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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Sep 08. 2022

팬이 되었어요

당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




“사람들에게 나의 글이란, 그들이 접하는 수많은 텍스트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누군가의 시선은 내 문장에 더 오래 머물러 준다. 답장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럼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이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오히려 내게 글을 계속 써도 된다는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작고 기특한 불행> 오지윤


글을 계속 써도 된다고 용기를 주는 사람을 만났다. 지난여름의 글쓰기 수업은 그래서 소중했다.


혼자 쓰는 일에 힘이 빠지고 써야 할 이유가 희미해졌던 여름, 동네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 공고를 봤다. 강제로라도 계속 써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운 좋게 등록에 성공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마감 있는 여름을 보냈다.


삼사 년 전 처음 들었던 글쓰기 수업이 ‘치유하는 글쓰기’였지 않나. 동네 도서관에서 하는 수업이니 ‘나도 한 번 써볼까?’하는 사람들이 오겠지. 사람들이 꼬박꼬박 과제를 할까, 여름휴가에, 장마에, 빠지지 않고 오기는 할까. 의심스러운 마음이 없진 않았다.


처음의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모두들 열심이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글이 확연히 달라졌다. 나만 글쓰기에 진심일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모두 자기만의 단단한 진심을 품고 있었다. 처음이라 순수하고 생생하게 반짝이는 진심.


이십 대에서 사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듣는다는 게 이 수업의 장점이었다. 같은 주제가 주어져도 고민의 지점, 생각을 풀어내는 방식이 달랐다. 나와 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갑자기 풍경이 바뀐 기분이었다. 혼자 아무 무늬 없는 상자 속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창이 생겼다. 바깥으로 향하는 작은 창이 여러 개 뚫렸다.


이삼십 대 친구들의 고민과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나도 그랬지 싶으면서 그때보단 가볍게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청춘의 흔들림 한 복판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무조건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 취업과 연애, 정체성, 사랑과 연대를 고민하는 그들이나 결혼과 육아, 나이 듦과 자아성찰 사이에서 헤매는 나나, 비슷한 고민을 한다고 느꼈다.


질문의 형태는 달라도 방향은 같을 것이다. 세대는 다르지만 동일한 세계 안에서 길을 찾고 있다. 작은 삶에서 의미를 만들고 기쁨을 발견하고 싶다는 바람. 나와 당신, 그리고 삶을 더 사랑하려는 방향. 따스했다. 사람들 사이에 두었던 마음의 벽이 서서히 허물어졌다.


그들의 글은 기발하면서 위트 있었고 지금을 살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글이라고 느껴졌다. 글을 쓰기 위해 자꾸 과거로 거슬러가는 내겐 생생한 오늘이 담긴 글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친구들은 빤할 것 같아 피했던 소재로도 재미난 글을 써 왔다. 길에서 만난 노인, 오로라를 봤던 밤, 가족들 사이의 대화, 억지로 따라갔던 등산길. 흔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기쁨과 의미를 발견해냈다. 


다루어지는 소재가 작으면 작을수록,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이야기는 더 특별해졌다. 이런 게 소재가 될 수 있을까 싶은 걸로도 충분히 글이 될 수 있다는 발견. 보잘것없는 것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친구들은 이미 작가나 다름없었다.  


수업의 장점은 그 외에도 많았다. 나 혼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주제로 글을 썼고, 마감이 있어 계속 쓸 수 있었다. 수업 방식도 좋았다. 각자 써 온 글을 낭독하고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 글을 써도 아무 반응이 없으면 기운이 빠지는데 수업에서는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글을 읽는 동안은 그 자리에 있는 여덟 명이 귀를 기울여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글의 존재 이유가 생기는 것 같아 힘이 났다. 글을 쓰느라 애썼던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신호 같았다.


부끄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써 온 글을 읽고 나면 곁에 있는 글동무가 좋은 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손뼉을 치며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이건 정말 좋았어요!”라고 해줄 때 말갛게 떠오르는 기쁨이란. 글이 형편없기만 한 건 아니구나, 누군가에겐 마음을 열게 하는 부분도 있구나 싶어 다행스러웠다. 곁에서 알려준 내 글의 장점을 조약돌처럼 손에 쥐고 돌아왔다. 그 길에선 갈 때와 달리 마음이 부풀어 올랐고. 모호한 상태로 머물고 있는 게 답답했는데 더 버티어 보고 싶었다.  


“팬이 되었어요.”


이런 말도 들었다. 글에서 좋은 점을 발견해주는 사람,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 다음 시간이 기대되었다. 숙제하는 마음도 즐거웠다. 독자가 있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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