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
오랜만에 제과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7년 전 제과 수업을 같이 들으며 울고 웃었던 나의 어리고 예쁜 친구들. 그때 친구들의 나이는 갓 스물이 되었거나 이십 대 초반이었다. 그녀들은 이십대라는 망망대해 앞에서 두 눈을 반짝이다가도 망설임으로 고개를 떨구곤 했다. 다시 만난 그들은 달라져 있었다. 갓 서른을 넘거나 서른을 바라보느라 고개는 5도쯤 위를 향했다. 젖살이 빠져 얼굴의 윤곽은 또렷해졌고 눈매는 깊어졌다.
“다시 베이킹할 거예요?”
누군가 물었고 망설일 것도 없이 “아니.”라고 답했다.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원 없이 해보았으니까. 이제는 체력이 달려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미련 없이 해보았으니 아쉬움은 없었다. 그런데도 마침표의 자리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뭇거리다 고쳐 말했다.
“어쩌면, 아주 나중에... 다시 하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어.”
지금은 번역을 하고 있으니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또 무얼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번역 같은 일을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으니까. 베이킹을 배워 작은 가게를 열었던 일이 어린 시절부터 키웠던 꿈이 아니었던 것처럼 번역도 내 인생 계획에는 없던 일이다.
(...)
요즘은 엉덩이가 눌리다 못해 움푹해졌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 그런 지금이 너무 좋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될 줄 나도 몰랐으니 나중 일을 함부로 장담하진 말아야겠다고. 그런데도 지나온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덕에 여기에 닿게 되었다. 전공 분야에서 십 년의 회사 생활을 한 덕에 그 계통의 번역일을 다시 할 수 있었다. 홀로 가게를 꾸리며 개인사업자 생활을 해보았기에 시간 관리에 남달리 철저해졌고 그 리듬으로 칼같이 마감을 지킨다.
새로 시작한 일은 서툴어 아직 실수가 많다. 처음 번역한 원고가 빨간색 수정 표시로 뒤덮여 되돌아온 날, 그만큼 얼굴이 달아올라 화끈거렸던 게 생생하다. 여전히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하고 확신 없는 마음으로 언어의 숲을 헤매기 일쑤다. 그런데도 일을 할 때의 안정감이 나를 내일로 밀어준다. 오늘은 형편없을지라도 서서히 나아질 내일의 나를 기대하며 오늘을 해낼 수 있다.
“변한다는 게, 알 수 없다는 게 축복 같아. 나는 그게 좋아.”
틀어진 계획 때문에 번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일이 좋다. 아직은 어렵고 불확실 속에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상황이지만 매일의 성실함으로 불안에 지지 않는다. 오늘의 분량을 열심히 완수하며 삼 년 후, 십 년 후의 나를 상상한다. 또다시 계획하지 않은 곳, 상상하지 못한 자리로 흘러들지 모른다.
누군가는 정확한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만 바라보며 갈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서 깃발을 꽂아야 할 단 하나의 정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어그러진 계획이 내려놓을 엉뚱한 자리, 우연의 위치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삶이라는 초에 호기심이라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