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외로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by 게으른 곰

하루 사이에 나의 계절은 180도 바뀌었다. 영하 10도의 한국에서 한창 여름인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정확히 53일 만이다. 한국은 지금 겨울의 끝자락이고 뉴질랜드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뉴질랜드에서 또 한 번 겨울을 보내야 한다. 뉴질랜드의 겨울은 길고 음침하고 습하다. 비가 많이 오고 흐린 날들이 대부분이라 해가 뜨는 날이 드물고 곰팡이가 집안 구석구석에 퍼진다. 이미 뉴질랜드의 겨울을 한번 겪은 나는 그 긴 겨울이 벌써 두렵다.

하지만 아무리 투덜거려도 변하는 계절을 막을 순 없다. 나는 올해도 뉴질랜드에서 겨울을 보낼 것이고 겨울이 가고 보상처럼 예쁜 여름이 오면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국은 겨울이다. 어쩌다 이런 최악의 순환 고리 속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알 길은 없다.


나는 겨울을 싫어한다. 추위를 너무 잘 타는 체질 때문이다. 수족냉증이 있고 남들보다 기온에 민감하다. 다시 말하면 낮은 기온에 유독 민감하다. 그래서 여름이 좋다. 눈부시게 밝은 햇빛도 좋고 나무의 진한 초록색 잎들도 좋다. 여름은 나에게 행복을 주는 계절이다. 목청 떨어질 듯 울어재끼는 매미 소리가 잊었던 삶의 열정을 다시 상기시킨다. 어린 시절 어느 여름날, 마루 그늘에 누워 간간히 더위를 식혀주던 작은 바람 조각에 행복을 느끼며 낮잠을 잤던 그날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한창 여름이 무르익었을 시기였다. 시간은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고 매미 소리가 귀를 찢는 듯 시끄러웠다. 나는 반은 잠을 잔 듯, 반은 깬듯한 몽롱한 상태로 한참 동안이나 누워있었다. 땀이 살짝 났고 그 더위를 뒷마당과 앞마당이 통해있는 마루를 통해 바람이 달래주고 있었다. 그때 느낀 감정은 행복이다. 왜 그 시간이 지금까지도 기억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삶에서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여하튼, 나는 지금 그렇게 좋아하는 여름으로 하루 만에 돌아왔다. 정확하게는 12시간 만에 계절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기운이 없고 입맛도 없다. 하루종일 졸리고 몸이 무겁다. 밖은 뜨거운 햇살이 다시 삶의 열정을 느껴보라는 듯 강하게 내리쬐고 있지만 나는 소파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시차 적응이라고 하기엔 한국과 4시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는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뉴질랜드의 여름은 한국과 달리 집안에 있으면 그리 덥지 않다. 많이 습하지 않기 때문에 그늘아래 몸을 숨기면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더위에 그리 지치지 않는다. 낮엔 해가 너무 뜨거워 늦은 오후에 외출을 하고 있는데 늦은 오후지만 선글라스는 필수다. 안 그래도 피부가 쉽사리 검어지는 나는 이곳의 태양아래에선 영락없는 동양인이다. 쉽게 타지 않는 백인들 사이에서 여름이면 유독 존재감을 나타내며 지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여름엔 까맣다가 겨울에 그나마 다시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오는데,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이곳은 다시 원래 피부색으로 돌아갈 틈 없이 재빠르게 여름이 온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깊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집 앞바다는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다. 내가 10년만 젊었다면 매일 바다에 몸을 던졌을 것이다. 여름 내내 물속에서 잔뜩 신난 돌고래 한 마리가 되어 시원한 여름을 보냈을 테지. 피부는 더 까맣게 그을리겠지만, 일부러도 태우는 세상에 그게 무슨 문제가 되랴. 나이가 들면서 제일 먼저 줄어든 게 체력이다. 기운이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계절의 변화를 적응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시차 때문인 건지 아무튼 기운이 없다. 밥을 배부르게 먹어도 누워있고 싶다. 섭취한 음식이 에너지로 바뀌지 않는 게 틀림없다. 음식은 위 안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소화 기관에서 어떤 화학 작용을 통해 나에게 에너지를 보내줘야 할 것인데, 아마 장기도 아직 계절 적응을 못했나 보다. 오후 4시가 되었지만 아직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태양에 맞서며 바다까지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바다 앞에 도착하면 분명히 좋을 테지만, 바다까지 가는 5분의 시간이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다. 문득 싱크대 위를 줄지어 어디론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가 눈에 띈다. 도대체 개미들은 이렇게 뜨거운 날에도 어떻게 저렇게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개미는 항상 바쁘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에서 읽은 우화가 아니어도 개미가 부지런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냥 개미는 태어날 때부터 부지런하다. 어디론가 항상 가고 있는 중이고 제 몸집보다 더 커다란 무언가를 들고 끙끙대며 가는 걸 볼때도 있다. 혼자일 때도 있고 여럿이 움직일 때도 있다. 중요한 건, 개미는 늘 어디론가 향한다는 것이다. 집을 두 달 비웠더니 집에 개미가 들어왔다. 음식을 해 먹고 나니 음식물 쓰레기통에 개미가 잔뜩 모였다. 인간과 개미는 같이 살 수 없으니 개미가 다니는 길에 약을 뿌려 두고 집에 들어온 개미는 모두 죽였다. 열심히 일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개미는 참 억울할만하다. 어쩌면 뜨거운 해를 피해 잠시 집 안으로 피신 온 개미 한 부대를 나는 멸살시켰다. 어쩌면 개미도 여름을 나는 게 힘들어 그랬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흩어진다. 지금은 어쨌든 다시 여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온 지 3일째다. 한 번도 겨울이 여름보다 더 좋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는 한국에서의 추웠던 겨울이 좋았다. 그리운 사람을 많이 만났고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편안한 삶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의 한가운데로 다시 돌아왔는데, 자꾸 추웠던 한국이 그립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춥지도 않았던 것 같다. 눈이 많이 와 거리에 수북이 쌓였고 영하 10도 아래로 기온이 훌쩍 내려갔지만 이상하게 나는 하나도 춥지 않았다. 나는 추운 게 죽도록 싫었는데, 어쩌면 추위보다 외로움이 더 싫었나 보다.


그래, 역시 이번 겨울은 그렇게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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