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Aug2025
에디는 검은색 개다. 품종은 검은 래브라도. 차분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경쾌한 성격이다. 산책을 할 때 줄이 당겨지도록 달리거나 다른 길로 가고자 고집을 피우지 않는다. 에디는 내가 산책시킨 개 중 덩치가 가장 큰 개다.
치앙(Quian)은 에디의 주인이다. 그녀는 내 이웃이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작년 2월, 내 앞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 집은 내가 세 들어 1년을 살았던 집이다. 그녀는 내 집주인이었다. 처음 계약한 집주인은 다른 사람이었는데, 중간에 치앙의 가족이 내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을 구입한 것이다. 치앙은 내가 그 집에서 살기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나가줄 수 있겠냐고 부동산을 통해 연락을 했고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뉴질랜드에 온 첫 해였기 때문에 다시 방을 구하는 것도, 이사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뉴질랜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다. 그 당시 코로나 유행이 끝나고 국경이 열릴 때라, 뉴질랜드로 유입되는 인원이 많아 살 집이 부족했던 것도 이유 중 한 가지였다. 게다가 이제 막살기 시작했는데 나가달라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계약 기간을 꽉 채워 살았고 그녀는 내가 집을 이사하고 얼마 뒤 바로 이사를 왔다. 그녀는 중국 사람이다. 초반에 인사만 나누던 시절, 그녀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나도 영어를 잘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나보다 더 못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는 인사만 했다. "Hi"
에디가 자주 마당에 나왔다. 치앙과 우리 집 마당은 연결되어 있어 에디를 자주 만났다. 에디는 나를 좋아했다. 나도 에디를 좋아했다. 에디와 나는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나는 치앙보다 에디랑 먼저 친해졌다. 가끔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치앙에게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면, 그녀는 항상 괜찮다고 했다. 한두 마디 대화가 길어지면 그녀는 휴대폰에서 번역기를 실행시켜 나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그러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대화가 이어지기 어려웠다.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그녀가 이사 온 지 1년 하고 4개월이 지났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영어 수업을 다니고 있었다. 그곳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과 금방 친해졌다. 선생님은 수업을 정말 잘했고 수업 분위기는 항상 즐거웠다. 내가 영어를 배우는 곳은 Selwyn College로 일반 고등학교였다. 학교에서 어른을 위한 커뮤니티 수업을 따로 진행하고 있었다. 영주권이 있거나 시민인 경우 수업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었지만 나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1학기(약 2달, 뉴질랜드는 1년에 4학기다.)에 NZ$300 정도를 내야 했다. 수업도 좋고 함께 수업하는 사람들과 꽤 가까워졌기 때문에 1학기를 지나 2학기도 등록해 다니고 있었다.
2학기 수업 마감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집 앞에서 치앙을 만났다. 늘 그렇듯 우리는 인사를 하고 헤어져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나갔다. 아직 마당에 있는 치앙에게 말을 걸었다.
“치앙, 너 낮에 집에 있는 거 같은데, 평일에 뭐 해?”
그녀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리?라고 답하며 웃는 그녀를 보며, 요리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럼 나랑 영어 배우러 다닐래? 여기 무척 재미있어.”
나는 그녀에게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뉴질랜드에 살면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의 답답한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영어를 배우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못하고 있다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안 하면 된다. 그녀는 의외로 내 말을 무척 반겼다. 그녀는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어디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예전의 나처럼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무료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우리는 한참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그다음 주 수업을 참관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다음 수업에 친구를 데려가도 괜찮은지 물었다. 가능하다는 답을 듣고 그다음 주, 나는 치앙과 함께 수업에 갔다.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그녀도, 나도 종일 집에 있었지만 이제야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었다. 학교로 가는 25분 정도를 뉴질랜드 이야기, 자식 이야기, 왜 오게 됐는지, 집에서 뭘 하는지, 등등 여러 대화를 나눴다.
그날은 2학기 마지막 주 수업이었는데 우리 선생님인 나탈리가 병원에 가야 했기 때문에 다른 반 선생님이 우리 반과 다른 반을 번갈아 가면서 왔다 갔다 하며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업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며 치앙의 수업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intermediate 반을 다니고 있었는데, 치앙이 참여하기엔 어려울 것 같다고 게리가 말했다. 중국어를 할 수 있는 게리가 그녀에게 중국어로 무슨 수업을 들어야 할지 알려줬다. 수업이 끝나고 나와 치앙은 사무실에서 게리가 추천해 준 2개 수업을 등록했다. 그녀는 다음 학기부터 월, 수, 금, 하루 5시간씩 영어를 공부할 것이다. 게다가 거의 무료로! (책은 구입해야 한다.)
돌아오는 길,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와 같이 다니면 좋았겠지만 나는 화, 목 수업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수업을 열심히 듣기로 다짐했다. 그녀는 나에게 에디를 산책시켜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듣고 보니 그녀의 개 에디는 실외 배변을 하는데 그녀가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집을 비우니 에디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개를 키워봤기 때문에 실외 배변 산책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이 일 후로 상황이 급변해 내가 영어 수업이 수, 금으로 바뀌어서 에디의 실외 배변을 월요일만 해줄 수 있게 됐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영어 회화 레벨이 맞지 않아 오후 수업에서 제외되어 그녀가 집에 12시쯤 집에 올 수 있게 되어, 에디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게 됐다.
그 이후, 우리는 친구가 됐다. 나는 월요일마다 에디를 산책시키고 있고 그녀는 가끔 요리를 만들어 우리 집에 가지고 온다. 그녀의 요리 실력은 무척 뛰어나 식당을 열어도 될 것 같은 수준이었다. 내가 식당을 열어야 해!라고 말하니 그녀는 영어를 배우면 식당을 여는 게 꿈이라고 했다.
행복하다. 매일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살다 보면 어느새 다채로운 색과 다양한 모양의 인생이 만들어져 있다. 매일 느끼지는 못해도 그 순간은 나도 모르게 불쑥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치앙은 나중에 식당을 열게 될 것이다. 그녀의 훌륭한 요리를 다른 사람도 먹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생기길 바란다. 매일매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을 기다리며 날짜를 세고 있던 내가, 이젠 뉴질랜드에서의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세며 그동안 즐거움으로 꽉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뉴질랜드에 있을 때 치앙이 꿈을 이루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그 자리에서 축하를 건네고 싶다. 그리고 요리가 하기 싫은 날마다 그녀의 가게에 가서 주문해야지.
“치앙, 만두 3인분만 포장부탁해!”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