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은 높고 푸르렀고 투명하게 빛나는 가을 햇살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깨끗하게 씻기라도 한 듯 시야가 환해 익숙하던 거리가 묘하게 아름다웠다.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시기를 지나고 있구나. 가을, 이름만으로 찬란한 계절이다. 이런 날 그냥 집으로 들어가긴 아까웠다.
아이와 근처 공원을 걸었다. 하늘이 예쁘다고 감탄하니 아이가 어른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나도, 이런 하늘이 마음에 들더라. 아이도 기분이 들떠 오르는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빠가 주문해 두었다는 선물이 무얼지, 자신이 갖고 싶은 건 무언지, 공원 잔디밭 주변의 공사는 다 끝났는지, 지난번 공사장에서 보았던 기계차(로더)는 어떻게 생겼는지……. 중간중간 감탄사를 넣어주고 질문을 하면서 고개만은 하늘을 향했다. 하늘과 나뭇잎 사이에서 반짝이는 햇빛에 눈을 맞췄다.
수채 물감 번지듯 자연스레 풀어진 구름이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며 흘러갔다. 나뭇잎은 그걸 배경으로 무늬를 만들었는데 신비로운 세상의 지도 같았다. 잎사귀 사이로 언뜻언뜻 새어 나오는 황금빛 햇살은 눈부시게 빛났다. 매 순간 아름다움을 펼쳐내는 세상 앞에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감탄하는 사이 하늘과 나무, 햇빛으로 스며들었다.
집에 돌아오자 남편이 주문해둔 레고가 도착해 있었다. 아이와 설명서를 보며 조립을 시작했다. 필요한 게 뭔지 확인해주면 아이가 레고 더미에서 조각을 찾아 모양을 맞췄다. 그러는 틈틈이 거실 창으로도 나는 하늘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하얗던 구름이 서서히 회색으로 바뀌고, 연하게 파랗던 하늘이 남빛으로 짙어지는 모습을.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의 오른쪽 모퉁이, 서쪽 하늘을 향한 창은 또 다른 색을 풀어내고 있었다. 빌딩 숲 위로 펼쳐진 서쪽 하늘이 진한 오렌지 빛으로 물들었다. 진하고 선명한 오렌지 빛인데 이상하게 투명했다. 깊지만 탁하지 않고 또렷한데 은은한 빛깔,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맑은 기운의 색. 나를 좇아 신발을 신고 나온 아이가 고개를 쭉 빼고 외쳤다. 와아!
한동안 하늘에 어둠이 번질수록 오렌지 빛은 붉게 짙어졌다. 어둠이 세를 확장할수록 붉은 부분은 좁아졌고 어느새 띠처럼 가늘어졌다. 그럴수록 빛은 강렬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듯, 뜨겁게 타올랐다.
그 순간 라디오에서는 퇴근길 하늘을 보며 감사한다는 사람들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저녁놀을 보는 사이 하루의 피로가 그 속으로 녹아들었다고. 돌아갈 집과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다고. 저녁 노을을 보는 내 마음이 꼭 그랬는데, 내 사연이 흘러나오는 것 같아 뭉클했다.
"오늘의 기쁨과 슬픔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라디오에서 DJ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 카렌과 데니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