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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Jan 22. 2022

타인과 연결되는 삶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모노톤의 벽 위에 드문 드문 걸려 있는 작품들, 낮은 조도의 조명이 빛을 드리우는 공간. 생각에 잠기게 이끌어 주는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작품과의 내밀한 대화에 집중한다. 전시장에서는 외부 세계와 분리된 채 조금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곳에선 육체에 대한 인식보다 작품과 대화를 시도하는 정신만이 가볍게 떠돈다. 작품과 나 사이 가만하고 잠잠한 대화에 귀 기울이는 상태, 그 자체로 즐겁다.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의 전시장이다.


사울 레이터의 눈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이렇다. 무언가를 통해 바라보는, 그래서 흔들리고 뿌옇고 명확하지 않은 대상, 화면의 많은 공간을 비워 두고 아주 작은 일부에 무언가를 넣어두는 방식, 좁은 틈새로 바라보거나 동일한 사물을 반복적으로 포착하는 시선, 예를 들면 우산, 창문, 거울 같은. 그의 시선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세상을 보는 시선-눈높이에서 보이는 개방된 세계-에서 빗겨 나 낮고 좁은, 가려지고 희미한 구석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어렴풋한 실루엣과 흐릿한 색채는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낯선 시선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상태보다 어느 정도의 혼돈 속에 즐겁게 머물길 즐겼던 사람, 신비로운 것을 찾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기보다 가까운 곳을 샅샅이 탐색했던 사람, 그의 눈이 발견한 세상의 조각은 이성보다는 감성적으로 우리를 건드린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남길 바랐던 사울 레이터는 긴 시간 무명으로 사진을 찍었다.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삶에 만족했다. 성공보다 자신을 아끼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중요시 여겼다. 그랬던 그는 세간에 알려지기 전부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자신이 찍은 필름을 슬라이드 영사기로 같이 보곤 했다. 전시장 한 편 작고 어두운 방에 그때처럼 필름이 영사되고 있다.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슬라이드 영사기 자체가 지닌 시간성을 감각하게 한다. 협소한 공간은 친밀하고 개인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희미한 빛이  위로 형체를 만들면  위로 시선들이 덧대어졌을 것이다. 그와 친구들의 시선이 교차하며 그들만의 은밀한 세계가 만들어졌을 시간이 되살아난다. 그들 사이로 부유하는 속삭이듯 낮고 고요한 목소리, 대화가 쌓일수록 까맣게 깊어 갔을 , 친밀해지는 공기. 그곳에서만은 누구의 것인지   없게 엮이어 들며 공명했을 여러 개의 …. , 철컥, 철컥영사기가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울리고 눈앞에서 이미지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언젠가 LA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친구들과 마을을 이루어 살았던 예술가들의 전시를  적이 있다. 가구나 공예품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던 그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며 예술을 키웠다. 마음이 맞는 이들이 모여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예술이 하나로 흐르는 생활. 그래서인지 전시된 작품에서는 따스하고 편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 또한 종종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었다. 마을까지는 아니더라도 주기적만남을 통해 창의적인 에너지와 영감을 나누는 삶을. 책과 영화, 그림과 음악, 사랑하는 것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는 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간은 타인과 함께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남을  없는 존재, 혹은 타인과 더불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있는 존재라고 김영민 교수는 말했다.(<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서로의 잠재력을 자극하고 각자의 삶을 응원해주는 관계,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은 즐겁고 따뜻하리라.






베이킹 스튜디오를 운영할 때 한 달에 한 번씩 책모임과 영화모임을 했다. 책 모임은 멤버를 꾸려 동일한 사람들과 지속했던 반면 영화 모임은 두어 명 친분 있는 사람과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를 초대해 함께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문을 열고 있는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모임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골라 상영회를 열었으니 영화를 보겠다고 찾아왔던 사람들 사이에는 어딘가 취향이 통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영리 목적이 아니었기에 찾아왔던 사람들도 어떤 서비스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영화 <  바이 유어 네임> 틀었던 날이다. 영화 상영을 위한 장비와 와인, 간단한 스낵을 준비했다. 친구 집에 초대받아 좋아하는 영화를 같이 보는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날은 고정 멤버 외에 전혀 모르는 사람  명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  바이 유어 네임> 불가능해 보였던 세계로 작은 문을 내는  사람의 이야기였고 한동안  이야기와 영상에 흠뻑 빠져 있었다.  영화를 낯선 이와 공유한다는 것은 내게도 불가능해 보였던 세계로 작은 문을 그려보는 시도 같았달까. 영화가 시작되고 어둠 속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숨죽이며 영화를 보았다.


 프로젝트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가게    위로 영상을 그렸고 작은 공간이 영화  사운드로 채워졌다. 밖은 어두웠고 간격을 두고 떨어져 앉은 다섯 명의 시선이 하나의  위로 포개어졌다. 이탈리아 북부 시골 마을에서 여름  철을 보내며 일생에  번뿐인 사랑을 통과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걸 지켜보는 사이 영화의 시간처럼 우리의 시간도 농밀해졌다.


우리는 서로를  몰랐지만 영화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공유함으로써 누구보다 친밀한 조각을 나눠가진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난  저마다 마음 깊숙한 곳에 품고 있던 사랑에 대한 단상을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었다. 영화  사랑에서부터 지난 사랑에 대해, 현재의 사랑과 미래의 사랑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랑에 대한 정의에서 가장 멀리까지 나아갔으리라.


“우리가 자신을 내던진 그해 여름의 몇 주 동안 우리의 삶은 거의 닿지 않았지만 우리는 강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시간이 멈추고 하늘이 땅에 닿아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것이던 신성한 걸 내어 주는 곳으로. 우리는 반대편을 보았다.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확인되었을 뿐. 우리는 한때 별을 찾았다. 나와 당신. 일생에 한 번만 주어지는 일이다.”

_안드레 애치먼 <그해, 여름 손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




◊◊



타인을 통해 바라볼 때에만 우리에게 발견되는 이야기가 있다. 감동적인 책과 영화, 음악과 그림을 홀로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발견하는 것을 갈구하는 이유다. 내가 미처   없었던 부분을 발견하는 당신의 시선과 당신이 찾아내지 못했던 생각을 건네주는 나의 목소리가 뒤엉켜 작은 빛을 만드는 순간,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서만 느껴지는 소소하고 친밀한 기쁨을 아낀다. 사울 레이터의 슬라이드 필름이 영사되는 방에서 그런 밤들이 나를 스쳐간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깊어져 갔던 이야기,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길어 올려지던 대화, 몇몇이 모여 앉은자리가 충만하다고 느껴졌던 시간이. 밤이 새벽을 향해가도 지치지 않을  있어 가능했던 시간들, 그런 밤은 삶에서 영원히 지속될  있는  아닐지도 모른다. 눈앞이 흐려진다.


사울 레이터는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성공보다 자신이 아끼고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택할 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성공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작업을 꾸준히 하며 소울 메이트이자 연인이었던 솜스 벤트리와 음악과 , 그림을 향유하며 삶을 살았다. 뒤늦게 그가 유명세를 얻었을 때엔 솜스가 세상을 떠난 후였고, 그는 솜스가 그걸 보지 못한  무척 아쉬워했다. 하지만 솜스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의 작업을 지지하고 인정해주었고, 그런 연인이 있었기에 사울 레이터 또한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작업을 지속할  있었던  아닐까.


사울 레이터가 급작스레  진단을 받고 삶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친구들이 곁에서 그를 보살폈다.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에는 친구들이 찍은 사울 레이터와 그와 관련된 사진, 그가 살았던 집을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 우리가 쫓아야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창작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고독 속에 침잠하는 것과 사람들과의 연결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의 조화에 대해. 기꺼이 삶을 엮고 친밀하고 다정한 기류를 공유하고픈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따스하고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런 이들과 가까이서 삶을 나누며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




“우리는 어쩌면 태어나지 않은 사람, 또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만난 적 없는 사람의 언어를 받아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감정을 느낄 때, 그것은 사실 내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그이에게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투명한 각주로 된 아가미를 양쪽에 매단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누군가의 손에 의해 움직여지고 또 실로 연결된 다른 존재를 움직이게도 하면서 걸어간다. 그런 일들이 너와 나에게 동시성이란 이름으로 나타난다. 만나지 않은 우리 사이를 관절처럼 접합하며 이 세계가 나아간다.”

_장혜령, ‘도플갱어, 두 개의 삶’ <사랑의 잔상들>


, 철컥, 철컥슬라이드 넘어가는 소리가 어둠 속에 유난히 크게 울린다. 영사기가 쏘는 빛이  위로 이미지를 그린다. 60   그가 찍은 빛바랜 컬러 사진이  장씩 넘어간다. 그걸 바라보고 있는 사이 뉴욕의 거리를 걷는 , 친구의 작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아무도 보지 못한 필름을 숨죽여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미지와 이미지로 연결된 길이 과거로 이끈다. 예술가의 ,  사진  타인의 , 누군가의 시선과  시선에 비친 다른 이의 시선이 연결되어 펼쳐지는 세계. 만난  없고 알지도 못하는, 동시대를 살지도 않은 타인과 그들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밀려든다.


타인과의 연결을 느끼는 초월적 순간이 있다. 우리 사이로 보이지 않는 선이 휘감겨 드는  감지하는 지점. 어쩌면 이 세계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무수한 선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는지도, 그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작동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을 나오자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코 끝이 찡하도록 시리고 맑은 겨울 공기가 나를 맞는다. 차가운 대기를 뚫고 날카롭게 떨어지는 햇빛이 강렬하다. 이 계절과 생(生)을 더 열렬하게 끌어안아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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