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캠핑
태즈메이니아 고든에 머물 때의 일이다. 도착한 첫 날은 바람이 잔잔해 파도가 일지 않는 바다가 마치 호수같았다. 하늘과 바다는 온통 파스텔톤의 파란빛으로 뒤덮여 있고 바다는 잔물결을 보내며 반짝거렸다. 물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싯다르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강으로부터 그는 쉴 새 없이 배웠다. 그는 강으로부터 무엇보다도 경청하는 법, 그러니까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영혼, 활짝 열린 영혼, 격정도, 소원도,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배웠다.”
바다로 이어지는 캠핑장은 한적했다. 해변에는 나무 판자로 지은 낡은 구조물이 보였고. 월든의 바다판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루 종일 바다만 바라봐도 무언가 깨달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다음날부터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바닷 바람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당장에라도 텐트를 날려버릴 것 같았다. 하늘이 쾌청한데도 바람만은 거칠었다. 밖으로 나가면 머리카락을 뒤덮어 놓는 바람에 정신이 사나웠고 텐트 안에 있으면 방수천이 펄럭이는 소리로 머릿 속이 뒤숭숭했다.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전날의 생각은 깡그리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절정에 달했으니 말이다. 바람을 단단하게 막아줄 벽과 바람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시키는 방음 창이 있는 집. 난방이 되어 따뜻하고 바깥의 날씨와 상관없이 안심할 수 있는 집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집을 버리고 떠나온 여행에서 집과 그 안에 있는 온갖 물건이 관리와 정돈이라는 불필요한 노동을 만들어내는 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바람에 텐트가 날아갈까 전전긍긍하던 그 며칠은 집이야말로 삶의 근본적인 보호망이라는 걸 감사히 되새겼다.
불안한 마음 반, 답답한 마음 반으로 아이들과 해변으로 나갔다. 바람을 막아볼 요량으로 텐트 안에 있어봤자 방수천이 흔들리며 내는 요란한 소리가 불안을 증폭시켰으니. 바람이 불어대도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놀거리를 찾아 뛰어다녔다. 돌멩이를 들춰 게를 찾고 물장난을 쳤다. 그때 저 멀리 하늘 높이 띄워진 낙하산과 거기에 연결된 줄을 잡고 서핑을 하는 사람이 보였다.
패러글라이딩과 서핑을 접목한 해양 스포츠(카이트보딩이라고 한다)인가 보다. 쨍한 연두색의 낙하산이 파란 하늘을 가르며 날았고 보드에 올라탄 사람은 곡예를 하듯 바다 위를 질주했다. 와아- 바라보는 사람마저 짜릿하게 하는 장면에 아이들과 나는 감탄하며 소리쳤다. 젊은 남녀 커플이 카이트보딩을 번갈아가며 탔다. 그들은 캠핑 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인데 바람이 강하게 불자 카이트보딩을 타려고 서둘러 바다로 나온 것 같았다.
이 성가신 바람을 저들은 애타게 기다렸단 말인가. 더 거세지길 더 휘몰아치길 손꼽아 기다렸을까. 잠잠해지길 바라는 이 바람을 누군가 손꼽아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카이트보딩을 즐기고 만면에 미소를 띈 채 활기차게 걸어가는 커플을 보니 내가 걱정할 만큼 바람이 위험한 수준이 아닌가 보다는 생각도 들고. 누군가는 움츠러들고 마는 날씨 앞에서 바람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라니. 멋져도 너무 멋져 보였다.
그런 이들을 만난 게 처음은 아니다. 밤새 배를 타고 태즈메이니아에 처음 도착한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바다에서는 파도가 크게 일었다. 날은 차갑고 음습했지만 그런 날에도 아무렇지 않게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아침 샤워를 하듯 자연스럽게 성난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높아진 파도 안에서 유유히 수영을 즐겼다. 늘 바다 곁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날이 좋을 때만 수영을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바닷 바람이 거센 날이 잦을 텐데 그때마다 침울해 한다며 이곳에서 즐거울 수 있는 날은 며칠이나 될까.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자고 마음 먹은 게 아닐까. 고정관념을 지우면 어떤 날씨에도 기쁜 마음으로 바다를 마주할 수 있고 수영과 각종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테니까. 그들이 지닌 유연한 생각이 바꿀 수 없다면 있는 그대로 즐겨 보자는 마음을 자라게 했을 것 같다. 바람이 거세고 빗방울이 흩날려도 여유롭게 자신의 스텝을 밟는 그들이 자유로워 보였다.
바꿀 수 없는 환경과 조건에서도 나의 기분과 태도만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마음을 닫고 울적해 하는 대신 가능한 즐거움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캠핑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샤워와 빨래를 할 수 없는 날도 잦았다. 그러면 샤워는 며칠 거르고 옷은 더러워진 채로 다닐 수 밖에 없었고. 처음엔 그게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졌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요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가스가 떨어져 물을 끓일 수 없으면 시리얼로 끼니를 때웠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텐트 안이나 공용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추우면 가지고 있는 옷을 모두 껴입고 더우면 그걸 하나씩 벗어가면서 어쩔 수 없는 것과 친해지는 법을 익혔다. 그러다보면 비가 그치고 바람이 잦아들었다. 날이 개고 다시 해가 났다.
그러고보니 캠핑을 시작한 이후로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것과 손잡는 연습을 내내 하고 있었다. 나를 예민하게 하는 상황 때문에 상심하거나 짜증을 내는 대신 즐거운 요소로 눈길을 돌리려 했다. 춥더라도 바다에 들어가보고 아이들과 놀이를 하면서,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화장실이나 샤워장이 없어 불편한 마음, 편안하게 쉴 곳이 없어 부대끼는 마음도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았다. 안 될 것 같던 마음의 벽도 서서히 허물어졌다.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나타나더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것과 나란히 걷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때로는 손을 잡고 춤을 출 수도 있겠지. 처음에는 그런 나의 스텝이 우스꽝스러울 테지만 마음만은 즐거울 것 같다.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대상과도 손을 잡아 보겠다고 용기를 낼 수만 있다면. 춤추는 기술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연마하면 되겠지.
본 적 없는 파랑과 꿈꿔왔던 것 같은 물소리를 만났다. 그러다가도 추위에 지치고 바람에 얻어 맞기도 했지만. 걱정도, 소원도,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귀 기울여 듣는 자세를 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