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캠핑
하루는 '철학자의 폭포'를 보러 숲 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무성하게 자라 거대한 나무들이 시야를 사로잡았다. 와아- 감탄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나무를 타고 내려오던 시선은 기둥 틈새 비죽 솟아있는 버섯을 찾아냈고. 어느새 아이들은 나무 기둥과 바위틈, 구석구석 숨어 있는 버섯 찾기에 빠져들었다.
숲 안으로 한참 들어섰을 때 알아챘다. 숲에 가장 많은 건 이끼라는 걸. 바닥에서 나무 기둥 전체, 밖으로 드러난 나무뿌리와 돌멩이 위, 오솔길 가장자리로 얕게 흐르는 냇물 주변에도, 온통 이끼로 가득했다. 숲의 메마른 흙 길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끼 차지였다. 울창하거나 키가 크지 않은데도, 여리고 가늘고 아담한데도 나무만큼 빽빽하게 숲을 지키고 있다. 언젠가 이끼는 자신의 작은 몸집을 축복으로 여긴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작다는 한계를 강점으로 사용한다고.
작아서 오래 견디고, 작아서 멀리 간다. 작은 대신 많고 눈에 띄지 않아 고요히 부풀어 오를 수 있다. 작아서 강하고 아무것도 아니라서 자유롭다.
나무와 이끼가 사이좋게 공유한 숲.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돕는 삶. 그런데도 이끼에 뒤덮인 나무들은 초록 털옷 입은 군주 같다. 넉넉한 마음으로 사랑받는 주인처럼 보였다. 나무들이 이끼에게 자리를 허락하는 거라고. 그럴까. 보이는 대로 일까. 어쩌면 이끼들이 나무를 살게 한 건 아닐까. 이끼들이 나무를 보듬어 풍성하게 해 준 건 아닐까.
나무에게 근사한 옷을 입혀 빛내 주고 있는 듯 없는 듯 납작 엎드려 살아가는 이끼의 삶이 마음에 들었다. 커지는 대신 작아지는 방식으로 드넓어지기. 드러내는 대신 감추는 방식으로 자유로워지기. 이끼는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멋졌다. 닮고 싶었다.
앞으로의 삶은 이끼처럼 살면 어떨까. 드러내는 대신 뒤로 물러나면서, 곁에 있는 이를 빛내 주면서. 외면으로 보이는 자리, 드러나는 목소리는 낮추면서 내면의 품만은 광대하게 키우면서. 작아질수록 가뿐하게 즐거워지고 내어줄수록 자유로워지는 비밀을 발굴하면서.
아이들과 재잘거리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하면서 걷다 보니 철학자의 폭포에 다다랐다. 길고 높은 폭포에서 시원하게 물줄기가 떨어졌다. 소리만으로 오소소-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웠다. 머리가 맑게 개였다. 작아지는 삶의 비밀을 두 손에 쥐고 가뿐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숲 탐험을 마무리할 즈음엔 놀랍게 빛을 발하는 붉은 버섯도 발견했는데 아이들은 보물을 발견한 것마냥 환호하며 즐거워했다. 우리는 저마다의 보물을 간직한 채 텐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