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장 그르니에, <케르겔렌 군도>, ≪섬≫ 김화영 옮김, 민음사
청춘의 주문 같은 문장이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살게 되길 막연히 꿈꾸었다. 사회가 정해 놓은 나이에 맞는 단계나 공식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곳,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 타인과 비교될 필요 없는 삶. 멀리 떠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좋아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떠남과 동시에 이곳에서 짊어지고 있던 역할과 의무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가방을 꾸릴 때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기막힌 사건이 일어나길 바랐다.
어디서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 외국으로 떠났고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야 한다고 속상해했다. 한 친구는 미국에서 취업하겠다고 대학교 때부터 계획 세워 준비했고 또 다른 친구는 결혼과 함께 남편의 직장 문제로 이름도 낯선 타국으로 떠났다. 차곡차곡 준비한 계획도 믿을 만한 동반자도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삶의 진로가 바뀌기만 바랐으니 그만큼 용기가 없었던 걸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