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의 행복에 눈 맞추기
살아가는 일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그러고도 툭툭 털고 계속 걸어가야 하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때로 커다란 돌부리에 넘어져 한동안 엎어진 채로 있을 수도 있다. 넘어질 걸 미리 알고 피할 수 있는 묘책이 있을까? 그런 걸 모르는 나는 자잘한 기쁨으로 상처의 기억을 달랜다. 삶의 어떤 돌부리에 상처 입더라도 삶의 저쪽에는 따스한 손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면서. 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 걸으려고 한다. 살아가면서 모으는 작은 기쁨의 기억이 용기를 만들어 준다.
점심이 늦어진 주말, 슬며시 다가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밖에 나가서 파스타 먹고 싶어.”
남편은 외출했고, 안 그래도 나가서 밥을 먹어야겠다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이가 메뉴를 정해주어 반가웠다. 밖으로 나서자 투명해서 따가운 가을볕이 쏟아졌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 골목을 걷는 사이 평소와 조금 다른 기분이 스며들었다.
날씨가 좋은 날엔 산책을 하고, 넉넉한 창이 있는 곳에서 밥을 먹거나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일상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것. 그건 평범한 하루에 나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다는 일. 매일이라는 지루한 반복을 이겨내는 힘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즐거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섯 살 배기 딸아이가 그걸 알아챘나 보다. 점심 먹고 카페에서 디저트도 먹자고 했다.
(...)
그런 순간들이 내가 견디는 시간에 대해 삶이 주는 보너스 같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무대 뒤 구석진 곳에 있지만, 삶은 그런 내게도 귀한 걸 나누어 준다. 무대 위나 앞에 있는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나만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두둑한 월급이나 잘 나가는 커리어가 없더라도 삶의 맨 얼굴을 알아보고 웃을 수 있는 삶도 괜찮은 것 같다. 나와 너의 포개어진 다리 사이로 쌓이는 다정의 감각을 더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