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노래
우리 식구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 과일은 복숭아. 복숭아가 나오는 여름이면 매일 밤마다 복숭아를 나누어 먹는다. 외할미가 노랗고 보드라운 복숭아 한 상자를 가져다준 날, 남편도 하얗고 단단한 복숭아 한 상자를 사들고 왔다. 노란 복숭아 한 개, 하얀 복숭아 한 개를 깎으면 아이는 노란 복숭아만 쏙 골라 먹는다. 그리고는 다음에는 노란 복숭아를 사 와, 하고 아빠에게 말한다.
2015년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남편은 휴직을 했다. 그리고 세 달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막바지는 기록적인 더위로 느슨하게 풀어져 나날을 보냈는데, 나와 남편의 손에는 자주 납작한 복숭아가 들려 있었다. 작고 딱딱하지만 무척 달콤했던 복숭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한동안은 일상도 여행처럼 흘렀다. 여름의 가운데에 있던 서울에서도 우리는 복숭아를 먹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저무는 하루의 바람이 쓸쓸하게 느껴지던 가을의 초입에 반가운 소식이 도착했다. 기다리던 임신이었다.
콩알만 한 아이를 뱃속에 품고 복숭아야,라고 속삭였다. 보드랍고 하얀 속살을 가진 복숭아, 발그레한 소녀의 볼처럼 고운 얼굴의 복숭아. 하나의 복숭아가 내 안에서 싹을 틔운 것 같았다. 나의 아가가 복숭아처럼 곱고 보드랍고 어여쁘길 바랐다.
"복숭아, 엄마가 너를 갖던 여름엔 복숭아를 엄청 많이 먹었단다. 그래서 복숭아처럼 곱고 보드랍고 달콤한, 이쁜 아이가 되라고, 그렇게 고운 심성의 아이가 되라고 너를 복숭아라고 부르고 있어."
- 2015/10/10 태교 일기 중
복숭아, 숭아, 숭숭아, 하던 태명은 슝슝이가 되었고, 아가가 태어나고도 일 년을 슝슝이라고 불렀다. 아이를 슝슝이라고 부르는 사이, 그 이름 너머로 복숭아의 이미지가 둥둥 떠다니지 않았을까. 아가는 한 개의 복숭아였다. 가장 예쁘고 고운 복숭아. 여름이면 복숭아와 마주 앉아 복숭아를 먹었다. 매해 아이와 함께 먹는 복숭아를 기억했다.
2018년 봄, '느린산책'이라는 이름으로 베이킹 스튜디오을 열었고 초기에는 디저트 샵으로 운영하면서 주문 케이크를 판매했다. 찾아오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특별했고 하나 하나의 주문이 소중하고 감사했다. 여름이 시작되고 복숭아 케이크를 선보였다. 그때 받았던 주문 하나가 기억에 남았다. 아빠 생신이라고 하면서 어떤 케이크가 좋겠는지 문의하는 손님이 있었다.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고심 끝에 복숭아 케이크를 골랐다. 아빠를 위해 특별한 케이크를 준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져 재료를 준비하는 내 마음도 각별했다. 적당히 단단하고 말랑한 복숭아를 신중하게 골랐다. 고운 복숭아 살을 갈아 퓌레로 만들고 생크림 속에도 넣었다. 한 입 먹으면 복숭아의 달큼한 향과 맛이 입안 가득 퍼지도록.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떠올렸던 모습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젊은 여성 둘이 케이크를 가지러 왔다. 둘은 공손하게 케이크 박스를 받아 들고 문을 나서더니 가게 앞 모퉁이에 멈춰 서 깡총깡총 토끼처럼 발을 굴렀다. 케이크가 맘에 든다는 표현. 그 모습에 나도 같이 끼악-하고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고. 케이크 상자를 건네며 눈빛을 맞추던 순간에도 서로의 기쁨과 설렘이 말없이 오갔지만 둘이 좋아서 발을 구르는 선명한 표현에는 그저 기쁘고 감사했다. 오후 늦게 "너무너무너무(너무,가 세 번이나 들어가 있었다)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 메시지가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