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발맞추려는 마음
코를 훌쩍거리는 아이를 얼러 코를 풀게 했다. 아이는 그게 못마땅했는지 힝힝, 싫은 소리를 내다 울음을 터뜨렸다. 낮잠 잘 시간인데 버티고 있는 사이 피곤과 짜증이 몰려왔나 보다. 아이를 안고 달랬더니 몸을 옹송그리며 가슴팍에 기댔다. 잠시 후 품에서 미끄러져 내 두 다리 사이에 눕더니 몸을 뒤척이다 잠들었다.
바닥에 누워 잠든 아이를 안아 소파로 옮겼다. 아이는 몸을 움직여 자세를 잡더니 금세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꺼풀이 내려와 기다랗고 까만 속눈썹을 드리웠다. 도토리를 머금은 다람쥐처럼 볼록한 볼이 말개졌다. 둥지를 틀 듯 동그랗게 말아 누운 몸 위로 잠의 베일이 덮였다. 아이의 실루엣을 따라 팔을 둘러 울타리를 만든 채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며칠 새 날이 추워졌다.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보일러를 켰다. 방에 있던 가습기에 물을 채워 거실로 들고 나왔다. 서서히 바닥에 온기가 돌았다. 가습기에선 물 끓는 소리와 함께 증기가 피어올랐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만이 고요에 잠긴 거실을 맴돌았다. 아이가 부재할 때의 정적과는 확연히 다른 빛깔의 고요. 적막이 아닌 온화한 평정. 꿈결로 빠져드는 아이의 평온한 모습에서 충만감이 느껴졌다.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한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인심 좋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는 것을 쪼잔한 이해관계의 대상으로 변질시키지 않는 일이다."
162쪽, '사라져 버린 날들', <섬>, 장 그르니에, 김화영 옮김
아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지시를 있는 그대로 따른다. 배가 고프면 먹고, 힘들면 울고, 졸리면 꼬꾸라지듯 잠이 든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즐거운 놀이로 채우면서 인심 좋게 자신의 생을 사용하고 있다.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니 낮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저 멀리서 끝없이 밀려오는 바다 같아 그 앞에 잠자코 멈춰 서 있었다. 잠 속에 저항 없이 사로잡힌 아이처럼 계산없이 무념의 시간을 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