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모인다

서로에게 발맞추려는 마음

by 춤추는바람





저녁을 먹고 아이와 단둘이 원두를 사러 나갔던 날이다. 천천히 걷고 싶었다. 며칠 퍼붓던 비가 간신히 그쳤지만 먹구름은 걷히지 않았다. 눅눅한 습기가 여름을 답답하게 누르고 있었다. 집안의 공기도 무겁게 내려앉아 발바닥에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아이를 데려가기엔 카페까지 꽤 거리가 멀었지만 남편도 없는 집에서 잠들 때까지 아이와 투닥거리느니 밖으로 나가보자 싶었다. 문을 나서자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선선해진 저녁 바람이 장난이라도 걸고 싶다는 듯 와르르 달려들었다. “아, 시원해!” 둘이 기분 좋게 외쳤다. 서두를 필요도 없는 길, 비눗방울을 날리고,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면서 천천히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철물점 간판 위로 기세 좋게 뻗어 난 줄기에 기다란 수세미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저게 뭐지?” 시치미 떼고 물었더니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오이!” “오이는 저것보다 가늘지 않아?” 그랬더니 “아, 호박이네, 호박.” 하고 답했다. 철물점 옆으로는 이발관이 나란히 붙어 있다. 그 앞 대추나무엔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저것 봐, 초록색 열매가 엄청 많이 달렸다.” 아이가 말했다. “저건 포도야, 저게 자라서 청포도가 되는 거야.”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웃으며 그럭저럭 맞장구를 쳐주었다. 굳이 아니라고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포도가 될 수도 있고, 대추가 될 수도 있고, 제멋대로 상상하는 즐거움이 무엇이든 키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