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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May 02. 2023

사랑에 고스란했지

도시락 싸다 엄마 생각





“하루에 도시락 여섯 개를 쌌다. 그땐 하루 종일 도시락 반찬 뭐 넣을까 그 생각뿐이었지. 

아이 키워보니 엄마 마음도 이해할 줄 알게 되고, 고맙네.”


전화 걸어 “대단한 일을 하셨다"라고 칭찬해 드렸더니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



지난주 금요일, 딸아이의 학교에서 복통과 두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급식이 중단되었다. 역학 조사가 실시되는 한 주간 도시락을 준비해 달라는 알림이 왔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는 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부담스러웠다. 전날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매일 아침 밥을 새로 하고 반찬이든 단품이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니까. 이른 아침부터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은근 스트레스였다. 하루 이틀은 즐거운 마음으로 했는데 삼일째가 되니 조금 지쳤다. 고작 삼일째에. 이걸 앞으로 계속해야 한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그러다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는 사 남매를 키우느라 십오 년 동안 날마다 도시락을 쌌다. 고등학생이 되자 점심, 저녁 두 개를 준비해야 하니 언니랑 내꺼로 네 개가 기본, 거기에 동생들까지 여섯 개가 되었고. 도시락 한 개 싸는데도 힘들어 마음이 껄끄러운데 엄마는 그걸 어떻게 견뎠을까.


매일 아침 우리 집 부엌은 북적거렸다. 반찬을 준비하느라 엄마는 분주했고 싱크대와 식탁 위는 늘어져 있는 도시락 통과 그릇으로 붐볐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은 늦게 일어나 깨우지 않았다고 엄마에게 불평을 쏟아냈고. 여기저기서 무언가를 찾고 요청하는 말이 터져 나왔다. 투덜대는 목소리와 야단치는 목소리에, 체념하는 몸짓까지. 그 모든 게 뒤섞여 수선스러웠다. 빨리 도시락을 달라는 투정에 엄마는 애가 탔다.

“계란이 아직 덜 익었어. 잠깐만.”


엄마가 자주 해주던 반찬은 프라이팬에 부친 계란찜이다. 서너 개의 도시락통에 담으려면 양이 넉넉해야 했으니 계란말이로는 택도 없었을 것이다. 계란을 풀고 양파, 당근 등 다진 야채를 듬뿍 넣어 프라이팬 두께로 익힌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두툼한 계란을 익히려면 바닥이 타지 않게 약불에서 뚜껑을 덮어 오래 익혀야 한다. 아랫면이 어느 정도 익으면 사등분으로 나누어 툭툭 뒤집고 다시 익히느라 시간이 걸렸다. 야채로 계란 냄새를 잡고 양파를 많이 넣어 달달했던 계란찜을 나와 친구들은 좋아했다.


도시락 시간이 유일한 낙이던 고등학생 시절, 내 도시락은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계란찜이 나오면 친구들이 환호했고 반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또 인기가 있었던 엄마의 반찬은 간장 깻잎 조림. 깻잎 사이사이 간장 양념을 넣어 달콤 짭짤했다. 언젠가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깻잎 조림을 보고 밥부터 찾았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계시지 않던 집에서 저희들끼리 부엌으로 달려가 밥통 열어 밥을 푸고 냉장고 열어 반찬을 꺼냈다. 그런 친구들을 보는 게 흐뭇했다.




일주일간 딸아이의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밑반찬을 준비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평소 밑반찬을 챙겨 두고 먹는 스타일도 아니고 도시락에 넣으려면 반찬을 여러 개 만들어야 하는데 손이 많이 갈 게 뻔했다. 간단하게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한 끼 음식을 생각했다. 김밥, 유부초밥, 돈가스… 손이 빠르지도 않고 아침부터 음식 하느라 기운 빼기도 싫었다. 일찌감치 도시락에 괜한 힘을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첫날은 아이가 좋아하는 소시지에 계란말이를 싸주었다. 둘째 날은 김밥, 셋째 날은 유부초밥. 아침에 휘리릭 만들 수 있는 메뉴라 평소보다 30분 정도 서두르면 되었다. 그런데도 감기 기운이 겹쳐 셋째 날은 벅차다 싶었으니 안 하던 걸 하는 건 작든 크든 무리가 되긴 하나보다.


그래도 하교하는 아이에게 “도시락은 잘 먹었어?” 물으면 어김없이 “진짜 맛있었어!”라는 답이 돌아왔고 그 말엔 감출 수 없이 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이는 맛있었다고, 다 먹었다고, 얼굴에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런 아이의 말과 표정이 얼마나 내 가슴을 쨍하게 하던지. 빈틈없이 채워진 기쁨 한 덩이를 받는 것 같았다.


이 기쁨의 정체는 무얼까. 나의 사랑에 대한 화답, 노력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는 기쁨일까. 사랑이 길을 잃지 않고 정확하게 제 자리를 찾아 모양을 맞춘 것 같았다. 그러면 뜬금없이 도시락 욕심이 생겼다. 내 사랑을 예쁘게 도시락통에 담아 보내고 싶어 아이에게 물었다.

“내일은 뭐 먹고 싶어? 뭐가 좋을까?” 




엄마도 그랬을까. 날마다 묻고 또 물었으니.

“뭐 먹고 싶은 반찬 없니?”

“아무거나…….”

“그래도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엄마가 싸주는 건 다 맛있어.”

“그러니? 엄마는 맨날 뭐 할지 그게 제일 걱정이야.”


별생각 없이 하는 내 답에 엄마는 웃었다. 다 맛있다는 말에 그런 줄 몰랐다는 듯 놀라며 좋아했다. 그 말을 듣고 싶어 묻는 말인 줄 알았다. 엄마에게 도시락 반찬이 정말로 커다란 걱정일 줄 그때는 몰랐으니까.


며칠 도시락을 싸보니 그 일이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알겠다. 고만고만한 메뉴 중에 도시락에 담아도 괜찮은 반찬을 고르는 일, 식어도 맛이 크게 바뀌지 않고 반찬 통에서 샐 염려 없는 반찬을 준비하는 일이. 매일 같은 걸 넣을 수 없고 우리 아이가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는. 답 없는 고민, 소모적인 갈등을 날마다 하며 몇 년을 보냈구나, 우리 엄마. 전쟁통 같던 아침, 그런 아침을 십오 년을 보낸 건 어떻고.




아이는 내가 싸준 김밥을 특히 좋아한다. SNS에서 알게 된 당근 계란 김밥. 당근과 계란 지단만 준비하면 되니 만들기는 수월한데 고소하고 담백해 아이 입맛에 딱이다. 둘째 날에 김밥을 싸주었는데 맛있다며 한 번 더 싸 달라고 했다.  지난번보다 더 신경 써 도시락 통에 담았다. 보기에 예쁜 게 맛도 좋다고 하니까. 아이가 좋아하는 김밥을 쌌으니 점심시간이 기다려질 것 같다. 맛있게 먹을 아이를 생각하면 수고로움은 잊히고 가슴 한 편이 뻐근해진다.  


울 엄마도 그런 마음으로 도시락을 쌌겠지. 그런데도 하루에 네 개를, 십년 넘게 싸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일 테다. 정말 하기 싫은 날도 있었을 테고, 내 인생 뭔가 싶은 날도 있었겠지. 그땐 그런 감정을 몰랐으니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그런데도 싹싹 비워 온 도시락 통만으로 엄마는 기운을 낼 수 있었을까. 맛있었다는 말에 날마다 기뻤을까.


아이들 많은 집에서 자라 엄마의 세심하고 살뜰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위로는 부모님의 기대를 받는 언니가, 아래로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남동생이 있어 혼자 컸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만으로 내가 받은 사랑이 엄청나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다 세심하고 살뜰한 사랑이었다. 나를 지우며, 매일을 버티며,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쏟아붓는 것. 자신을 포기하면서 누군가를 돌보는 것. 그보다 커다란 사랑을 나는 알지 못한다.


생각해 보니 그런 엄마 마음을 헤아려 착한 딸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엄마가 고생하는 게 뻔히 보여 할 수 있는 한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으니까. 그때엔 공부 열심히 하고 말 잘 듣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사춘기 적에도 반항 없이 조용히 제 할 일하며 컸다. 대학생, 성인이 되어 뒤늦게 방황할 때마다 그렇게 자란 걸 후회한 적도 많다. 말 잘 듣는 아이, 착한 딸로 성장한 게 어떤 면에서는 결핍이 되기도 했고.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구나 싶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나는 나대로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거라고. 한때는 부족했던 것만 보였는데, 각자의 모양으로 온전했던 시절의 마음이 이제는 보인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던 시절, 사랑에 고스란했던 시절이.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를 참 사랑했었다는 게.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엄마 정말 대단한 일 하셨다고. 십 년 넘게 날마다 도시락을 싼 엄마 덕에 내가 개근상을 받고 우등상을 받았던 거라고. 그거 다 엄마가 받은 거라고.


"고마워요 엄마. 정말 고생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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