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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May 28. 2022

"수고했어"

나를 안아주는 말




“저녁 먹고 우리 공원에 산책하러 갈까?”



저녁 식사가 끝나갈 즈음 남편이 말했다. 이사하고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한 번도 저녁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이사 후 짐 정리와 마감을 앞둔 일로 여유가 없었다. 주말을 바라보는 금요일이 되어서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한 동네에서 산지 7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최근 같은 동네 안에서 이사를 했고. 이사한 아파트는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원과 붙어 있는데 아파트 뒤편으로 난 오솔길이 바로 공원으로 이어진다. 이사만 하면 저녁마다 산책을 나가야지 생각했다. 밥을 차리고 아이 재울 준비로 허둥대던 저녁 시간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세 식구가 운동화를 챙겨 신고 밖으로 나갔다. 봄의 막바지를 향하느라 나무들은 초록에 색을 더하고 있다. 8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사방이 환했다. 오솔길을 따라 공원으로 들어가 곧장 중앙에 있는 너른 잔디밭으로 향했다.



원형 잔디밭을 감싸고 달리기 트랙이 조성된 곳이다. 그 한가운데에 서면 가장자리를 둘러싼 낮은 숲과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인다. 고개를 들면 막힘없이 펼쳐진 하늘이 한눈에 들어와 가슴이 시원해진다. 잔디밭에 들어섰을 때는 어둠이 막 차오르고 있었다. 머리 위 하늘은 빛의 여운으로 밝게 푸른빛을 띠었지만 지평선과 맞닿은 가장자리로부터 남빛의 어둠이 띠처럼 번졌다. 낮과 밤이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어떤 장면은 원본이라는 걸 머릿속에 새긴다. 이 장면의 가장 선명한 원본은 6년 전 저녁의 것이다. 동네로 이사와 처음으로 너른 잔디밭을 마주했던 순간, 나도 모르게 ‘와아-!’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던 날이다. 그때의 기억이 눈 앞의 풍경에 포개어졌다.  



남편도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그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수고했어.”



당시엔 셋이 아니라 둘이었다. 출산을 앞두고 있던 나는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배를 한 손으로 감싸고 또 다른 손으로 남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날 날이 머지않았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기다렸다. 달라질 가족의 일과 상황을 고려해 남편 직장 가까운 곳으로 급하게 집을 옮긴 상태. 처음 살게 된 동네라 낯선 데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개발이 진행되고 있던 터라 어수선한 구석이 있었다. 마음 붙일 곳을 찾던 중 공원을 발견했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퇴직, 임신, 이사, 인생의 커다란 선택이 연이어 있었고 흐름을 쫓아가면서도 희미한 불안에 흔들리던 때였다. 미래는 밝은 빛을 띠며 우리 앞에 있었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일과 그로 인한 변화는 삶을 끝없이 움직이게 했으니까. 안정보다 불안정에 가까웠고 서로를 버팀목 삼아 흔들림을 통과하고 있었다.



숲과 하늘이 사이좋게 나누어 가진 풍경 안에서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공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모든 걱정이 잦아들었다. 평평하게 너른 잔디밭 앞에서 흔들림은 잔잔해졌다. 남편과 손을 잡고 걷다 보면 시야를 가리는 불안도 걷혔다. 우리 두 다리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 없이 둘이 보낸 7년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고 있었지만 모든 게 충분해 보였다.



아이가 태어났고 셋이 되어 보낸 시간이 햇수로 6년을 넘어가고 있다. 아이는 매일이 다르게 성장했고 그 사이 나와 남편은 삼십 대를 마감하고 사십대로 건너왔다. 부모가 되는 일, 사십대로 사는 일. 모든 변화에 적응하는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났다. 서로가 아니었다면 이겨낼 수 없었을 일을 겪었고 서로이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가 있었다. 여전히 그런 과정 중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수고했어.”



남편의 말은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마음의 빈자리를 정확하게 채워 주었다. 표면적으로 이사하느라 수고했다는 의미일 테지만 물 위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마음으로 번져나가 의미의 여운을 만들었다. 그동안 아이 키우느라, 우리 가정을 보살피느라 수고했어,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수고했어...... 



하나의 단어가 마음에 스며들어 미세하게 빛을 바꾸었다. 마음은 어느새 잔잔하지만 깊은 호수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하늘과 닮은 그런 호수가 되었다. 푸른빛을 다 풀어내고 어둠에 기꺼이 잠기는 하늘처럼 넉넉해졌다. 하나의 말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의미를 품을 수 있고 흩어지려는 말이 모여 상처를 덮는 반창고가 되기도 한다. 때 맞춰 당도한 말은 무색의 마음에 고운 색을 들인다. 



“응, 수고했어 당신도…

그런데 여기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좋네.”

“그렇지.”

우리 두 사람도 그럴까. 처음 왔던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그렇게 서로에게 좋은 사람들일까.



여러 일이 있었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서로에 대한 감정도 그때마다 오르락내리락했고. 당신이 있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날을 지나 당신 때문에 날카롭게 메마른 사람이 되었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들을 건너 당도한 여기, 서로에 대한 감정이 그때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믿음은 한결같이 우리를 지켰다. 



여전히 나는 유일한 한 사람으로 그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간다. 분명한 것은 이해하고 이해받기 위해 모든 생각과 감정을 동원하여 이토록 애써 본 사람은 그 밖에 없다는 것. 지금 우리 사이의 감정은 기대로 가득 차 있던 처음과는 다를 테지만 어떤 면에서는 훨씬 유연하고 어떤 면에서는 더 단단할 것이다.   



하나의 관계를 통해 사랑의 온갖 빛깔과 아름답고 추한 모든 형태를 경험하고 배우며 깨달아간다. 실망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미워하다, 애정은 연민으로 그리고 공감으로 바뀌고, 고마움은 서운함으로 그러다 미안함을 지나 애틋함으로 변해간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와 사람들을 시험한다. 다 안다고 자만할 때 미끄러질 수밖에 없고 그런데도 다시 일어나 서로에게 다가가려 애쓴다면 그때마다 조금씩 용감해질 것이다. 사랑의 의미를 규정짓지 않는다면 날마다 달라지는 사랑을 각자의 방식으로 짓고 잇고 엮어갈 수 있지 않을까.  



공원 주변으로 차오르던 어둠이 금세 하늘을 뒤덮었다. 하늘과 땅이 닿는 가장자리에서 어른거리던 기운은 사라졌다. 하지만 언제고 다시 올 것이다. 한 번도 완전히 같지 않은 빛으로, 매번 다른 결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 사이의 감정과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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