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국

by 게으른 곰

엄마는 잔소리가 많다. 내 생각엔 걱정병이 있는것 같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음식은 안드신다. 되도록 안드시는게 아니고 정말 안드신다. 콜라를 좋아하는 내 남편을 볼때마다 늘 잔소리를 하신다.


"오서방, 콜라는 우리몸에 안좋은데, 너무 많이 마시지 말게나."


콜라가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콜라를 먹는 사람도 이유는 있는법이다.


"어머님, 요즘 안그래도 제가 제로 콜라로 바꿨습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하하하"


넉살좋은 남편은 아무 소용없는 말을 하고는 허허 웃는다. 저 정도 잔소리가 무슨 잔소리냐 하겠지만 정말 결혼 후 지금까지 엄마가 남편을 만날때마다 한번도 빼먹지 않고 하는 잔소리 중 하나다. 얼마전에는 추위에 약한 나를 위해 어김없이 엄마는 생강청을 가지고 오셨다.


"너는 몸이 차니까 이걸 하루에 한번씩 차로 마셔. 생강이랑 뭐랑 같이 해서 만든거니까 꼭 하루에 한 잔씩 타서 마셔. 알겠지?"


나는 알았다고 지나가는 말로 대답하고 받아든 뒤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한잔도 타먹지 않았다. 병원 진료 때문에 우리는 일주일만에 다시 만났고 엄마는 냉장고 속에 얌전히 자리잡은, 엄마가 준 그대로인 생강청 병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이것봐, 내가 이럴줄알았어. 아직 열어보지도 않았네. 이거 하루에 한잔씩 마셔. 생강이 몸 찬 사람한테 얼마나 좋은줄 아니? 내가 요즘 이거 매일 마시고 몸이 많이 따뜻해졌어. 알겠지? 꼭 마셔라. 그리고 엄마가 김장김치를 다음주쯤 한통 가지고 올께. 그거 먹다가 뉴질랜드 갈때 싸가지고 가라. 위에 김치 말고 속에 김치부터 먹어. 위에는 말라서 맛이 없어."


엄마는 또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내셨다. 나는 알겠다고 다시 대답하고 엄마를 별다방으로 끌고갔다.

작은 케이크와 밀크티를 주문하고 앉았는데, 조각 케이크 한입을 먹고 내가 맛있다 하니 엄마도 한입 드시면서


"밖에서 먹는 음식은 입에는 달아도 몸에는 안좋은거다. 이런 단 음식은 너무 많이 먹으면 안돼. 입에 맛이없는 음식이 몸에 들어가 좋은거야."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나도 안다고, 몸에 딱히 안좋아도 행복하니까 가끔 먹는거라고 맞받아쳤다. 엄마도 입에 맞으셨는지 단거 안좋아하시는 분이 절반은 드셨다.

오늘 의사 선생님께서 엄마의 혹이 2.8 센치로 커졌다고 했다. 처음 병원을 갔을때 1.2센치였으니 1,6센치가 5년동안 커진셈이다. 이게 3센치가 넘어가면 떼어내는게 좋은데 위치가 깊숙한 곳에 있어 쉬운 수술은 아니라 반년뒤에 초음파 검사를 먼저 해보자고 하신다. 혹이 있는걸 알고 있었고 주기적으로 추적 검사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커버린 혹에 걱정이 밀려왔다. 그동안은 매일 가도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모양이라 우스개소리로 발견 못했으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건데, 괜히 발견해서 귀찮다. 라는 농을 주고 받았었다.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진료가 끝나고 엄마가 신경쓰실까봐 무심히 말했다.


"내년에 또 괜히 초음파 해야겠네. 내가 보니까 모양이 동그라니 물혹이더만."


의학적으로 당연히 아는거 하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나는 그것이 물혹인지 알지 못한다.

엄마도 아무렇지 않은듯 또 음식 얘기를 시작하신다.


"엄마가 토란 가지고 왔어. 집에가서 토란국 끓여줄께. 토란이 얼마나 사람한테 좋은 음식인줄 아니? 소화기관에도 좋고.. 어디에도 좋고..어디에도 좋고.."


엄마는 갑자기 토란 예찬이다. 어릴때 엄마가 종종 끓여주신 토란국 생각이 났다. 어른이 되서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토란국은 엄마가 끓여주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나는 토란을 마트에 파는지 안파는지 조차 모르고, 혹시 판다고해도 눈길 한번 안줬을것이 분명하다.

엄마는 내 집에 오셔서 바로 토란국을 끓이신다. 토란을 쌀뜬물에 한번 삶아 물을 버리고, 다시 맑은 물에 넣고 끓인다. 엄마가 직접 만드신 간장에 마늘, 들개가루, 여러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토란국에 점심을 먹었다. 오래간만에 먹은 토란국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엄마, 진짜 맛있다."


그 한마디에 엄마는 이내 행복한 표정을 지으신다. 자식이 맛있게 먹는게 부모의 행복이다. 그것이 자식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이라고 믿으면 행복은 더 커진다. 엄마는 오늘 들은 의사의 말을 신경을 쓰시는지, 안쓰시는지 그저 자식 입에 들어가는 토란국을 보며 또 다른 건강한 음식 얘기로 화재를 돌린다. 나는 묵묵히 엄마가 끓여준 토란국을 다 먹고 한그릇 더 먹었다. 그리고 엄마의 건강 예찬에 평소보다 열심히 호응을 했다.


엄마는 평생 몸이 아프셨다. 머리가 다 빠지셔서 사발을 쓰셨고 그 때문에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했다. 몸이 약하셔서 체력이 항상 달리셨고 그래도 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억척같이 삶을 살아오셨다. 지금도 엄마는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관절도 아프고 협압약도 드시고 콜레스테롤 약도 드신다. 엄마는 평생 아프셔서 사이비 본인 건강 전문의가 되었다.


“여기가 안아프면 다른데로 아픈게 이동해. 그럼 저기가 아프다가 또 약먹으면 저기는 안 아픈데 요기가 아프고, 에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지만 엄마는 그럴만한 이유와 근거를 나름 가지고 계시겠지.


“너는 나를 쏙 빼닮은 체질이라 네가 아플까봐 걱정이다. 네 동생도 살만 찌고 운동안해서 요즘 너무 속상해. 얼마전엔 통풍도 앓았잖아. 니들이 나처럼 아플까봐 그게 걱정이다. 나를 닮았을까봐 걱정이야.“


엄마는 걱정병이 있다. 건강 염려증이다. 자식이 당신처럼 아플까봐 걱정이다. 아픈 당신을 닮아 똑같이 아플까봐 걱정이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식은 제발 안아프게 잘 살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걱정병이다. 나는 엄마의 잔소리때문에 운동도 하고 엄마가 만드신 무공해 된장, 고추장, 들기름 등을 먹고살고 토란국도 먹고산다. 그 덕에 나는 엄마의 젊은 날보다 훨씬 건강하다.


엄마가 십년후에도 이십년후에도 토란국을 끓여주시며 잔소리 하시면 좋겠다. 그럼 나는 이렇게 답해야지.


“엄마, 진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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