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처럼 살아야지

내일로 건너가는 마음의 지도

by 춤추는바람




오랜만에 집을 정리했다. 어지럽혀진 물건을 치우고 바닥을 쓰는 건 주기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의무적인 마음으로 했다. 이번엔 전적으로 하고 싶어서 마음을 담아 집을 돌보았다. 그 마음이 담겼는지 모처럼 집이 아늑하게 느껴진다. 한결 아름다워졌고 집에 있는 게 더 즐거워졌다. 내 몸을 보살핀 듯 편안하다. 집처럼 나도 조금 아름다워진 것 같다.



한동안 집안일이 싫어 간신히 바닥 청소만 했다. 집을 가꾸는 것의 의미를 ‘하찮은 집안일’ 에만 국한시키는 바람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 삶도 어수선해졌다. 공간은 살고 있는 이를 대변하는 것이어서, 집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를 반영한다. 때가 되니 약속한듯 고운 빛으로 물들며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을 보니 삶의 자리도 때에 맞춰 돌봐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세수를 하고 단정하게 옷을 챙겨 입듯, 나의 일부인 집도 가꿔줘야 겠다고. 어떤 순간에 간신히 얻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사소한 미(美)를 삶의 바탕에 두고 싶다.



시작은 베란다에 있는 화분이었다. 급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화분을 거실로 들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형 화분이 두 개, 중소형 화분이 열 개 정도 되니 공간부터 마련해야 했다. 애매한 위치에 놓여 제 기능을 못하는 선반장이 하나 있는데 그걸 거실 창가 쪽으로 옮겨 화분을 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선반의 한 층을 차지하고 쓰러져 위태롭게 꽂혀 있는 아이의 그림책부터 제자리를 찾아줘야 했다. 창가에 선반장을 놓으려면 원래 있던 큰 테이블을 옮겨야 할 것 같고, 거실 한 편에 어중간하게 놓여 자리를 차지하는 이지 체어도 어딘가로 옮겨야겠고…….



화분만 들여놓으려던 애초의 계획이 대대적인 인테리어 변경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빠르게 머릿속으로 공간의 스케치를 다시 그리고 그 감을 따라 물건을 움직여 보는 건 좋아하는 집안일 중 하나이다. 여러 번 해봐서 혼자서도 요령껏 커다란 가구를 움직일 수 있고. 집 자체를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집 안의 가구를 재배치해 새 집의 기분을 내는 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다. 물리적 공간의 변화가 삶에 부여하는 신선한 기운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창가 쪽에 있던 커다란 테이블을 거실 중앙에 놓고 선반장을 옮겨 베란다의 화분을 들여놓았다. 테이블 때문에 거실이 꽉 차 보이거나 답답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계절감 때문일까, 휑해 보였던 공간에 원목 가구가 지닌 따스함이 채워졌다. 한편으로는 안정감이 느껴졌는데 주말이면 가족이 모여 밥을 먹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테이블이 거실의 중심을 차지했기 때문인 것 같다. 비로소 가족의 생활이 거실의 한가운데서 펼쳐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베란다에 있던 화분을 거실로 들였더니 네모난 거실의 세 면이 식물로 둘러싸인 형태가 되었다. 조금은 식물원 같은 인상이 풍겼고. 한 계절을 식물들과 더 가까이서 지낼테니 그만큼 덜 외로울 것 같다. 내가 보살피듯 이 아이들도 나를 보살펴 줄 테니까. 많은 것이 정지하고 소멸을 향하는 듯 보이는 계절에도 화분 속 식물은 푸른빛을 잃지 않고 더디게 초록의 새 잎을 보여줄 것이다. 그 기운이 건조한 삶에 소소한 기쁨을 건네 줄 테다.



거실장의 첫 번째 칸을 비워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그림책을 모아 꽂았다. 이렇게 두면 아이가 언제든 그림책을 꺼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거실에 자기 물건이 놓인 공간이 있다는 것에 아이가 기뻐하지 않을까. 책을 꽂고 남은 공간을 일부러 아이를 위해 비워 두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꾸며 보라고. 어른의 물건과 아이의 물건이 적절히 섞여 조화를 이루듯, 어른과 아이의 삶이 서로를 존중하며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건 서로의 물건을 섞고 적절한 자리를 마련해가는 일.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듯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그렇게 조화롭게 생활을 섞는 일이다.



“아빠는 새것과 쇼핑을 좋아하는 반면 엄마는 최소한의 물건을 적절한 자리에 놓아두려고 노력했다.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에서 내가 편안함을 누렸던 이유는 편리한 첨단 기기를 향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있어야 할 물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고 물건에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186~187쪽, 하재경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서 하재경 작가는 집이 편안했던 이유로 있어야 할 물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던 사실을 꼽았다. 나 또한 그렇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고 물건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을 좋아한다. 그런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최소한의 물건을 적절한 자리에 놓아두는 걸 중시 여기듯 물건들이 알맞은 자리에 질서있게 놓인 걸 보면 즐겁다. 내 손이 닿아 제자리를 찾은 물건들이 집을 편안하게 했다. 우리 가족에게 맞는 규모로, 필요한 물건들이 적당한 위치에 놓인 집은 내가 바라는 생활, 삶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달팽이처럼 살아야겠다. 자신에게 딱 맞는 집을 이고 느리게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내게 딱 맞는 크기와 무게의 삶을 이고 천천히 더디게 나아가야지. 몸뚱이만으로는 살 수 없음을 잊지 말고, 몸이 쉴 수 있는 집과 그 바탕이 되는 생활까지 잘 챙기면서. 나만의 작은 아름다움을 지으면서.



어린이 집에서 돌아온 아이가 바뀐 집을 보고 여행 온 것 같다고 외쳤다. 그 말을 들어서인지 거실 중앙으로 옮겨진 테이블에 앉아 과일을 먹고 보드 게임을 하며 한가로이 저녁을 보내는데 여행지의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편안하고 아늑한 집, 그런 집에 도착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