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장 그르니에, <케르겔렌 군도>, ≪섬≫ 김화영 옮김, 민음사
청춘의 주문 같은 문장이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살게 되길 막연히 꿈꾸었다. 사회가 정해 놓은 나이에 맞는 단계나 공식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곳,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 타인과 비교될 필요 없는 삶. 멀리 떠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좋아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떠남과 동시에 이곳에서 짊어지고 있던 역할과 의무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가방을 꾸릴 때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기막힌 사건이 일어나길 바랐다.
어디서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 외국으로 떠났고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야 한다고 속상해했다. 한 친구는 미국에서 취업하겠다고 대학교 때부터 계획 세워 준비했고 또 다른 친구는 결혼과 함께 남편의 직장 문제로 이름도 낯선 타국으로 떠났다. 차곡차곡 준비한 계획도 믿을 만한 동반자도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삶의 진로가 바뀌기만 바랐으니 그만큼 용기가 없었던 걸 테고. 그런데도 어딘가 내게 맞는 자리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내려놓지 못했다.
자신을 보여주고 증명해야 하는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지났다. 생각했던 것을 실현하기도 했지만 예상과 달라 실망하기도 했다. 좌절하며 성취한 게 있고 거듭 실패한 것도 있고. 나침반이 흔들리며 정방향을 찾듯 삶의 방향을 더듬는 과정이었을까.
한동안 아내와 엄마라는 직함만 남기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누구와 견주는 일도 없었다. 이곳이 낯선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만 달랐지, 동경했던 문장 속 삶에 다다른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겸허하게 살아가는 것. 그건 나의 오랜 꿈이었지 않던가.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집에서 보내는 일상이 전부인 생활은 거울 속 내 얼굴만 바라보는 일 같았다. 내 얼굴로 시작해 내 얼굴로 끝나는 생활. 그러느라 시야는 좁아지고 고집스러운 자아만 남아버리는 일. 매일이 똑같은 풍경 속에서 지루하게 흘러갔다. 그런데도 나의 어떤 일부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처음 혼자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 여기서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도시가 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여기가 지도에 표시는 되어 있을까 싶었고.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골목을 지나면 불현듯 텅 빈 광장이 나타났다. 창백한 빛만이 나를 맞았다. 바닥과 건물 벽, 수로 위로 일렁이는 빛을 바라보는 사이 숨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저 길 끝에서 누구도 나타나지 않길 바랐다. 나만 아는 흥분과 감탄을 품고 하나의 문장에 밑줄을 그을 때처럼 순전하게 기뻤다. 그런 비밀스러운 순간을 좋아했다.
삶에서 ‘비밀’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