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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Jan 29. 2022

치유는 그렇게 가능할 것이다

루이스 부르주아 <유칼립투스의 향기>




전시실로 들어서면 동판화(에칭)로 찍어낸 종이에 부드러운 곡선이 표현된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나뭇잎이나 씨앗, 꽃이나 식물 줄기를 연상시키며 여성의 가슴이나 음부를 떠올리게도 한다. 여러 겹 선을 덧대어 그린 드로잉처럼 매끈하지 않은 선은 불완전함 속에서 대상을 어루만지듯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감정을 전달한다. 색이 바랜 것 같은 미색의 종이에 검은색 선으로 그려진 대상은 여성적이고 온화한 인상으로 관람객을 감싼다. 아흔이 넘은 여성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가 만든 판화 작품에서 배어 나오는 기운은 ‘치유’다.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가정교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작가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애착을 요구하는 개인적 관계, 부모, 형제자매,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과 모순(양가적 감정)을 경험했다. 부모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작품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표현되었는데 대표적으로 그녀의 어머니를 나타냈던 ‘거미’와 폭력과 분노를 떠올리게 하는, 방 크기의 재현작 ‘아버지의 파괴’가 있다. 그녀는 출산 이후 부적절한 감정에 사로잡혔고 가족에 대해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감정은 탯줄이 잘리지 않은 채 몸 밖으로 나와 있는 아기와 여성을 표현한 작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찾는 것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디어도 아니에요. 내가 재창조하고자 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그것은 원하면서 주고 싶기도 하고, 파괴하고 싶기도  감정이요. 그러한 힘에 대한 확인(identification)입니다.”*

_루이스 부르주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그녀는 평생에 걸쳐 ‘외로움이나 질투, 분노와 두려움’ 등 인간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재료와 모티브를 탐구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동물과 곤충, 자연에서부터 특정 신체 부위(성기나 가슴, 눈 등)나 얼굴, 초상화, 모성과 가족, 음악과 나선 등 무수한 모티브가 변형되며 그녀의 작품에 등장했다. 그녀의 대표적 모티브로 알려진 거미의 경우 4인치의 브로치부터 30피트 높이의 기념비적인 야외 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작품에 등장한다. 거미는 부르주아에게 태피스트리 복원가로 일했던 어머니를 의미했는데 그녀에게 어머니는 믿을 만한 친구이자 참을성과 진정성을 가진 창의적 인물로 남아있다. 모기를 먹고 치밀하게 거미집을 짓는 거미는 부르주아에게 유용하면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다양한 판화 기법(아쿠아 틴트, 드라이포인트, 에칭, 리소그래피 등)을 사용해 인쇄 작업을 했고 드로잉과 조형, 대형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예술적 시도를 지속했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고 수년간 정신분석에 몰두하기도 했던 작가가 자신의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에 몰두했고, 불안한 감정을 작품을 통해 물리적으로 구현했던 것이다. 그녀는 예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온전한 정신을 지켜줍니다.”, “예술은 예술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작품들 설명하지 않습니다...그것은 엑소시즘입니다.

발굴하고 드러낸 후 내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_루이스 부르주아






◊◊






국제 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유칼립투스의 향기> 전에는 작가가 생애 마지막 10여 년간 작업한 판화 작품과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에 머무르며 병든 어머니를 보살폈던 젊은 시절의 부르주아는 당시 유칼립 투스를 약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억으로 작가에게 유칼립투스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또한 스튜디오를 환기시키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태우곤 했던 작가의 습관을 떠올리면 유칼립투스가 작가에게 실질적이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유칼립투스는 작가의 추억을 자극하여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내는 매개체로 작동하며 '미술의 치유적 기능에 대한 은유'로 쓰인다.




이번 전시의 주축을 이루는 작품은 <내면으로(Turning Inwards)> 시리즈로 제목이 암시하듯 노년에 이른 작가가 자기 성찰에서 끌어올린 것을 담고 있다. 추상적이면서 암시적인 선, 파란색이나 빨간색처럼 단순한 색으로 입힌 채색, 쌍을 이루는 그림과 상승 또는 하강하는 구조 등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긴장감을 자아내면서도 부드러운 선과 색조로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곡선으로 유연하게 흐르는 듯 표현된 대상은 무언가를 포용하거나 거스름 없이 자연스러운 인상을 전한다. 철과 유리처럼 전혀 다른 소재를 배치한 조형물에서도 대조되는 긴장감을 둥그런 선과 유리로 된 원형 조형으로 완화시킨다.




이전 작품에서 강조되었던 불안감과 분노, 폭력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외부와의 역학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치열한 시선이 (‘여성의 집(팜므 메종)’과 같은 작품을 보면 집을 가면처럼 눌러쓴 나체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작품 속 여성은 집으로 대표되는 가족이나 모성에 짓눌린 억압된 존재로 보인다.) 확장과 관조를 통해 자연의 일부인 유기체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변모한 게 아닐까. 씨앗이나 낙엽, 꽃이나 줄기를 연상시키는 작품들 사이 똬리를 틀고 있는 내부 장기, 또는 혈관처럼 보이는 그림은 우리의 몸 또한 자연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처럼 바라보게 한다.










<팜므 메종> 루이스 부르주아






◊◊◊





시선을 끄는 작품은 둘씩 짝을 이루고 있는 <내면으로#4(the smell of eucalyptus)> 시리즈다. 같은 상을 뒤집어 찍은 듯한 두 개의 작품이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나란히 걸려 있는데 같지만 결코 같지 않고, 다르지만 다르다고 할 수도 없는 미묘한 차이가 관람자의 마음을 묘하게 흔들어 놓는다. 그것은 영혼의 짝을 찾고자 헤매는 인간 본질의 고독을 은유하면서 역으로 대체로 짝을 이뤄 존재하는 세상 만물의 이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전시장 입구에는 ‘둘씩 짝지어진’이라는 루이스 부르주아가 쓴 시적인 글이 적혀 있다. 쌍을 이룬 창문을 보며 유칼립투스 나무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애수에 젖어 들려온다. 둘씩 짝지어진 대상을 나열하다 “그리 별 것 아니야”라고 자신을 다독이듯 말하는 목소리가 외롭고 애처롭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




둘씩 짝지어진

집의 창문들.

모두 길쭉한 모양한 채.

둘씩 짝지어 달린

유칼립투스 잎사귀들

거대한

치유의 나무가 있었던

르 카네에서의 나의 어린 시절

자애로운

이중상.

둘씩 짝을 지어

거리에 줄을 서는 아이들

생 브누아 거리의 학교.

둘씩 짝을 지어

가지 줄기 위에 달린

잎사귀들

창문이 두 개 달린 집에서

그 창들이 둘씩 짝지어 밝혀지고-

한 남자와 그의 그림자

한 나무와 그것의 그림자는

둘씩 짝지어 쌍을 이룬다-

그리 별 것 아니야

눈은 영혼의 창

짝-하나의 쌍-짝

_루이스 부르주아





평상시 일기로, 그림의 뒷면과 종이, 물건에 무수한 기록을 남겨두었던 작가에게 글쓰기는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언어에 민감하고 명료하게 표현하길 원했던 부르주아는 사전을 좋아했다고 한다. 글쓰기는 그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활동이었으며 특히 1950~1960년대 불면증을 앓고 정신 분석을 진행하던 시기,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던 동안 그녀의 작품 활동을 대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림책이나 일러스트레이션 책을 내기도 했던 그녀에게 꾸준히 기록했던 단어나 문구, 이름, 간략한 텍스트의 목록은 이후 작품 활동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당신이 그것을 적어 놓는다면 무엇이든 참을 수 있어요.”라는 부르주아의 말에서 그녀를 버티게 해 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





“시도하고 시도하고… 그러다 갑자기 거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될지 몰랐어요. 그것은 미스터리랍니다.”*

_루이스 부르주아




70세가 되어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개최) 미술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된 그녀는 98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새로운 기법과 시도로 누구보다 활발하고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삶에 대처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예술로 온전한 정신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놓지 않았다. 자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예술에 몰두했던 작가, 그래서 70여 년에 걸쳐 끝없이 시도하고 시도했던 작가,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어두운 상처와 두려움, 불안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고요한 ‘치유’의 세상을 만들어낸 사람, 루이스 부르주아. 그녀의 내력을 모르고 본다면 그저 아름답고 여성적인 그림으로 머물고 말았을 작품에서 은은하면서 숭고하기까지 한 향이 느껴질 것 같다.



‘유칼립투스’를 형상화한 그림을 그리기까지, 자신의 기억과 내면을 순전히 바라보기까지 그녀가 거쳤을 불면의 밤이 두텁게 층을 쌓는다.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는 용기, 그녀가 끝없이 내었을 용기는 얼마나 깊은 것인가. 치유는 그렇게 가능할 것이다.










작가 소개*



루이스 부르주아(1911년 파리에서 탄생, 2010년 뉴욕에서 사망)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70여 년에 걸쳐 조각가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설치, 퍼포먼스, 드로잉, 회화,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작업했다. 시적인 드로잉에서부터 전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설치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자신의 불안을 떨쳐 버리기 위해 그 불안을 물리적으로 구현해내곤 했다. 특히 기억, 사랑, 두려움, 유기 등이 그의 복잡하고도 영명 높은 작업 세계의 핵심이다. 부르주아는 1983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수여하는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았고, 이후 1991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국립예술상 조각부문 대상, 1997년에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예술훈장을, 그리고 2008년에는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훈장을 받았다. 1993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관 작가로 참여하였으며, 1999년 참가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세계 유수한 기관들이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뉴욕 현대미술관, 프랑크푸르트 쿤스트페어라인, 런던 테이트 모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등의 회고전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 이 글은 국제갤러리에서 제공하는 전시 해설서와 MoMA의 온라인 아카이브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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