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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Feb 20. 2023

‘공기’를 주제로 한 ‘아름답고 숨이 멎을 듯한 순간’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





Covid-19로 마스크와 함께 보낸 시간은 무의식적으로 행하던 숨쉬기를 되돌아보게 했다. 공기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공기를 공유하는 일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자유롭게 호흡할 수 없다는 현실이 얼마나 삶을 억압하고 제한하는지 여실히 느꼈다. 마스크 착용과 감염 위험에 대한 경계심으로 고립될수록 누군가와 연결되고 접촉을 통해 공감하는 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팬데믹 이후 회복하고 싶은 것은 활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아닐까. 마주 앉아 음식을 먹고 손잡고 포옹하며 입맞춤하는, 여럿이 입을 모아 노래 부르며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더불어 살아간다는 열렬한 감각이 그립다.  



2023년 1월 30일부터 실내에서의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었다. 팬데믹의 종식이 머지않았음을 예감한다.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며 다가올 변화를 맞이하는 시점이다. 호주 브리즈번에 위치한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QAGOMA)에서 ‘공기(Air)’(2022년 11월 26일 – 2023년 4월 23일) 전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1월 호주 브리즈번에 잠시 머물 기회가 있었던 필자는 망설임 없이 전시회 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기’를 주제로 한 ‘아름답고 숨이 멎을 듯한 순간’- ‘AIR’ 전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


“공기는 우리를 서로, 그리고 지구 전역의 생명체-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것, 앞으로 있을 모든 것-와 연결한다. 우리는 공기가 무한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물과 같은 자원과 매우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의 분위기(atmosphere)를 공유하고, 따뜻해진다. 우리는 함께 숨을 쉬지만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같지 않다.”

- 전시 소개 글*



'Air'전에서는 ‘공기’를 주제로 30명 이상의 호주 및 국제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아름답고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을 선보인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토마스 사라세노(Tomás Saraceno)의 공기로 채워진 거대한 캐노피 작품, ‘드리프트: 열역학적 리듬의 우주 웹(Drift: A cosmic web of thermodynamic rhythms)’, 론 뮤익(Ron Mueck)의 기념비적인 인간 조각상 ‘침대에서(In bed)’, 앤서니 맥콜(Anthony McCall)의 설치물 ‘크로싱(Crossing)’, 조나단 존스(Jonathan Jones)의 ‘제목 없음(Untitled(Giran))’을 비롯하여 ‘공기’와 관련한 다양한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는 ‘대기(Atmosphere)’, ‘불타오르다(Brun)’, ‘공유하는(Shared)’, ‘보이지 않는(Invisible)’, ‘변화(change)’라는 다섯 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대기(Atmosphere)’ 파트에서는 행성으로서 지구의 존재와 지구를 감싸고 있는 대기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두 번째 섹션 ‘불타오르다(Brun)’에서는 Covid-19를 통해 공기가 ‘보이지 않는 위협’을 전달할 수 있으며, 지구상에 살고 있는 한, 지역 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듯 공기의 위험성에 집중한다. 전시의 ‘공유하는(Shared)’ 섹션에서는 ‘공유하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연루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이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자, ‘공유하는(Shared)’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올리버 비어(Oliver Beer, 영국 b.1985)의 영상물 ‘입을 위한 작곡 (Composition for Mouth,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I & II (2018) (출연자: 클라이브 버치, 팀 모리아티, 알릭스 데니슨, 소냐 할로웰)’이다. 클로즈업으로 촬영된 동성의 커플은 입술을 맞대고 서로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노래를 나눈다. 첫 번째 영상에서는 어린 시절 이모들에게 배운 원주민 노래를 부르는 팀 모리아티(Tim Moriarty)의 입으로 베이스 가수 클라이브 버치(Clive Birch)가 어린이 찬송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두 개의 작은 눈'을 전달한다. 두 번째 영상에서는 소프라노 알릭스 데니슨(Alyx Dennison)과 소냐 할로웰(Sonya Holowell)이 12세기 독일 베네딕토회 수도원장이자 다수학 작곡가인 빙겐의 힐데가르트의 멜로디와 인도 고전 라가를 주고받으며 두 음악을 병합한다.



영상은 두 사람에서 흘러나오는 다른 숨, 다른 노래가 만나 하모니를 이루는 장면을 재생해 준다. 두 사람의 만남, 입맞춤이라는 행위를 통해 숨이 뒤섞이듯 음악이라는 형식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가 교차한다. 두 사람의 숨과 유전자가 뒤엉키며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 인간의 역사는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고 혼합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했음을 은유하듯이. 서로의 입이라는 작은 동굴에서 공명하고 융합되어 새로이 탄생하는 소리는 유난히 아름답다. 두 사람이 하나의 호흡으로 숨을 고르고 숨의 결과 리듬을 맞추어야 가능한 일. 이 작품은 현시대 가장 위험한 일로 치부되는 행위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임을 역설하며 뒤섞임이야 말로 생명의 근원이자 본성이며 경이로운 일임을 일깨워준다.

  


긴밀하게 연결된 생명체들의 행성, 지구라는 힘과 가능성


뒤 이은 ‘보이지 않는(Invisible)’, ‘변화(Change)’ 섹션에서도 이러한 발견은 지속된다. 보이지 않는 공기를 통해 누군가는 고통받고 위협당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만남과 화합을 통해 되살아나고 회복되고 아름다워지는 일이 발생한다고. 지역 커뮤니티 및 다양한 공동 작업자와 협력하여 땅과 문화, 언어의 연결을 연구 해온 조나단 존스(Jonathan Jones,위라주리/카밀라로이 민족, 호주 b.1978)가 스탠 그랜트 박사(Dr Uncle Stan Grant Snr AM, 위라주리 민족, 호주, b.1940)와 함께 호주 전역의 깃털을 모아 만든 작품 ‘제목 없음(Untitled(Giran, 2018))’은 공존과 순환, 거기서 발생하는 미지의 힘을 보여준다.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며 무한대(∞)의 형상을 그리는 깃털의 무리와 패널 주변에서 스며 나오는 바람과 새 소리, 파도 소리는 자연의 무한한 힘을 상징하는 듯하다. 호주 전역에서 수집된 깃털이 모였으며 여러 사람들의 협력으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작품이 지닌 서정적 아름다움에 뭉클함을 더한다.  



앤서니 맥콜(영국/미국 b.1946)은 ‘크로싱(Crossing, 2016)’에서 어둠에 잠긴 커다란 방에 빛으로 건축물을 세우고 파도 소리와 유사한 음향을 내보낸다. 방 안을 유영하는 공기는 빛과 의 접촉면에서 물결 무늬를 만든다. 까만 어둠 속 빛의 웅덩이를 건너다보면 우주 공간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드는데. 기술이 발전하고 많은 것을 밝혀냈지만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여전히 광대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인간이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영역은 빛이 비추는 동그라미처럼 작고 한정적일 뿐이다.

 


GOMA의 ‘공기(Air)’ 전은 공기의 탄생에서부터 Covid-19를 겪은 근래의 상황,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까지, 삶에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불안정하고 위협적일 수 있는 공기를 색다르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돌아보게 해주었다. 또한 공기를 공유함으로써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삶과 공존에서 비롯되는 창조적 힘과 가능성을 탐색해 보는 기회를 주었다.  



서울에서도 일부 제한적이긴 하나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 아직은 추운 날씨 때문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있지만 만개할 봄에는 마스크 없이, 서로에 대한 경계와 의심을 허물고 숨을 뒤섞어 볼 수 있길 바란다. 올리버 비어(Oliver Beer, 영국 b.1985)의 영상물 ‘입을 위한 작곡’에서 처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공명하며 울려 퍼질 노래를 상상한다.



‘대기’라는 뜻의 애트모스피어(Atmosphere)에는 ‘분위기’라는 의미도 있다. “우리는 하나의 분위기(atmosphere)를 공유하고, 따뜻해진다”는 전시 소개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고 믿고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있다. 인간 중심, 성장 위주에서 벗어나 공존과 배려, 회복의 방향으로 그 믿음이 자라나길 희망한다. 우리의 믿음으로 지구를 둘러싼 애트모스피어(Atmosphere)가 내내 따뜻하길.



* 전시 소개글 및 작품 사진은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의 홈페이지를 참고했습니다.

https://www.qagoma.qld.gov.au/air-introduction/







*이 글은 '아트렉처'에 기고한 글의 일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artlecture.com/article/2986





                    

*** 그 외 '아트렉처' 기고 글입니다. 링크를 통해 다른 글을 읽어보실 수 있어요.


https://artlecture.com/article/2950



https://artlecture.com/article/2931



https://artlecture.com/article/2907




https://artlecture.com/article/2880



https://artlecture.com/article/2854




https://artlecture.com/article/2826



https://artlecture.com/article/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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