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캠핑
새들의 지저귐에 잠이 깼다. 다양한 새들이 합창을 한다. 안녕, 새들아- 눈을 감고 새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이렇게 귀를 기울이면 언젠가 각각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될까. 하나의 목소리라도 구분해 보려 집중하는 사이 내 귀는 조금 예민해졌을까. 새들의 노래에 둘러 싸여 비좁은 침낭 안에 누워 있다 보면 지구에 인간만 살지 않는다는 말이 온몸으로 감각된다.
커다란 자연 안에서는 인간은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라는 게 자각 없이 다가온다. 이곳에서 인간은 무수한 생명체와 함께 살아간다고. 새들, 풀벌레들, 나무와 숲, 왈라비와 포썸, 이구아나, 도마뱀, 고슴도치와 캥거루, 그리고 이끼와 그 안에 숨은 무수한 생물들, 바닷속 소라, 조개, 게와 해초, 그리고 물고기들.... 헤아려볼수록 세상은 얼마나 크고 다채롭고 풍성한지. 눈을 감고 이름을 불러보는 사이 나의 세계는 전에 없이 커다래진다.
무언가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찾지 않는 것이라던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길게 느껴졌던 여행이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랐다. 필수적인 물건만 챙겨 가장 최소의 시설을 갖춘 캠핑장을 찾아다녔던 여정. 유명한 관광지나 경치가 빼어난 곳을 채워 넣은 일정도 없이 캠핑장 주변의 숲과 바다에 머물며 시간을 흐르도록 놓아주는 생활이었다.
처음엔 무의미하게 가는 시간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너무 커다란 스케치북을 받아 든 꼬마 아이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의 여백에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서울에서는 무척 갖고 싶었던 건데도 막상 마주하고 보니 막막했다. 그랬는데 어느새 알차게 시간을 쓰는 법이나 여행의 의미를 만드는 법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상태에 다다랐다.
대신 적은 물건으로 생활하는 가뿐한 즐거움을 익혔고 눈앞에 보이는 자연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감탄하고 추천하는 곳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눈과 귀를 활짝 열면 세상은 순식간에 풍성하고 무성해진다는 것도. 마음을 열어 숲길을 걷고, 바다로 뛰어들고, 한자리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선 닿는 곳에 나를 포개면 나는 옅어지면서 눈앞의 대상이 선명해졌다. 그렇게 내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마음은 홀가분하게 자유로웠다. 무엇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 자유. 자유로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 사이 게을러지는 법과 시간에 무심해지는 법도 내게 스며들었고. 그만큼 속도와 성취에 대한 집착도 덜어내었길.
회사를 다니다(그만두고) 가게를 열고(닫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이를 얻었지만 어느 순간 삶을 되돌아보니 아무것도 이뤄 놓은 게 없어 보였다. 무엇도 되지 못해 울적했는데 한 달간의 캠핑을 하면서 완전히 잊고 있던 꿈이 내 안에서 떠올랐다. '시간이 많은 사람'. 어느새 나는 바라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때 나의 소원은 ‘시간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해야 할 일에 쫓겨 하고 싶은 일은 늘 뒤로 밀렸으니까. 시간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없어지고 막상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나는 무언가를 하느라 자주 분주했다.
집을 떠나 나를 유혹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자연 앞에 헐벗은 자신으로 섰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을 덜어내자 시간이 많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덜어 낸 것들은 내 삶에 없어도 괜찮은 것이라는 발견이 덤처럼 따라왔고. 지금 내겐 시간이 아주 많다. 나는 텅 빈 시간에서 고요하고 하지 않음으로 편안하다.
일상의 삶은 무언가를 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정말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일들에게 삶을 내어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핸드폰을 보는 시간, 쇼핑하는 시간, 더 좋은 걸 찾아 헤매고 더 그럴듯해 보이려 치장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정말 중요할까. 삶을 잠식한 많은 일에서 불필요한 것을 솎아 내기 위해 강제적으로라도 모든 스위치를 내려보는 건 어떨까. 편안해지기 위해 얻고 소비하는 행위가 오히려 나를 시간에 가난한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변함없이 밀려오고 말려 가는, 끝없이 흐르는 물을 보며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보면 “눈앞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는 <싯다르타> 속 문장의 의미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과거가 만들어 낸 미래로 오늘이 존재하고 오늘은 미래의 밑그림을 그린다고. 지금 이 순간은 현재에만 분절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그림자와 미래의 여명이라는 교집합 속에 탄생한다고.
내 앞에는 오늘이라는 현재만이 있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 시간은 흘러 사라지거나 끝나고 마는 게 아니라 언제나 내 앞에서 가장 충만한 상태로 드러난다. 어제와 연결된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이어진 오늘. 시간은 그렇게 영원히 차오를 테니까.
한 달은 길기도 짧기도 했다. 길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건에 불안했지만 짧다고 생각하면 지금에 집중할 수 있었다. 긴 생을 생각하면 한 달은 짧은 시간. 내겐 더 많은 시간이 있으므로 한 달은 순간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어떤 순간. 흘러서 사라지고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그림자를 품고 미래의 여명으로 지속되는. 그렇게 시간을 끝없이 늘리면 그 안에서 고요하게 머물 수 있었다. 오늘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쫓기지 않고 오늘을 내일로 연결하면서. 서두름 없이 천천히 걷고 한 곳을 깊이 바라보려 시도하면서.
태즈마니아에서 본토로 건너오는 페리에서 밤을 보내고 차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파란 하늘에 둥실 떠 있는 구름은 강아지, 토끼, 고래, 물고기, 화산... 모양을 바꿔가며 한가로이 흘렀다. 너른 초원에는 돌무덤처럼 양들이 모여 있고 개미떼처럼 소들이 줄지어 있다. 언덕 위로 드물게 나무가 서 있는 먼 곳의 모습은 빛과 그림자가 적절히 배치된 한 폭의 유화 같고.
어떤 날엔 이 땅에 넘쳐나는 풍요가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풍경이 건네는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흡수한다. 지금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눈앞의 모든 것이 과분한 선물이라는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