꼭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듯했다. 읽는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글이 해야 할 모든 것이다. 그런 멋진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앉은자리에서 글쓰기를 바로 시작하는 나는, 이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렇게 글을 시작하고 있다. 아마 글쓰기 공부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도망갈 핑계를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식의 부족이 애매모호함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식이 쌓이면 불투명한 부분이 선명해질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여럿과 식사를 할 때도 메뉴 선택은 늘 내 몫이 아니다. 나는 뭐든 잘 먹는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스파게티가 메뉴로 선정되었을 때도 군말 없이 그 선택을 따른다. 다수의 선택을 따르는 게 편하다. 그런데 기대 없이 먹은 스파게티가 아주 맛있는 경우가 있다. 혹시 기대보다 별로였어도 크게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는 건, 내가 요리를 잘 못하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 뒤로 나는 더욱 메뉴 선택을 타인에게 미룬다. 가리는 음식 없이 대부분 잘 먹는 편이고, 기대하지 않은 음식도 먹어보니 맛있는 경험이 많았고, 게다가 저녁 식사 약속 자리는 밥 보다 안주와 음주를 선호하는 사람이라서도 그렇다.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을 데리고 술집을 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런 경우도 상대에게 메뉴를 묻는다. 술을 마시는 사람과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의 구분은 확실하다. 아! 얼마나 깔끔한지. 이런 선택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상대도 괜찮고, 나도 괜찮은 선택.
혹은, 내가 선택한 음식 메뉴를 상대방이 싫어할까 봐 걱정되는 걸까?
어른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정치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느지막이 20대 후반부터 투표를 시작했다. 그전엔 정치를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외면하고 있다. 나는 골치 아픈 일이 싫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내가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맞을 것이다. 그래도 젊었을 때보다 정치가 눈에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이쪽과 저쪽으로 확연히 갈라진 두 개, 혹은 세 개나 네 개의 방향 중 한 가지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아주 조금 더 마음이 가는 후보나 당에게 투표를 했다. 옳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선 적도 몇 번 있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보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점점 나는 확신을 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정치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 얘기를 하는 사람은 대게가 확고한 자기편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쪽 당이나, 저쪽 당이나 요 쪽 당이나, 모두 비슷한 얘기를 모양이 다르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의 모습대로 ‘잘’ 사는 게 목적이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다르니 선호하는 정당이 다르고 그것을 기반으로 내가 꿈꾸는 세상이 네 것보다 옳고 아름답다는 얘기를 하며 싸우는 것이다. 정치 얘기는 친구와 하지 말자. 심지어 가족이라도 절대. ‘나는 이 정당의 이 모습을 좋아하고, 저 정당의 저런 얘기가 마음에 들어.’ 이런 건 안 되는 거다. 나는 정치적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가 정치 얘기를 하다가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사람의 확신이 부럽다. 내가 확신한 무언가가 후에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깨닫게 됐을 때, 그 심정 말이다. 창피하고 부끄러울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회피인가!
회색은 흰색도 아니고 검정도 아닌 어정쩡한 색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회색은 흰색 67%에 노랑 23%, 갈색 8%, 그리고 초록과 파랑이 조금씩 섞인 색이다.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는다고 그냥 칙칙한 건 아니다. 어쩌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택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겁쟁이라 그런 것일까? 기회를 노리는 기회주의자는 더더욱 아닌데 말이지.
나는 이 세상의 톱니바퀴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경제도 정치도, 사업이나 주식에도 그리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내가 했던 사업이나 주식은 모두 망했다. 숫자를 모르는 사람이 사업을 하면 남는 게 없다는 교훈을 배웠다. 주식이 오르면 올라서 못 팔고, 내려가면 내려가서 못 팔았다. 그리고 항상 가장 낮은 가격에 처분해 버린다. 나는 그냥 자연을 즐기는 게으름뱅이가 되고 싶다. 마당이 있는 시골에 집을 짓고 너른 평상에 누워 바람을 느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은 내 이상향의 삶이다. 그 삶에도 알맹이는 있어야겠지만, 내가 꿈꾸는 쉼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유유자적 흘러가는 인생을 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내가 꿈꾸는 이런 삶도 튼튼한 경제와 안정적인 정치가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니, 그것들을 외면하고 살 수 없는 것도 맞는 말이다.
나 원 참, 생각이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뒤섞이고 얽힌다.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나는 겁쟁이가 됐다.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 살다 보니 올바른 것이 반드시 완전하진 않고, 잘못된 것에도 때때로 이유가 있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그저 옳고 그른지에만 연연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세상의 기준이 나의 섬세함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다. 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거나, 자기 세상의 기준이 없는 사람이다. 체면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책임이 무서운가 보다. 비겁한 자세다. 도망치는 이유에 대해 길게 써내려 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지나 온 그 어느 시대보다도 다양성이 인정받는 시대인데, 반면에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이 가장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인간의 유일한 미덕은 용기라고 했다. 나는 근래에 작은 용기가 세상을, 적어도 나의 세상을 바꾸는 경험을 했다. 내가 결정한 무언가가 틀렸을 때, 당당히 인정해 보자. 내가 한 선택이 나중에 틀렸음을 알게 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기로 다짐해 본다. 그 당시에 내가 얼마나 큰 열정을 가슴에 품고 한 선택인지 되새겨보자. 그 기억으로 기꺼이 책임지는 마음을 갖아보자.
아, 오늘의 글의 결론은 겁쟁이다. 겁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