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JUN2025
조이와 즐거운 밤을 와인 2병과 함께 보냈고 아침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자는 사이 우리는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타카푸나 바다를 걸어 해변 끝에 있는 카페에서 브런치와 커피를 마시고 다시 바다를 걸었다. 마침 썰물 때라 물이 많이 빠져있어 해변은 더 넓었다. 마침, 겨울 영상 10도의 날씨에 수영복을 입은 30여 명의 무리가 즐거운 고함을 지르며 바다에 입수하고 있었다. 조이와 난 그들의 열정과 도전에 부러움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찬 바닷물에 몸을 담그며 살아있음을 마음껏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 곁을 지나쳤을 때, 그들은 물에서 나오고 있는 중이었는데, 모두 한결같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생생한 삶의 순간이다. 우리는 그들 사이를 천천히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으로 떡볶이를 먹고 조이와 이별했다. 월요일에 몇몇과 조이의 이별을 위한 식사가 한번 더 남아있어 다행히 많이 슬프진 않았다.
조이를 보내고 아이들 스케줄을 마친 뒤 둘째는 친구와 배드민턴을 치러 갔다. 둘째는 배드민턴을 정말 좋아한다. 일주일에 1번 시합을 가고 1번 학교에서 훈련을 하고 1번 이상 친구들과 배드민턴장을 빌린다. 그렇게나 재미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첫째와 나는, 이제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오늘은 꼭 세탁기를 사야 한다. 어차피 사야 하는 것이라면 미룰 이유가 없다. 코인 세탁소에서 빨래를 기다리는 일은 정말 지루한 일이다.
코스트코에 다시 갔다. 10개 정도의 다양한 세탁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삼성이나 엘지, 파나소닉과 처음 들어본 브랜드 세탁기들이 있었다. 나는 세 식 구이고 빨래를 자주 하는 편이라 7-8kg 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몇 가지를 선택해 놓고 전엔 대충 훑어본 배송 정책 안내 문구를 자세히 살폈다.
-삼성 제품은 무료 배송
-일반 전제제품은 기본 배송비 79.99달러
+추가옵션
1. 59.99달러 추가: 원하는 방에 배치, 언박싱, 포장 쓰레기 수거
2. 149.99달러 추가: 위 옵션 + 기존 가전제품 수거 및 폐기 포함
이럴 수가. 뉴질랜드는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다. 새 세탁기를 구입해도 기존 가전제품 수거를 원하면 세탁기 가격에 228.98 달러가 추가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코스트코는 무료 배송에 무료 수거 옵션인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운영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하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전자 상가를 다시 가보기로 했다. 코스트코 핫도그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전자 상가로 향했다.
전자 상가에 도착했다. 되도록 이곳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전에 왔을 때 배송 및 기존 제품 수거 비용을 120달러 정도로 들었던 것 같은데 다시 물어보니 160달러라고 한다. 그래도 코스트코보다는 나은 옵션이다. 이것저것 둘러보니 직원이 도움이 필요하냐며 다양한 세탁기의 장점을 설명해 줬다. 나는 작은 용량도 괜찮으니 성능 좋고 그리 비싸지 않은 제품으로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하이얼 제품을 추천해 줬다. 가격이 확실히 다른 세탁기에 비해 저렴했다. 세탁기는 오래 두고 계속 쓸 제품이라 고민이 됐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싶었다. 삼성과 하이얼 중에 고민하다가 삼성 세탁기로 작은 용량을 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6kg은 많이 작아 보였지만 솜이불을 빨지 않는 이상 이불 커버나 옷을 빠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별생각 없이 그 제품을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그런데, Warehouse에서 같은 제품이 150달러나 할인하고 있었다.
Warehouse는 정말 별 걸 다 파는 가게다. 옷도 팔고 그릇, 작은 소파, 스포츠 용품, 학용품 등, 거기다 가전제품까지 판다. 우리가 있던 전자 상가 옆에 있었기에 금방 도착했다. 정말 그 세탁기가 할인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었고 고객센터로 가 그 세탁기 배송에 대해 문의를 했다. 이제 이곳에서 배송과 기존 제품 수거 옵션으로 선택해 결제하면 오늘의 일이 끝이 난다. 얼른 결제하고 배송 날짜를 선택하고 집에 가 쉬고 싶었다. 큰애도 지친 얼굴이다. 아침부터 바쁜 하루가 이제 겨우 끝이 나려고 하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모든 게 다 좋았는데 Warehouse는 70달러 정도의 추가 요금을 내면 배송이 가능한데 기존 제품 수거 서비스는 없다고 했다. 거의 다 왔는데, 또 고민이 시작됐다. 게다가 지금 제품이 남아있는지 확인을 한다고 간 직원이 돌아와서는 박스 제품은 모두 품절됐고 전시되어 있는 상품을 가져가야 된다고 했다. 신이시여. 세탁기를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입하고 싶었던 나는, 어쩌면 오늘도 세탁기를 구입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되어 있는 상품을 보러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세탁기를 이리저리 보다가 한쪽으로 밀어 봤는데, 가볍게 들린다. 생각보다 무겁지 않은 것 같았다. 세탁기 무게를 찾아보니 30kg이다. 갑자기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딸과 둘이 이걸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딸은 내 말을 듣자마자 경악했다. 아직 세상의 어려움을 모르는 철부지다. 이까짓 거 왜 못 드냐는 내 말에, 세탁기를 직접 들고 집으로 옮길 생각을 하는 엄마가 이상한 사람인 걸 모르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어른이 되는 거다. 직원은 혹시 다른 매장에 재고가 있는지 알아봐 준다며, 검색을 하더니 글랜필드에 1개의 재고가 남아있다고 했다. 그곳은 우리 집과 더 가까운 곳이다. 직원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고 우리의 세탁기가 되어야 할, 마지막 한 개 남은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서둘러 글랜필드 Warehouse로 출발했다. 딸의 불만을 30달러 용돈으로 잠재웠다. 드디어 세탁기를 사서 차에 싣고 집으로 직접 옮겨 설치를 할 일만 남았다.
글랜필드 Warehouse에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내가 구입하고 싶은 제품을 직원에게 말했고, 다른 직원이 마지막 세탁기를 우리 앞에 가져다줬고, 결제를 하고, 카트에 실린 세탁기를 돌돌돌 끌어 차 앞까지 왔다. 이제 기도의 시간이다. 이게 우리 차에 들어가야 한다. 남편에게 세탁기를 누워 이동시켜도 되냐고 하니 잠깐은 괜찮을 거라 했다. 천천히 덜컹거리지 않게 집에 가면 된다. 이곳에서 집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트렁크 문을 열고 뒷좌석 의자를 접었다. 세탁기를 눕혀 슬슬슬 밀어 넣었다. 첫 시도에서는 트렁크가 닫히지 않았다. 세탁기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다시 시도하니 두 번만에 성공이다. 안정적으로 세탁기가 차에 실렸다. 세탁기를 싣고 나니,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세탁기를 차에 실어 직접 사 올 가능성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녁 6시가 넘은 시간, 나와 큰애와 세탁기는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배드민턴을 치러 간 둘째가 집에 돌아와 있었고, 그 뒤는 우당탕탕 어찌어찌 흘러갔다. 세탁기를 뒷문 쪽으로 옮기고, 기존 세탁기를 꺼내 창고에 넣고, 새로운 세탁기를 설치했다. 그 과정 중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저 체력만 필요했다.
모든 일을 끝낸 뒤 씻고 식탁에 앉아 코스트코에서 사 온 퀘사디아를 구워 먹으며 아이들과 세탁기 구입에 대한 엄청난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탁기와 함께 차를 타고 오는 중 큰애가 찍은 사진을 보고 우리는 모두 깔깔 웃었다. 차 안이 세탁기로 꽉 차 있는, 이상한 사진이었다. 가전제품을 이렇게 사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물론 너무 힘들어 글도 못쓰고 그림도 못 그리고 잤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뿌듯했다. 남편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세탁기를 실은 카트를 끌고 가는 내 사진은 평생 소장각이라며 웃었다.
그다음 날 아침, 나는 첫 빨래를 했다. 닉이 넘기고 간 낡은 세탁기와는 비교도 안되게 조용했고 예의 있게 끝났다. 세탁이 끝나면 유명한 삼성송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이 노래가 끝나지 않는 음악으로 유명하다. 한국인은 노래가 끝나길 기다리지 않고 세탁기 뚜껑을 열어 버리지만, 외국인은 음악이 끝날 때까지 그 앞에서 기다리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바이올린으로 세탁기 음악에 화음을 맞추는 동영상도 있다. 역시 인생은 각자 자신의 즐거움을 찾는 여정인 것 같다.
첫 빨래를 널었다. 해가 쨍한 날이다. 오후가 되도록 빈둥거리고 있지만, 오늘까지는 쉬엄쉬엄 보내야겠다.
이상하게 6월은 지출이 유난히 많은 달이었다.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일들도 있었지만, 잘 정리가 됐다. 이제 3일 뒤면 남편이 온다. 우리는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런 일, 저런 일, 밀린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기분이 들뜬다. 일기 예보가 걱정되긴 하지만,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우리의 추억을 쌓을 것이다. 삶은 작은 조각들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걱정되는 일이 있어도 너무 염려하지 않고 담담히 하루를 보내려 한다. 그 다양한 조각들 중에 가끔은 너무 튀는 색이 끼어도 괜찮다. 멀리 보면 그 색도 다른 색과 잘 어우러질 것이다. 세탁기 구입기는 쨍한 파란색 조각이다. 힘들었지만 마음에 든다. 세탁기를 사용하는 내내 이 날이 기억날 것 같다. 그래서 빨래가 당분간은 즐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