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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Aug 05. 2021

불협화음에도 노래할 수 있다면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법



연일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이다. 아침부터 물놀이를 시작했다. 간이 풀장에 물을 받아 딸아이와 조카를 들여보내고 곁에서 놀아주었다. 날이 맑아 더위가 일찍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물속에 있어 더운 줄 모르는데 물 밖에 있는 어른의 몸만 볕에 달궈졌다. 네댓 시간 햇볕 아래 있었더니 살갗이 따가워지고 몸이 늘어졌다. 아무래도 더위를 먹은 것 같다. 아이와의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집안일을 줄여볼 심산으로 양평 언니네로 피신 왔는데 오히려 내 집이 그리워진다. 집에 가서 쉬었으면 싶다. 아이들 노는 소리마저 성가셨다. 



더위 때문인지 자존감 저하때문인지 마음이 자꾸 비뚤어진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생활의 리듬이 유지될 때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지금은 모든 게 엉망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재유행으로 어린이집은 휴원 중이고 불볕더위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있느라 나를 다독일 새가 없다. 마음의 시끄러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온다. 남편은 일과 대학원 계절 수업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일 년 내내 독박 육아 중. 그에 대한 불만도 쌓여간다. 내 삶인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자꾸 울상이 된다. 



삶이란 무수한 변수가 작용한 우연의 합이다. 타인과 더불어 살기에 수시로 변수가 발생할 수 밖에 없고.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다는 건 불가능한 바람이다. 완전한 통제가 가능한 삶이 존재한다고 상상해보자. 원하는 대로 무언가를 발생시키고 종료하고 대체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스위치를 꺼버리는 삶. 조금 끔찍하지 않은가. 적막이 흐르고 어떤 사건도 없는 삶이라니. 지루하다 못해 괴이할 것 같다. 



의외의 일이 가져오는 기쁨,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호기심도 사라질 테지. 모든 걸 통제하고 싶다는 욕심은 우연이 건네는 선물을 포기하겠다는 마음이다. 내게 필요한 건 통제의 힘이 아니라 선물을 기대하는 넉넉한 마음이다. 우연의 선물을 들여 놓을 여백을 만드는 것. 생활의 혼란과 불협화음까지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꼭’, ‘반드시’, ‘절대’ 같은 딱딱한 말을 지우고,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뭐 어때’, ‘괜찮아’처럼 부드러운 말을 떠올려 본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뭐 어때. 내게 지금 꼭 필요한 말들이다. 글을 쓰지 못하고, 책을 읽지 못해도 괜찮아. 여행을 갈 수 없고, 친구를 만날 수 없어도 괜찮아. 코로나 19와 무더위의 위협  속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잖아. 하루하루 무사하면 다행이지. 그러다 보면 나아지는 때가 올 거야. 이 상태가 영원하지는 않을 테고. 



여름은 끝나고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위협도 잦아드는 날이 오겠지. 아이는 자라 어린이집이든 학교든 어딘가를 가게 될 테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올해가 끝나면 새해가 다시 시작되듯. 지금은 마음이 울퉁불퉁해 모난 돌처럼 굴고 있지만, 다시 명랑한 냇물처럼 노래하듯 흘러가게 될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괜찮다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소요하던 마음이 잠잠해졌다. 진짜 괜찮아졌고 앞으로도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으니까. 흐르는 시간이 뾰족한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듯, 서툰 우리도 시간에 익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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