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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Aug 20. 2021

마음의 스위치 켜기

서로에게 발맞추려는 마음





유난히 기분이 가라앉고 하는 일에 진척이 없을 때, 뜻대로 생활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슬럼프. 여름의 고비를 넘기면서 삶을 관통하는 미세한 리듬을 감지하는 촉이 망가진 것 같다. 삶의 물결을 타고 흘러야 하는데 리듬을 잃어버린 마음은 어딘가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고여있는 물이나 바람이 통하지 않는 작은 상자 안처럼. 잘려나간 계단의 마지막 칸에 서서 낭떠러지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때론 올라간다고 기를 쓰고 있는데 돌아보면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이상한 계단 위에 있는 것 같다.



아이에게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틀어주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하얀 화면 위에서 껌뻑거리는 커서를 아무리 노려보아도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은 하얗게 지워지고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귓가에서 점점 확대되었다. 스멀스멀 짜증이 자라 절망으로 깊어졌다. '어쩌면 저 소리 때문인지 몰라. 곁에서 맴돌며 말을 걸고 무언가를 찾고 투정을 부리는 아이 때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어.'



부정적인 감정이 밀물처럼 차올라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물살에 휩쓸려 내동댕이쳐질 것 같았다. 물속에 잠겨버리거나 파도에 휩쓸려 먼 곳으로 떠밀려 가버리고 말 테다. 순간 고개를 들자 창 밖으로 투명하게 맑은 하늘이 보였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구름이 환하게 시야를 밝혔고 그 환함이 마음의 그늘을 단숨에 쫓아냈다. 이대로 앉아 있어 봤자 글은 써지지 않을 테고 괜한 하루만 망칠 것 같았다. 지금 필요한 건, 변화. 순간 내 입에서 이 말이 흘러나왔다.  


“서윤아,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가자!"











외출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기분이 달라졌고, 아이와의 관계가 바뀌었다. 배경의 톤과 색, 날씨의 냄새와 촉감이 변했다. 커튼을 쳐 두어 어둑했던 실내만큼 나의 감각과 마음은 무심해진 상태였나 보다.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로 나오자 잠자던 온몸의 감각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시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머리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파란 하늘만큼 마음이 열렸다. 아이와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정류장을 향해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바스락거리는 바람이 불었고 어디선가 풀내음이 스치듯 지나갔다.



마음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 몸을 움직이면 몸이 움직인 만큼 마음도 이동한다. 몸을 따라 마음은 흐르기 마련이고 기분도 달라진다. 가만히 앉아 울적해지는 마음 때문에 힘들다면 몸을 움직여 볼 수 있다. 삶의 커다란 배경은 내 뜻대로 바꿀 수 없겠지만 내가 머무는 장소, 그 한 장의 풍경만은 바꿀 수 있으니까. 다른 풍경을 선택해 마음의 빛을 다르게 칠해볼 수 있다. 기분이란 대체로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두 발로 찾아 나서고 내 손으로 선택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와 예전에 가 본 적 있는 수제 아이스크림 집에 갔다. 때마다 계절 과일로 아이스크림의 종류를 바꾸어 선보이는 곳이다. 지난번엔 자두 아이스크림을 골라 맛있게 먹었는데, 이번엔 수박이 눈에 들어왔다. 수박에 초콜릿, 헤이즐넛 맛 아이스크림을 더해 아이와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 잡고 서촌 골목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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