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것

에필로그

by 춤추는바람



겨울철 밤하늘의 중앙에는 오리온자리가 있다. 오리온의 오른쪽 어깨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는 밝은 별 베텔게우스와 왼쪽 다리의 리겔을 찾아 사냥꾼 오리온의 모습을 엮어 볼 수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방법은 오리온의 벨트를 찾는 것. 오리온자리의 가운데에 좁은 간격으로 나란히 찍힌 세 개의 별은 일직선으로 연결되는데 이게 오리온의 벨트다.



그걸 찾으면 오리온의 형태를 쉽게 만들어 볼 수 있다. 벨트를 중심으로 위로는 오리온의 몸통에 해당하는 사각형을, 아래로는 두 다리에 해당하는 사각형을. 그러면 주변의 별자리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오리온자리를 기준으로 왼편에서 빛나는 두 개의 별은 큰 개와 작은 개 자리의 으뜸 별인 시리우스와 프로키온, 오른편에서 빛나는 별은 황소자리의 일부인 것이다.



간밤 밤하늘에서 간신히 오리온(자리)의 벨트를 찾아냈다. 서울의 밤하늘에서 오리온자리를 그리고, 큰 개와 황소까지 그려볼 수 있어 반가웠지만 주위로 빼곡히 들어차 있던 별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볼 수 없어) 슬퍼졌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깜빡이며 신호를 보내던 캠핑장에서의 순간이 떠올랐고 이내 외로워졌다. 그토록 많은 별들이 내 눈빛에 화답해 주었는데. 지난밤 내가 발견할 수 있는 신호는 열 개가 채 되지 않았다.



곁에 있는 존재를 감각할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외로워지는 일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주변에 머물고 있는데... 캠핑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지구에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걸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인간이 중심인 세계는 극히 작고 굉장히 커다란 부분을 미처 알지 못하는 온갖 생명체들이 나누어 가지고 있음을 경이롭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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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그토록 넓고 나라는 사람이 이토록 작아서 나는 편안했다. 먼지 한 톨의 크기로 나를 작게 만들 수 있을 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나 통제해야 하는 문제들도 함께 작아졌으니까. 중요하다고 붙들고 있던 문제들이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시선을 바꾸자 홀가분했다. 나는 더 작아지고 싶었다.



튼튼한 벽과 지붕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자 나를 둘러싼 세계는 단숨에 쪼그라들었다. 눈앞의 문제에 발을 동동 구르고 내가 살고 있는 집과 주변, 이 나라와 사람들의 문제만이 세상의 전부인양 다가온다. 보이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세계는 금세 작아지고 만다. 그러면 나는 다시 나를 중심으로 사람 위주로 세계를 재편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화가 나고 짜증을 내고 내가 전부인양 목소리를 높인다.



다행스럽게도 눈을 감고 내 안에서 시선을 멀리 던지면 그때 보았던 바다와 숲, 별이 뿌려진 하늘이 다시 떠오른다. 내가 어찌할 엄두조차 나지 않던 거대하고 막막한 세계를 눈앞에 그려볼 수 있다. 산신령 같았던 할아버지 나무와 집체 만한 가오리와 친구 같았던 캥거루까지. 아침마다 나를 깨워주었던 수백 마리의 새들과 밤하늘을 촘촘히 채웠던 별빛도. 지구에 살고 있는 무수한 생명체의 울음과 기척이 들려온다. 상상 속에서 나는 잠잠해진다.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캠핑은 고생스러웠지만 내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주었다. 나를 작게 만드는 호흡과 자신을 열어보려는 시도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잊히고 보고 듣고 느끼려 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존재를 떠올리기 위해 나는 먼지처럼 작아진다. 그리고 눈과 귀를 열 듯 마음을 열어본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을 부풀린다. 그렇게 나를 열면 무언가 내게 다가온다.



별빛이 희미한 서울의 밤하늘 아래서 두 눈을 감았다 다시 한번 활짝 떠 보았다. 그리고는 어두운 밤하늘의 빈 공간에 마음으로 빛을 새겼다. 하나, 둘, 천천히 찍어보다, 촤르르르-, 흩뿌렸다. 그날의 밤하늘을 마음껏 수놓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으니까, 그리워하는 한 무엇도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한낮에는 환기를 하려 거실과 주방 쪽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창을 열기 위해 거실 베란다로 나갔더니, 가지만 남은 나무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 귀를 기울이니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 뾰로롱 뽀로로롱. 언제든 창을 열고 새를 향해 나를 낮춘다면 이곳에서도 날마다 새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새들이 마른 가지에서도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부리로 무언가를 쪼아댔다. 쏟아지는 정오의 빛 속에는 옅은 노란빛의 여운이 감돌았고. 새들이 날아들고, 해의 고도가 높아졌으니, 봄이 온다는 소식인가 보다.