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
사람이 성장할수록 세계는 확장하는 걸까, 축소하는 걸까? 아니, 확장하다가 축소하게 되는 걸까? 목련을 보다 생각했다.
어린 시절, 세상은 내가 사는 동네가 전부였다. 학교는 산 밑에 있는 우리 학교만 존재하고 동네를 오가는 543번 버스가 세상의 유일한 버스인 줄 알았다. 그 시절 목련은 어린아이 얼굴만큼 커다랬다. 새하얀 꽃이 하늘을 향해 얼굴을 디밀고 둥둥 떠 있었다. 그러다 가도 하룻밤 새 거짓말처럼 꽃이 졌다.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 추락하듯 떨어져 버리는 꽃. 하얗던 꽃잎은 바닥에 떨어져 누렇게 변했다. 그 급속한 변화와 간극이 어린 눈에도 아찔했고 못내 처량했다.
꽃처럼 피어나던 이십 대, 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목련만은 기다렸다. 나무 위에 피는 연꽃이라고 해서 목련이라 부르는 꽃. 하얗고 커다란 꽃잎은 어둠 속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목련은 피어남과 동시에 질 것을 예감하게 하는 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사랑에 빠진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작은 꽃송이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벚꽃이 명랑하고 사랑스럽다면 주먹보다 커다란 꽃이 드문 드문 매달린 목련은 쓸쓸하지만 우아하다.
목련은 나르시시스트의 운명 같았다. 아름다움에 취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솟아오르는 꽃, 그러다 결국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져버리는 꽃. 한껏 부풀어 오르면 금세 뚝뚝 떨어져 내렸으니까. 내 속에서도 뚝뚝 알 수 없는 것들이 떨어져 내렸다. 몸은 꽃으로 피어났지만 여물지 못한 정신은 꽃을 지탱할 힘이 없었으니 청춘 또한 추락하는 꽃 같았다.
기억 속 목련은 잔뜩 부풀어 오른 자아처럼 거대해서 위태로웠다. 그런데 돌아온 계절 앞에서 마주한 목련은 의아할 정도로 여리고 왜소하다. 꽃이 작아진 걸까, 내가 커진 걸까. 어느 시점부터 세계는 확장을 멈추고 축소하기 시작한 걸까. 바람만 잔뜩 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자아가 이제야 주제에 맞게 몸집을 줄이는 걸까.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떠난 지 오래다. 학교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결혼과 함께 다시 집으로, 세상은 넓어졌다 다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있는 곳 너머에 얼마나 큰 세상이 있는지 안다.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 노선도는 거미줄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고, 나라는 존재는 거대한 우주에 떠다니는 먼지 한 톨처럼 미약하다는 걸.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새’를 부르던 소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버겁던 시절은 지나고 가족의 무게를 버티는 삶을 산다. 작아지면서 단단하게 여무는 게 아니라 쪼그라들며 시드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한,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 큰 것을 찾아 헤매는 대신 내 앞에 놓인 손바닥만 한 삶을 매만지는데 만족하는, 헛헛하고도 후련한 불혹(不惑)이다.
비가 오던 날 빗소리에 홀려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온 세상이 물방울 속에 잠겨 있다. 목련 나무 아래 떨어진 꽃잎이 수두룩 쌓였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들의 축제에 묻혀버리지 않겠다는 듯, 홀로 먼저 피었다 가버리는 꽃. 처량하기보다 고고한 향취가 느껴졌다. 떨어지는 게 두려워 한껏 자신을 피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일 테지. 목련은 한순간일지라도 두려움 없이 피어오르겠다는 명백한 의지.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사랑에 뛰어드는 비련의 주인공은 무모하지만 아름답다.
나이 들어 알게 된 목련은, 늦가을 서둘러 꽃몽우리를 피워낸 후 겨우내 시린 바람에 맞서 혹독한 추위 속에 자신을 벼르며 봄의 한 시절을 단단히 준비하는 꽃이었다. 성장점을 지니고 있는 꽃 하단부에 빛을 모으기 위해 꽃몽우리의 끝을 북쪽으로 향한 채 자라는 꽃. 철없이 한껏 피어나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져버리고 마는 꽃이 아니라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최선을 다해 빛을 모아 한 생을 열렬히 살다가는 꽃. 커다랗고 환한 꽃을 피우기 위해 시련을 기꺼이 끌어안는 꽃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목련처럼 살고 싶었던가. 시련은 부정하거나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걸 삶이 작아질수록 깨닫는다. 나라는 꽃은 시련을 머금고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허무하게 피고 질 테지만 돌아올 봄의 한순간을 위해 또 자신을 버티어야 한다는 걸. 해마다 피고 지는 목련처럼 그렇게 의연하게 버티어야 한다. 다만 한 순간을 위해 기다리고 버티는 삶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축소하는 세상으로, 서서히 소멸을 향해가는 삶으로 걸음을 옮긴다. 목련의 꿈은 버리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