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JUN 2025
오늘은 올해의 두 번째 영어 수업 마지막 날이다. 사실 다음 주가 진짜 마지막 주이지만 우리에겐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선생님인 Nathalie가 다음 주에 병원 예약이 잡혀있어 오늘이 우리와 함께 하는 마지막 수업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는 임시 선생님이 우리 수업을 맡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 같이 먹고 즐기는 파티를 하기로 했다.
지난 첫 번째 수업이 끝날 때도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 Mission Bay에서 소풍을 즐겼다. 그땐 아직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있는 여름의 끝자락이었기 때문에 바다 앞 잔디에서 갖는 소풍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테이블과 캠핑 의자, 돗자리를 펼쳐놓고 둘러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때보다 지금이 영어가 더 편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함께하는 반 친구들과의 우정은 확실히 커졌다. 두 번째 영어 수업에 재등록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시 수업에서 만났다. 일주일에 2번 수업에서 만날 뿐인데도 얼굴 보면 반가웠고 안부가 궁금했다. 그중 몇 명과는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그래서 이번 수업 종강 파티는 더 즐거울 것이다.
무슨 음식을 가져갈까 생각해 봤다. 요즘 여러 가지 일로 바쁜 날들을 보냈기 때문에 음식 준비를 하지 못했다. 어젯밤에 잠들면서 그냥 브라우니를 챙겨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파티엔 유부 초밥을 싸갔다. 만들기도 쉽고 아이들 도시락 싸는 김에 겸사겸사 몇 개를 더 만들어갔다. 일본 친구가 내 유부초밥을 보고 반가워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갑자기 한식을 싸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간단히 만들 수 있는 한식은 뭐가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순간 언젠가 지난 수업 때 Gary가 한식을 먹어본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해물 파전을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를 한 게 번뜩 떠올랐다.
그래, 김치전을 만들자!
김치가 들어간 음식은 실패할 확률이 적다. 뉴질랜드에서 가끔 김치전을 해 먹었다. 오징어와 새우를 썰어 넣고 만든 김치전은 늘 맛있다. 내가 만든 김치전은 부침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현미가루를 넣고 만들어 바삭한 맛은 없지만, 건강에도 좋고 맛도 그럭저럭 괜찮은 음식이다.
메뉴가 정해졌으니 재료를 사러 가야 한다. 이번엔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 한식을 처음 선보이기 때문에 현미가루 대신 부침가루와 튀김가루, 그리고 김치를 한국 마트에서 구입했다. 수업은 12시에 시작이고 적어도 집에서 11시 30분엔 나가야 하기 때문에 1시간 30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양파를 가늘게 채 썰고, 김치도 작게 썬다. 새우와 오징어도 얇게 썰어 넣었다.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섞은 커다란 그릇에 물을 넣어 하얀 반죽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 나머지 재료들을 모두 넣는다. 간단하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부치기만 하면 된다. 아직 1시간이 남았다. 다행히 시간에 쫓기지는 않을 것 같다. 불을 올리고 기름을 두른 뒤 김치전 반죽을 얇게 프라이팬에 올렸다. 좋은 냄새가 집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익힌 다음 뒤집어 다른 면도 익혀주고 도마 위에 올려 칼로 자르는 그 순간, 가운데 두꺼운 부분이 뭉개지고 말았다. 망했다. 얼른 두 번째 김치전 반죽을 올렸다. 이번엔 첫 번째의 실패를 교훈 삼아 얇게 반죽을 폈다. 뒤집개로 살짝 들어 올렸는데 김치전이 쪼개졌다. 물을 너무 많이 넣었나. 두 번째도 실패다. 1시간 동안 나는 성공한 김치전만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체 뭘 믿고. 심기일전 호흡을 가다듬고 세 번째 반죽을 프라이팬에 올렸다. 밑면이 충분히 익은 다음에 이번엔 손목 스냅을 이용해 뒤집기를 시도했다. 멋지게 성공했다. 그리고 그 뒤로도 2번, 뒤집기 할 때 반죽이 뭉개져 실패했고 3개의 뒤집기를 성공해 나는 결국 4개의 김치전을 접시에 피자 모양으로 썰어 수업 장소로 출발했다. 11시 45분이었다.
10분 지각했다. 파티를 생각하며 잰걸음으로 교실에 도착하니, 내가 생각했던 풍경이 아니었다. 모두 수업을 하고 있었다.
“Why are you guys having class?”
말을 건네니 Nathalie가 짧은 수업을 하고 파티를 시작할 거라고 한다. 마지막 날 무슨 수업이야! 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늘의 주제는 Spam이다. 각자가 겪은 보이스피싱이나 스팸 메일을 이야기해보자며 Nathalie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 뒤를 이어 늦게 들어온 Ian이 들고 온 커다란 꽃다발을 Nathalie에게 건네면서 수업은 또 끊어졌다. 우리는 모두 환호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끄러웠다. 그 뒤를 이어 Mariko가 모두에게 부탁해 모은 Message card를 Nathalie에게 전달했다. 결국 Nathalie는 마지막 수업을 포기했다.
책상을 모아 커다란 식탁을 만들고 둘러앉았다. 각자 다양한 음식을 가지고 왔다. 누구는 새우 칩 튀김을 직접 만들어왔고, 누구는 케이크를, 누구는 김밥, 떡, 파스타, 쿠키, 빵과 치즈, 초밥 등 커다란 식탁이 가득 채워졌다. 음식을 각자의 접시에 담아 둘러앉아 대화를 나눴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으며 우리의 시간을 저장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불과 2-3주 전만 해도 우울하게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내 주변에 친구가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같이 영어를 공부하는 동료들, ART 그룹에서 만나는 크리스, 한국 친구들, 그리고 이웃.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내 주변에 있었다. 그들은 예전부터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건 내 마음일 것이다. 모두 왁자지껄 웃으며 음식을 즐겼다. 우리는 세 번째 수업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물론 아직 다음 주 수업이 남아있다. 하지만 선장 없는 교실은 오늘만큼 신나고 열정적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외롭지 않다. 정말 신기하게도 몇 주 만에 친구가 갑자기 많아진 느낌이다. 나는 처음으로 추운 겨울이 오는 게 별로 슬프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