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Aug 2025
뉴질랜드는 크게 키위와 마오리족, 그리고 이민자의 나라답게 여러 국가에서 이민 온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마오리들의 땅에 영국인들이 들어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서양 문화가 들어오면서 산업이 발달하고 영어가 주된 언어로 정착되었다. 그러면서 마오리들의 문화는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기록되어 있다.
현재는 여러 건물 밖이나 내부에 마오리 전통 조각과 문양이 곳곳에 어우러져 있고 지역 안내 표지판에도 마오리어와 영어를 같이 기재하고 있다. 버스 안내 방송도 마오리어로 먼저 나오고 영어가 그 뒤를 따른다. 학교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행사 시작 전 뉴질랜드 국가를 부르는 순서가 있었다. 마오리어 가사가 먼저 나오고 영어 가사가 뒤를 따른다. 처음엔 영어로만 만들어진 국가였다고 한다. 뉴질랜드 국가 가사를 마오리어로 번역해 지금과 같은 순서로 부르게 된 건 나중일이다. 키위들과 마오리족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꾸준히 찾고 있다. 마오리족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그들의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인 라랑가 만들기를 Te Oro 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이다. 그래서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라랑가를 하러 간다.
라랑가(Raranga)는 마오리어로 ‘엮다’, ‘짜다’를 뜻한다. 마오리족의 전통 공예 중 한 가지로, 하라케케(Harakeke, 플랙스)라는 식물을 이용해 바구니나 장식품, 매트등을 만드는 기술과 과정 전부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나무 공예와 비슷한 느낌인데, 긴 식물의 잎을 이용하기 때문에 면적이 넓다. 2-3주가 지나면 초록색 잎이 마르면서 갈색으로 변한다. 그럼 더 아름다운 공예 작품이 된다. 색을 칠하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마른 갈색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
라랑가 수업은 직접 식물의 잎을 채취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잎을 자르기 전 기도를 하고 식물이 제일 가운데 있는 중심 새싹(rito)과 그 양옆의 부모 잎(awhi rito)은 절대 자르지 않는다. 부모 잎 바깥쪽으로 난 잎부터 자를 수 있는데 커터칼을 이용하면 쉽게 잘라낼 수 있다. 어떤 하라케케는 내 키보다 훨씬 더 크다.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듯 하라케케 잎은 무척 강하고 질기다. 정원이 발달한 뉴질랜드엔 나뭇잎이나 나뭇가지 등 정원 쓰레기를 수집하는 센터가 있는데, 그곳에서도 플렉스 식물은 받지 않는다. 그만큼 질기고 억센 식물이다. 왠지 마오리의 정신을 나타내는 느낌이 든다.
첫 주부터 세 번째 주까지는 꽃을 접었다. 잎을 접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의 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식물이 질긴만큼 손가락 힘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지금도 오른쪽 검지에 통증이 느껴진다. 아마 만들기 모임이 끝날 때까지 내내 아플 것 같다. 지금까지의 라랑가 공예를 하면서 느낀 건 식물과 손가락 외 다른 도구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 초반이기 때문에 간단한 작업들을 만들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적당한 솜씨만 가지고 있으면 쉽게 훌륭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주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이번 주 모임에 갔는데 모임 장소엔 아무도 없었다. 수업 진행을 도와주는 스튜어트가 지나가다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혼자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뭔가 이상하다. 이렇게 한 명도 안 올 수가 있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다른 친구가 도착했다. 그녀는 혼자 있는 나를 보더니 다들 하라케케 잎을 자르러 간 게 아닐까? 했다. 아차. 지난주에 빠졌기 때문에 깜빡 절차를 잊었다. 그녀와 서둘러 뒤쪽 공원으로 갔다. 모두 그곳에 모여 하라케케 잎을 자르고 다듬고 있었다. 우리도 서둘러 잎을 자르고 다듬었다. 오늘은 8장의 잎이 필요하다. 8개의 잎을 다듬은 뒤 하라케케 잎을 얇게 찢어 끈처럼 사용해 묶었다.
다시 실내로 돌아왔다. 아까 내가 혼자 앉아 기다리던 곳은 사람들로 꽉 찼다. 오늘은 작은 바구니를 만든다고 했다. 드디어! 바구니를 만든다. 나는 라랑가를 할 때부터 바구니를 만들고 싶었다. 이곳저곳에서 라랑가 바구니를 많이 봤다. 무척 아름다웠다. 언젠가 한번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바구니를 만든다.
모임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기 때문에 3그룹으로 나눠서 만드는 방법을 배웠는데, 우리 테이블은 스튜어트가 가르쳤다. 두껍고 커다란 손으로 섬세하게 만드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줬다. 잎을 가로와 세로로 놓고 앞뒤를 교차해 가며 엮어 기본을 만든다. 나는 금세 배워 쉽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예상한 방법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이 됐다. 엮인 무늬가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올라갔다. 신기했다. 진짜 신기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과정이 진행될수록 나는 계속 감탄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완성을 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내 바구니에 한 마디씩 칭찬을 보탰다. ‘정말 아름답다!’ ‘이것 봐, 네가 해냈어.’ ‘아주 훌륭해!’
주변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리고 내가 봐도 정말 예뻤다. 이건 내 솜씨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하라케케 잎을 엮은 무늬 그 자체가 아름다웠다. 괜히 감동이 밀려왔다. 그저 초보자가 만들기 쉬운 작은 바구니를 만들었을 뿐인데 어느 때보다 만족감이 컸고 그들의 문화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마오리족은 주류층이 아니다. 주류층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키위가 먼저 떠오른다. 현재의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그들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그들만의 역사에 대한 입장이 있을 것이다. 현재에도 마오리족과 키위들 사이에 역사 문제로 이슈가 종종 생기고 있다. 1840년, 식민지화가 시작된 와이이 조약 사본을 국회에서 찢어버린 마오리 국회의원의 행동이나 콘월 공원의 one tree hill에 얽힌 이야기가 그 예이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의 상황에 빗대어 바라보게 된다. 마오리들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조상과 후손,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혈통처럼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동물, 식물, 산, 바다, 강까지 모두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해맑게 웃는 스튜어트의 얼굴이 떠오른다. 스튜어트는 두 번 본 날 나와 허그 인사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꽉 안아준다. 스튜어트가 약싹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다. 스튜어트처럼 마오리는 천천히 그들의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느리지만 강하고 단단하게, 깊은 발자국을 하나하나 내딛고 있다. 다음 주는 나도 그저 취미 생활이 아닌, 그들의 호흡에 맞춰 천천히, 그리고 그들의 정신과 전통을 생각하며 라랑가 만들기를 해봐야겠다.
라랑가 바구니를 만들고 마오리의 역사가 더 궁금해졌다.
역시, 이게 문화의 힘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