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베이킹 소다를 잔뜩 풀어 둔 뜨거운 물에 사과 다섯 알을 담가 두었다. 조금 있다 흐르는 물에 사과를 여러 번 헹구었다. 뽀드득해진 사과를 껍질 째 12등분으로 자르고 얇게 채 썰었다. 버터를 녹인 냄비에 사과 조각을 넣고 설탕을 뿌렸다. 레몬즙과 계피 가루도 넣었다. 열이 오르자 냄비는 지글지글하는 소리를 내며 달큼한 냄새를 퍼뜨렸다. 사과 타르트를 만드는 날이다.
이번엔 아몬드 크림과 사과 마멀레이드로 속을 채운 후 윗면에 소보루를 올려 구웠다. 지난달에는 담백한 파이지에 진득하게 조린 사과 마멀레이드를 채워 사과 파이를 구웠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파이지에 빠져 역시 사과는 파이로 먹어야 제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사과가 들어간 디저트는 뭐든 다 맛있다. 말캉한 사과 조림이 바삭한 소보루 알갱이와 뒤엉켜 입안에서 와드득 씹히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거기에 바닐라 아이스크림까지 올리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사과 타르트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수강생들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다. 가까이 살면 챙겨 두었다 씩 웃으며 건네줄 텐데. 한 번은 예쁜 아가씨 두 명이 사과 타르트 수업을 들으러 왔다. 동갑내기 친구들이었다. 전주였던가, 지방 소도시에서 함께 자랐고 지금은 각자 일하고 생활하며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생일인 친구를 위해 다른 한 친구가 선물로 신청한 수업이었다. 둘 다 사과를 유난히 좋아한다며 한껏 들떠 있었다. 사과를 좋아하는 친구를 위한 생일 선물로 수업을 신청하고 어렵게 휴가를 맞추었을 생각을 하니 내 마음도 유별해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 그날 하루는 친구처럼 끼어 있고 싶었다.
진지한 기색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조잘조잘 끝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모습이 팔랑거리는 나비 같고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같았다. 둘 다 계피를 좋아한다며 뽀얀 사과 속살이 짙은 갈색으로 물들 만큼 계피 가루를 넣어 사과를 조렸다. 정해진 분량만 넣는데 익숙해진 나는 작은 티스푼으로 두세 번 계피 가루를 떠 넣는 그들을 보며 속으로 놀랐다. 하지만 사과가 졸여질수록 마음이 바뀌었다. 두 친구의 사과 조림이 훨씬 맛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냄새부터가 달랐다. 그녀들의 수다와 웃음에 홀려 버린 걸까. 수강생들이 만든 타르트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가 유일했다.
함께 있으면 유난히 즐거운 사람이 있다. 말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합이 잘 맞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속상한 날에 그이를 만났다면 헤어져 돌아오는 길엔 마음이 후련해져 있을 것이고, 기쁜 날 그이를 만났다면 돌아올 땐 더 충만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 이와 무언가를 같이 할 때는 평범한 것에서도 다른 소리가 난다. 빛을 만든다면 더 영롱해지고 모양을 빚는다면 더 매끈해진다. 깍지를 낀 두 손처럼 빈 틈 없이 서로를 감싸 편안해진다.
제과 학교에서 만난 실습 짝꿍 세희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세희는 나이가 어리고 얼굴은 앳되어도 마음만은 어른스러웠다. 침착하고 대범했고, 참을성 있고 너그러웠다. 야무진 손이라 무얼 맡겨도 믿음직스러웠다. 실습 시간이면 우리는 손발이 착착 맞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아서 다음 과정을 준비했고 무얼 마치는 속도도 비슷했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장식하는 취향도 맞아떨어졌다. 실습을 망쳐 속이 상해도 ‘세희야~’하고 우는 소리를 내면 ‘언니, 고생했어요. 잘했어요.’하는 세희의 한마디에 마음이 스르륵 풀렸다. 세희가 있어 학교 가는 게 즐거웠고 실습의 두려움과 긴장을 덜 수 있었다. 세희가 짝꿍이어서 든든했다. 아기처럼 하얀 피부에 긴 생머리인 그녀는, 어쩜, 이름도 ‘세희’일까.
사과는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다. 향긋한 향에 단물을 가득 담고 있는 아삭한 과육,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넉넉함, 친근하면서도 정겨운 이 과일은 오랜 친구 같다. 그런 사과는 있으면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없으면 티가 난다. 오랜만에 사과 타르트를 맛있게 먹었다. 사시사철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믿음직한 과일이 있어 든든하다. 내 곁에 있는 사과 같은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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