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발맞추려는 마음
유난히 기분이 가라앉고 하는 일에 진척이 없을 때, 뜻대로 생활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슬럼프. 여름의 고비를 넘기면서 삶을 관통하는 미세한 리듬을 감지하는 촉이 망가진 것 같다. 삶의 물결을 타고 흘러야 하는데 리듬을 잃어버린 마음은 어딘가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고여있는 물이나 바람이 통하지 않는 작은 상자 안처럼. 잘려나간 계단의 마지막 칸에 서서 낭떠러지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때론 올라간다고 기를 쓰고 있는데 돌아보면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이상한 계단 위에 있는 것 같다.
아이에게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틀어주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하얀 화면 위에서 껌뻑거리는 커서를 아무리 노려보아도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은 하얗게 지워지고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귓가에서 점점 확대되었다. 스멀스멀 짜증이 자라 절망으로 깊어졌다. '어쩌면 저 소리 때문인지 몰라. 곁에서 맴돌며 말을 걸고 무언가를 찾고 투정을 부리는 아이 때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어.'
부정적인 감정이 밀물처럼 차올라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물살에 휩쓸려 내동댕이쳐질 것 같았다. 물속에 잠겨버리거나 파도에 휩쓸려 먼 곳으로 떠밀려 가버리고 말 테다. 순간 고개를 들자 창 밖으로 투명하게 맑은 하늘이 보였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구름이 환하게 시야를 밝혔고 그 환함이 마음의 그늘을 단숨에 쫓아냈다. 이대로 앉아 있어 봤자 글은 써지지 않을 테고 괜한 하루만 망칠 것 같았다. 지금 필요한 건, 변화. 순간 내 입에서 이 말이 흘러나왔다.
“서윤아,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