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소진하는 삶

내게로 가는 산책

by 춤추는바람



지난주를 지나며 이 계절이 사그라드는 시점이 멀지 않았다고 짐작하긴 했다. 마지막 순간엔 빛을 내뿜는다고 했던가. 붉고 노랗게 물든 잎사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주말 사이 넉넉하게 이 계절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귀찮아하는 아이를 달래 서울숲에 갔다. 그리고 주말과 우리에게 남겨진 가을을 아낌없이 써버렸다.



해마다 몇 번씩 들렀던 것 같은데, 올해는 서울숲에 갔던 기억이 없다. 언제 가도 좋다는 지인의 말에 잊고 있던 친구에게 연락하듯 숲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아름드리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색을 갈아입은 커다란 나무들이 바람이 스칠 때마다 스스럼없이 잎사귀를 떨구었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이 허공을 메울 때면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그렇게 떨어진 낙엽이 카펫처럼 바닥을 덮고 바삭하게 말라가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은 경이라는 선물을 후하게도 건넨다.



서울숲에 있는 놀이터에는 유난히 기다란 미끄럼틀이 있는데 그걸 타려고 아이들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 처음엔 무서워하던 딸아이도 미끄러져 내려오는 동안 두려움이 황홀함으로 바뀌었는지,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나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탐험가처럼 용감하게 미끄럼틀을 항해했다.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밧줄을 잡고 경사면을 오르거나 기다란 계단을 오르는 일은 수고가 아니라는 듯, 몇 번이고 오르락거리며 미끄러지는 순간의 짜릿함을 즐겼으니. 처음에는 난간을 꼭 잡고 타던 것을, 몇 번 거듭한 후엔 손을 떼고, 그러고도 회수가 지나자 누워서 타기도 하면서, 자신의 담력을 쌓아갔다. 미끄럼틀 아래 서서 아이의 도전을 목격해주고 그래서 한껏 반겨주는 게 내 일의 전부였는데도,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 내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내 아이의 얼굴뿐만 아니라 차례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으니까. 그 작은 얼굴에 조밀하게 들어찬 행복의 기운이 나를 사로잡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