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캠핑
길 위에서 멋진 여성들을 만났다. 홀로 캠핑카를 몰며 여행하는 백발의 할머니, 기타를 들고 여행하며 아침엔 요가를 하는 여인, 아이들을 데리고 홀로 캠핑 다니는 엄마, 둘이 다니면서도 작고 납작한 개인 텐트를 설치하며 여행하는 여자 친구들,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젊은 여자들. 자신을 만들었거나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질문한다. 나라면? 나는 어땠지? 언젠가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살아가는 과정이 나를 만들어 가는 일이었음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더 열심히 나를 만들걸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들었다. 자라고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생각했지 그 시간들이 흔적을 남기고 쌓이고 모여 나라는 세계가 된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데 급급하느라 시간이 지난 후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채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허비하기도 했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내가 되어가는 일이었다. 이제야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포기하면서 나를 만드는 과정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단계에 다다랐기에 이런 자각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삶의 길이 어떤 모습인지 돌아볼 수 있는 시점이 되었기에 의식하지 않고 걸었던 길이 나를 만들었고 그러느라 잃어버리거나 도달하지 못한 내가 있음을 알아채는지도.
그러면서 상황과 여건에 관계없이 지키고 싶은 나 또한 알게 되었다. 그 모습으로 자신과 삶을 만들어 가는 일 또한 전적으로 내게 달렸다는 사실도. 누가 뭐래도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 어떤 고집이 비로소 생긴 것 같다.
돌아보면 주어진 상황에 나를 맞추는 것만도 버거웠다. 나이에 맞춰 요구되는 과업, 외부의 시선과 기대,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역할을 해내느라 허덕였다. 그에 합당한 모습이 되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느라 고유한 나를 억누르거나 바라는 삶에 대한 희망을 접은 적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길로 가보고 돌아가기도 했지만 어떤 근원의 것은 변치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나다운 나에 다가서려 집중하고 있다. 우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내게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고 있다. 중요하다고 외부로부터 주입받았지만 내겐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일과 기능, 활동을 줄여 가면서. 그렇게 잔가지를 쳐 내자 성장시키고 싶은 내가 보였다. 원하는 나의 모습을 향해 삶을 조금 더 모으고 있다. 이런 과정이 뜻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단숨에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았고.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과정 중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쌓일수록 나라는 기둥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기분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태어남으로 끝나지 않고 그저 사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살아가는 내내 적극적인 선택과 꾸준한 노력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 같다. 우리는 자라면서 무수한 방향으로 가지를 키운다. 하지만 때가 되면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야 한다. 그래야 성장의 방향을 선택해 중심이 되는 줄기를 더 두텁고 단단하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섬세한 조형가처럼 적극적인 선택과 포기로 서서히 꾸준하게 자신을 빚어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매일이라는 벽돌을 쌓아 ‘나’라는 고유한 성을 짓는 일. 매 순간 선택하고 경험하며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하나하나의 벽돌이 되어 나라는 세계를 짓는다. 나는 나를 만들 수 있고, 자신만이 자신이 될 수 있다.
삶은 자신을 만들어 가는 여정이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창조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 시간을 보내는 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소중해진다. 10년 후, 20년 후, 나는 어떤 내가 되어 있을까. 아이와 둘이 가뿐히 여행을 떠나는 용감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친구와 둘이 텐트 하나쯤은 문제없이 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캠핑카를 몰고 다니는 멋진 할머니가 되는 날도 올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