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있는 중입니다"

내게로 가는 산책

by 춤추는바람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집을 나섰다. 근처 공원에 들러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며 걷고 싶었다. 나날이 색을 바꾸는 나무의 모습에 입 속으로 감탄사를 머금었다. 노란빛으로 물들어 바람결에 반짝이는 나뭇잎. 바닥을 뒤덮고 옅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쓰러져가는 것마저 아름다운 낙엽에 한껏 도취되었다.



그때 절뚝거리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중년 여성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까만 걸 보니 아주 나이가 많은 건 아닐 것 같은데 급작스런 병으로 몸의 일부에 마비가 온 걸까. 그런 그녀의 곁에서 손을 잡고 속도를 맞춰 걸어주는 이가 있었다. 베이지색 면 팬츠를 입은 가늘고 곧은 다리, 가벼운 발걸음. 아들인가 싶었는데, 그이의 하얀 머리카락에 눈이 닿았다. 몸에 잘 맞는 면 팬츠와 온통 흰 빛으로 물든 머리카락 사이의 간극이 어색했다. 그 간극은 자신의 몸과 불협하는 아내와 여전히 건강하고 가벼워 보이는 남편 사이보다는 가까운 걸까, 먼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눈앞이 뿌예져 버렸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시간을 향해 갈 것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고 망가지기도 하면서 누군가에게 물리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 방향으로. 온갖 다채로운 빛으로 물이 들어도 하룻밤 새 떨어져 버리고, 부서지고 쪼개져 땅으로 돌아가는 낙엽처럼 소멸을 향해 가는 일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그 과정의 막바지에는 어쩔 수 없이 타인을 지팡이 삼게 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일. 다정하게 누군가의 지팡이가 되어줄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기꺼이 지팡이가 되어줄 수 있을까.



끝이 분명히 보이는데도 나뭇잎은 마지막 순간까지 찬란하게 빛을 토해낸다. 노란빛, 붉은빛으로 색을 발하는 나무를 보며 눈을 비볐다. 이게 실제인지, 총천연의 색을 구현한다고 광고하는 최첨단 TV에서 재생되는 장면인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발광체처럼 붉은 기운을 뿜어내는 나뭇잎을 보며, 저 빛의 근원을, 저 빛의 최후를 생각했다.



아이가 자주 노는 놀이터 앞에는 철망으로 둘러싸인 작은 축구장이 하나 있다. 자주 남자아이들이 무리 지어 축구를 하느라 버글거리던 그곳에 낡은 공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딸아이와 친구가 안으로 들어가 공을 차며 놀았다. 아이들은 진심을 다해 노느라 바쁘다. 오로지 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저희 둘이서 소리를 빽빽 지르며 공을 쫓고 빼앗기도 하는 아이들을 보며 홀린 듯 사진을 찍었다.



노는 아이를 기다리며 공원에 서 있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지곤 한다. 과분한 배경 속에 잘못 당도한 사람처럼 넋을 빼고 주변을 휘둘러 본다. 그렇게 고개를 돌리다 이런 장면 앞에 멈춘다. 노란 미끄럼틀과 그 주변을 감싸고 노랗게 물들어 있는 나무들.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주변으로 해바라기 하며 앉아있는 노인들. 구부정한 허리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할머니와 지팡이에 몸을 기대앉아 있는 할아버지. 그러다 고개를 들면 나무 꼭대기에 앉아 빨갛고 단단한 열매를 단숨에 입 속에 넣어버리는 새가 보인다. 하늘은 잿빛으로 서서히 빛이 빠져나가는데도 나무 발치에 소복이 쌓인 잎사귀에서는 별사탕처럼 빛이 난다.



그렇게 찍힌 사진이 핸드폰 사진첩에 들어 있다. 사진 속 몇 개의 장면을 보다 알았다. 이 모든 게 사라지는 중이라는 걸. 그래서 슬프면서도 아름답다는 걸. 아이의 유년과 뜨겁던 여름의 햇살, 빛나는 가을과 오늘의 햇빛 , 그리고 우리는, 아주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중이라서, 아름답고 슬픈 거라고.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서로의 지팡이가 되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던 것도 그 때문이다. 사라져 가는 두 사람의 삶이 아름다워서. 사그라들고 있더라도 다정하게 손을 내밀고 서로에게 온전히 기댈 수 있다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어서.



마지막을 향해가는 단풍이 오늘도 눈부시게 빛난다. 소멸해 가는 것은 제 빛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함께 걷자고 손을 내미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겸허히 두 팔을 벌리며 사라짐을 준비하는 존재들은 아름답다. 천천히 사라지느라 사라지고도 남을 잔상을 새긴다. 사라지는 일에도 정성을 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