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쿠키는 쉽지 않아요?”
베이킹을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글쎄요”다. 쉽고 간단한 쿠키도 있지만 정교한 작업이 추가되어 손이 많이 가는 쿠키도 있다. 수업에서 다루는 쿠키는 주로 후자에 해당된다. 반죽을 만들어 굽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굽기 전후로 추가 재료를 만들어야 하고, 휴지 시킨 반죽을 밀어 펴고 틀로 찍어 조립하는 등 손 품이 꽤 들어가는 걸 만든다. 그러다 보니 쿠키 수업은 늘 일이 많고 쉴 새 없이 오븐이 돌아가 분주하다. 간혹 쿠키는 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왔다 큰 코 다치고 간 수강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쿠키 수업이 있던 날이다. 역시나 밑 작업도 많았고 수업 후 뒷정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정성껏 만든 쿠키를 박스에 차곡차곡 담고 포장하면서 “너무 예뻐요!”하는 수강생의 감탄사에 수고로움은 싹 사라졌다. 네모나게 각이 잘 잡혀 납작하게 구워진 통밀 쿠키는 씹을수록 고소하고, 부드럽게 부서지는 사블레는 버터의 풍미를 가득 담고 있다. 무화과 잼을 올려 보석이 박힌 듯 반짝거리는 무화과 쿠키는 어떤가.
수업을 마치고 뿌듯하면서도 피곤이 쌓여 묵직한 몸을 끌고 돌아오는데 예전에 쿠키 수업을 들었던 모녀가 떠올랐다. 엄마 생신이라며 엄마와 함께 수업을 듣고 싶다고 딸이 연락을 해왔다. 딸은 수강료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고 했다. 수업 당일에야 뵌 어머니는 한 눈에도 꽤 연세가 있어 보였다. 3시간 동안 서서 해야 하고 힘도 들어가는 수업이 행여 무리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나이 많은 분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 경험이 없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수업은 여느 때처럼 흘러갔다. 그날은 모양을 잡아 차게 굳힌 반죽을 칼로 잘라 굽는 쿠키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칼질에 익숙한 사람에게 유리한 수업이었다. 주부 경력이 만만치 않은 어머니의 칼질은 수준급이었다. 종종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엄마가 예전에 이런 건 많이 해봤지’, 하시며 낮은 목소리로 딸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사이 음식에 깃든 추억이 소환되기도 했다.
서너 가지 쿠키를 만드느라 수업 시간은 바쁘게 흘러간다. 그때도 3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수업이 후반부에 다다르자 어머니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뭔가 한 말씀하는데 이전과 달리 무척 퉁명스러웠다. 행동도 어눌해져 있었다. 딸이 작은 목소리로 엄마가 조금 몸이 안 좋으시다며 수업이 언제 끝나는지 물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요리 노하우를 이야기하던 어머니는 어느새 어린아이처럼 다소곳해져 있었고 딸이 아이 타이르듯 어머니를 어르며 이끌었다.
수업은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고 두 분이 다정하게 베이킹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수업 후 보내드렸다. 딸은 엄마와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든 것 같다며 답신을 보내왔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추억이 되는 시간을 보낸 날에는 기분이 좋다. 하지만 어눌해졌던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편은 어두웠다. 치매를 앓고 계신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를 모시고 베이킹 수업을 오다니, 딸의 용기가 새삼 놀라웠다. 나라면 어머니가 실수할까 전전긍긍할 바에야 아무것도 하지 말자며 외출은 포기해버릴 것 같았다. 어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어렵게 외출을 감행했을 딸의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감동적이면서도 슬펐다. 치매란 퇴행으로만 향해가는 병이지 않은가.
영화 <스틸 앨리스>(리처드 글렛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 줄리안 무어 주연, 2014)에는 치매를 앓는 언어학자가 등장한다. 존경받는 언어학자이자 세 아이의 엄마, 사랑스러운 아내인 앨리스가 서서히 단어를 잃고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느라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앨리스 자신과 그런 그녀를 지켜보며 삶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앨리스의 딸 리디아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 높이 올라가 오존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이야기를 읽어준다. 기억과 지능을 잃어가는 앨리스가 그 이야기를 듣고 미소를 짓는 장면은 책 속 이야기만큼 기적적이어서 눈시울을 젖게 했다.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재앙입니다. 매일 잃어버리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영화 <스틸 앨리스> 중에서)
치매가 한창 진행된 상황에서 앨리스는 자신의 이야기로 강연을 한다. 그녀는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조차 매일 배우는 것이 있다고. 그래서 더 열심히 현재를 살고 있다고. 기억이 사라져 가는 매일은 그야말로 소동과 싸움의 연속일 테다. 그런데도 잃어버리는 법을 배우겠다는 마음은 어떤 걸까. 포기하고 절망하는 대신 시간이 남아 있는 한 순간을 살겠다는 그 다짐 자체가 희망처럼 다가왔다.
그 모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머니의 상태는 어떨까. 딸과 어머니 모두 질병과 달라진 삶을 잘 이겨내고 있을까. 매일 잃어가는 과정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희망하고 있을까. 사라지기 때문에 더 소중한 순간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치매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상실을 경험한다. 미래의 상실은 역설적으로 현재에 빛이 모이게 한다. 언젠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내 앞에 놓인 사소한 것들마저 소중히 더듬어보게 되니까. 쿠키 수업에서 만났던 모녀에 대한 생각이 나이 든 엄마와 어린 딸에게로 이어진다.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갈 시간이다.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 나가야지.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 한 번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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