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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Nov 02. 2023

고독의 풍경을 발명하는 순간

에드워드 호퍼 <바다가 보이는 방>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있다. 창밖의 빗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 때, 가지치기해 준 휘커스에서 새 순이 돋아난 걸 물끄러미 바라볼 때, 숙제를 마친 아이가 앉은자리에서 인형의 머리를 매만지는데 인형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한없이 다정해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일 때. 베란다 타일 바닥으로 아롱진 빛이나 거실장 위로 무늬를 그린 빛덩이를 만나면 걸음을 멈춘다. 얼굴이 똑 닮은 아이와 남편이 나란히 앉아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터뜨리면 나는 잠시 없는 사람이 된다. 




가만히 무언가를 바라보는 사이 마음은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내 마음은 텅 빈 무대가 되어 무엇이든 들일 수 있다. 마음이 비추는 조명으로 찰나에 드러나는 일상의 고운 얼굴을 알아챈다. 한 발 물러서거나 외로이 멈춰 서야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순간. 기울인 몸과 시선을 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일. 나는 빗방울이나 나무가 되고 다정한 목소리로 스며들어 환한 웃음으로 흩어진다. 그 일은 내면의 어떤 공간에서 비밀스레 벌어진다. 




그럴 때 나는 일상의 조각가나 발명가가 된 듯 의기양양하다. 혼자인 채 충만하다. 고독은 나를 풀어주는 공간. 순식간에 세워지는 하얀 무대이거나 단숨에 정리되는 빈 방 같은 곳. 그곳에서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마음껏 사라질 수 있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종종 그곳으로 숨어든다. 시선에 닿는 대상을 응시하다 잠잠해지는 순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¹바다가 보이는 방, 1951,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바다가 보이는 방>에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집 안이 등장한다. 벽으로 가려진 뒤쪽 공간은 가구가 놓인 응접실처럼 보이고 전면의 공간은 현관으로 향하는 길 같다. 전면의 공간은 오직 빛을 드러내기 위한 무대처럼 텅 비어 있다. 그런데 후면의 방에도 얼핏 전면과 유사한 형태의 빛 모서리가 보인다. 두 개의 나란한 공간은 우리의 일상이나 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누군가와 공유할 수밖에 없는 응접실의 공간과 오직 홀로 간직하는 비밀한 공간이 평행하게 공존하는 세계.




호퍼는 다양한 공간을 통해 고독을 그렸다. 우리가 잊고 있는 순간조차 고독은 세계의 커다란 일부임을 그의 그림은 보여준다. 호퍼의 그림에서 고독은 일상의 다양한 공간에서 변주된다. 홀로 또는 여럿이 있는 사람으로, 도시의 한복판에서, 휴가지의 한가로운 풍경에서도, 짙은 어둠뿐만 아니라 찬연한 빛 아래서도 고독은 등장한다. 호퍼는 캔버스 위에 고독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고 빛을 드리웠다. 






²아침 해, 1952, 에드워드 호퍼






그림은 대체로 쓸쓸한 기운을 내뿜지만 어디선가 조명한 희붐한 빛이 고독을 비춘다. 때로는 그림 속 인물의 내면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하다. 그런데 홀로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볼 때 응시하는 나의 시선은 그림 속 인물 그 자신의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희붐한 빛은 나의 시선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도 아니라면 그림 속 인물이 내게 보내는 신호일까. 




호퍼의 그림 앞에서 내가 읽는 것은 나의 고독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쓸쓸하고 외롭지만 고요하고 잠잠하다. 가만히 응시하는 사이 알 수 없는 위안과 다행감으로 환해진다. 나의 시선이 그림을 조명하고 그림이 되비치는 신호를 받고 나면 나는 다시 함께인 생활로 흔들림없이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아름다움은 고독이라는 비밀한 공간에서 탄생한다고 그의 그림은 내게 속삭인다. 혼자인 그곳에서는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안에서도 문을 열면 바다에 닿을 수 있듯이(<바다가 보이는 방>). 그 바다가 나를 고립시키는 바다일지라도 버터색의 온화한 빛 아래라면 슬픔을 기쁨으로 돌려세울 수 있을 것 같고. 어느 날엔 나를 위로하고 웃음 짓게 하는 풍경을 그려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호퍼가 준비해 준 무대를 보며 생각한다. 빈 방과 문 너머의 풍경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것이 각자가 고독을 가꾸는 법일 거라고. 나를 기쁘게 하고 위로해 주는 순간을 알아채는 건 고독이 할 수 있는 일이므로. 고독만이 채울 수 있는 내면의 무대가 있다면 무엇을 배치하면 좋을까. 




점심을 먹고 남편과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하늘은 파랗게 맑고 공기는 기분 좋게 차가웠다. 투명한 빛이 여기저기 떨어져 눈이 부셨다. 키 큰 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선 길에서는 바람이 불고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이 떨어져 내렸다. 측정할 수 없고 형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춤추듯 슬로 모션으로 내려오는 나뭇잎들. 잎사귀 사이를 통과한 가을빛은 바닥에 닿아 레이스 무늬를 그렸다. 흉내 낼 수 없는 모양과 농도로 패턴을 자아내는 빛 무리. 




나는 잠시 나뭇잎 댄서와 뜨개질하는 빛을 빌려 내 안의 무대에 세워 보았다. 나뭇잎과 춤을 추고 레이스를 따라 그리며 빈 무대를 기쁘게 채웠다. 여기 있으면서 저기 있는 순간, 가만히 눈을 맞추는 사이 벌어지는 짧은 여행. 그곳으로 사뿐히 건너갈 때 나는 혼자다. 




나의 일상에도 두 개의 공간이 평행하게 공존한다. 함께라서 떠들썩하고 유쾌하지만 번거롭기도 한 응접실과 혼자라 쓸쓸하고 외롭지만 고요한 빈 방이. 이곳과 저곳에서 언제든 고독이라는 내면의 공간을 불러낸다. 현실에서 비스듬히 각을 벌릴 때 빛이 드리우는 순간,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무대. 호퍼의 그림 속 상상의 바다처럼, 존재와 비존재가 뒤섞이는 미묘한 시공간을 그곳에서 만난다. 




고독이라는 무대에 나를 위한 풍경을 올린다. 거실의 문을 열면 파도 소리가 들리고 창문 너머로 깊은 어둠이 차오르는 숲을 볼지 모른다. 그곳에서는 강물이 강물이고 나무가 나무이듯 나도 내가 된다.









<출처>

1. 바다가 보이는 방 https://www.edwardhopper.net/rooms-by-the-sea.jsp

2. 아침 해 https://arthive.com/edwardhopper/works/324354~The_morning_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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