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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Jun 05. 2022

"네가 좋으니 나도 좋구나"

나를 안아주는 말







"이름만으로 믿어지는 것들 중에서

내내 뜨거운 것은 몇 개나 될까"

_‘사랑의 미래’ 김연덕, <재와 사랑의 미래>



이름만으로 믿어지는 것들 중에서 내내 뜨거운 것은 몇 개나 될까. 티 없는 웃음, 투명한 눈물, 빛나는 눈동자, 아픈 이의 이마를 쓸어주는 손, 누군가의 뒷모습, 오래된 나무, 겨울밤 소리 없이 쌓이는 눈(雪)…



이사를 준비하며 우여곡절이 많았고 집수리로 이사 날짜가 늦어지면서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드디어 이사를 마치고 집이 어느 정도 정돈되어 시댁 식구를 초대했다.



별 것 아닌 것도 칭찬하고 좋은 걸 더 좋게 받아들이는 어머니께서 집이 깔끔하고 예쁘다며 기뻐하셨다. 말수가 적고 점잖으신 아버지는 어머니 곁에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짧게 공감을 표하셨다. 중국집 배달 음식으로 차린 상이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맛있게 밥을 먹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지닌 편안함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이어졌다. 사춘기가 시작되어 애를 썩이는 조카 이야기에서 교육 문제로, 회사일, 그리고 또 다른 관계들로……, 살아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풀어져 나왔다.



밤이 되어 돌아가시는 부모님을 버스정류장 근처로 배웅해드렸다. 집 때문에 고생한 걸 알기에 어머니께선 마지막까지 “정말 잘 되었다”며 기뻐하셨다. 내내 조용하던 아버지께서도 한 말씀 덧붙이셨다.

“너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구나.”

잔잔한 그 말이 흩어지지 않고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사가 무사히 끝났고 집이 정리되면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새로운 보금자리는 변화를 의미했고 알 수 없는 기대감을 건넸다. 그러느라 특별한 일 없이 즐거웠는데 그런 마음은 안에만 머물지 않고 저절로 밖으로 퍼져 나간다.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빛무리처럼 새어 나가 상대에게 물든다. 그렇게 서로에게 번지고 스며들며 더 커지기도 하는 것이 있다. 마음은 소리 없이 우리 사이를 오가며 몸집을 불린다.



‘네가 좋으니 나도 좋구나.’ 한 문장에서 '좋음'과 '좋음'이 만나고 쌓였다. 너와 나 사이를 오가며 두터워진다. 타인의 즐거움을 왜곡 없이 바라보고 순전하게 기뻐해 주는 마음, 그 마음은 다시 돌아와 원래의 기쁨을 한 뼘 더 늘려준다. 아버지께서 좋다고 하시니 나도 좋았다. 평소 속마음을 잘 표현하는 편이 아니라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누군가를 말없이 지켜보고 누군가에겐 애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삶을 나누고 응원할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감정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다. 무게를 잴 수도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는데 우리는 그걸 나누고 나누는 사이 늘어나거나 줄어든 것을 느낀다. 우리 사이를 오가며 크기를 바꾸는 이걸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온기, 다정, 공감, 이해, 사랑.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이름만으로 믿어지는 것들, 생각만으로 내내 뜨거워지는 것들이구나 싶다. 작은 불씨 같은 마음이 있고 그것들에겐 연약한 알맹이를 견고하게 감싸주는 이름이 있다. 이름을 불러주는 한 그 불씨가 꺼지지 않을 것 같다.



마음속에 작고 여린 알전구 몇 개를 품고 산다. 몇 개는 나 스스로 불을 켤 수 있고 어떤 것은 알게 모르게 불이 밝혀진다. 하지만 몇 개는 오직 타인을 통해서만 빛을 들일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영영 빛을 낼 수 없는 쓸쓸한 알전구가 우리 가슴속엔 있다. 하지만 그 전구에 불을 켜주는 사람들, 타인을 위해 좋은 마음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을, 우리는 기어코 만나게 되는 것 같다.



혼자서 전구 여러 개를 밝히려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내게 빛을 나눠 줄 사람을 찾아가며 사는 게 더 잘 사는 일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만나 자연스레 작은 전구에 불이 켜지는 순간을 경험하는 건 삶의 기쁨이자 선물일 것이다. 나만의 빛을 모으려는 노력,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주려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불을 건네려는 타인의 마음을 발견하고 제때에 받을 줄 아는 겸손과 넉넉함도 지니고 싶다.



더 많은 전구를 준비해도 될 것이다. 작고 맑고 예쁜 구슬 같은 전구를. 당신이 켜 주길 기다리는 전구를. 그렇게 밝혀진 가슴으로 온기를 품고 있다 기쁘게 누군가에게 내어줘야지. 사이를 오가며 내내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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