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나의 어린 시절

by 게으른 곰

내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무척 운이 좋았다고 생각되는 것 중 하나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것이다.

나는 말 그대로 진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특별한 제지없이 산에서 들로, 들에서 강으로 껑충 껑충 옮겨다니며 나의 유년기를 자유롭게 지냈다.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은 알것이다.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또 가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각기 다른 공기와 하늘과 땅에 둘러싸여 수만가지 자연의 색과 미세한 공기 속의 작은 물 알갱이까지 계절이 바뀔때마다 함께 바뀐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살던 마을은 산 중턱에 있어 마을에서 시골을 지나는 저 멀리 보이는 도로까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집은 그 풍경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창문을 열면 옆집 벽이 보이는 도시가 아직도 어색하다.

몽골 사람들의 시력이 보통 사람의 것보다 몇배 좋은 이유는, 햇빛 아래에서 수만가지 색을 아주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 끝없게 펼쳐진 지형 때문일것이다.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아이는, 창밖의 회색 벽을 바라보며 자라는 도시의 아이들과는 다른 모양의 씨앗을 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태어난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청소년기는 조금 유난스러웠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도시로 이사를 온 나는 이상하게도 뭘 하고 지냈는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 어렸을때의 기억은 풍성하고 화려한 색으로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는데, 도시에서의 나의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게 시골과 도시의 차이가 아니라 가정 환경의 변화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 경계가 무엇이던간에 청소년기의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 비해 말이다. 고등학교때 음악을 하겠다고 베이스기타 들고 흉내를 냈던 기억, 만화책을 좋아했고 만화부도 만들어 활동했던 일, 친했던 친구들, pc 통신이 유행했을때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채팅을 했던 한국 통신, 짓궂은 장난으로 친구를 울렸던 일들이 생각난다. 이쯤 적고보니 그 중요한 고등학교 시절에 중요한 공부 빼고는 참 많은걸 했다. 그래서 나는 시원찮은 어른이 되었고 시원찮은 회사를 다니다가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손 놓았던 붓을 다시 잡았고 나는 작가가 되었다.

나의 유년기, 청소년기, 20대, 30대, 그리고 지금의 40대가 모두 다른 색으로 칠해진 커다란 캔버스다. 어쩜 이렇게 색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인생을 살아왔을까.

자유롭고 아름다웠던 나의 유년기, 힘들고 어두웠지만 제일 나 답게 살았던 청소년기,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고 우당탕 인생을 배웠던 20대, 엄마의 삶을 살며 나의 작은 씨앗을 다시 발아시킨 30대, 그리고 해외에 살고있는 지금 40대의 나는 각기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유년기와 30대가 만나 작가의 시작을 알렸고, 청소년기와 외로운 40대가 만나 인생을 음악으로 위로받고 있다. 내년에는 꼭 기타를 배울 다짐을 또 한번 해본다. 30대에 육아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데, 40대의 나는 그 아이들과 해외에 살고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행동하고, 느끼고, 말하고, 보고 들은 모든것의 모습이다.


나의 인생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하나 고르라면, 비석치기, 개구리 배에 바람 넣기, 개울에서 가재잡기, 얼음깨고 미꾸라지 잡았던 나의 어린 시절이다. 그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픔이 없다. 그저 놀았고, 웃었고, 먹고 잤다. 인생 중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시간이다. 어른이 될수록 생각이 얽힌다. 어린이는 반드시 인생에서 유일하게 투명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마땅하다. 어리고 작은 그들이 생각이 꽉찬 머리를 갖기 않도록, 눈물로 밤을 새지 않도록, 그저 깔깔거리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머리가 커지고 생각으로 꽉찬 겉만 늙은 우리가 살펴야할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